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끌로이 Jul 02. 2024

카카듀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남다르다. 성인 한 사람이 마시는 커피량은 프랑스에 이은  세계  2위다.  커피  수입량도 세계 3위여서 '커피 공화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흔히 우리더러 백의민족이니 흥의 민족이라 일컫는데 이제는 커피의 민족이라 부를만하다.  


하지만 커피가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지는 불과 몇 십 년밖에 되지 않는다. 대중성에 비해 역사와 전통이 짧다. 당연하게도 커피는 개항과 함께 들어온 일부 상류층의 문화였고 고종이 특히 좋아했다고 알려진다. 그러니까 왕실 황제 정도는 돼야 향유할 수 있었던 사치품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경성 거리에는 드문드문 끽다점이 생겨났다. 끽다점은 일본식 다방 킷샤텐을 부르는 말이다.  


1928년, 경성 한복판 관훈동. 그곳에 최초의 서양식 카페 ‘카카듀’가 들어선다. 조선인의 건물에 조선인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조선인의 카페였다. 카페의 공동 창업자는 영화감독 이경손과 그의 오촌 조카이자 하와이에서 태어나 미국 여권을 갖고 있는 신여성 현앨리스.  


3·1운동이 일어난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엄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예술인들이 끽다점이자 문화예술 공간인 카카듀로 모인다. 그중엔 보헤미안도 있고, 코뮤니스트(사회주의자)도 있다. 나운규, 김명순, 이음전(이애리수) 등 당대의 예술인은 물론 심훈, 박헌영 등 역사적 인물이 소설 속을 거닌다. 소설의 틀을 하고 있지만 허구인지 사실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화려한 출발과 달리 ‘카카듀’는 몇 달 만에 문을 닫는다. 운영 적자였을까, 카페 주인의 경험 부족이었을까, 건강이 안 좋았을까, 정치적 외압이 있었던 걸까? 박서련 작가의 장편소설 <카카듀>는 그때 그 곳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 전반부에서는 끽다점보다 영화 촬영 현장을 더 많이 보여준다. 이경손은 의관 집안 출신이지만 신학, 예술 등을 공부하고 영화감독과 배우로 활동하며 보헤미안을 꿈꾼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다.  


방황하는 이경손에게 변화를 가져다주는 이는 비밀을 감춘 앨리스다. 그의 아버지 현순 목사는 하와이 이민 초창기인 1903년 통역관을 맡아 제물포에서 하와이로 이민단을 인솔했다. 이후 하와이 한인교회 담임목사, 상하이 임시정부 내무차장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첫 조선인 2세가 현앨리스다. 예술과 낭만의 전당인 카카듀가 사실은 독립운동 거점을 꿈꿨다는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 비롯됐다. 이경손은 모르는 무언가가, 위험한 사건이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경손은 시절도 모르고 잘 놀고만 있었다. 


2리터짜리 빨간색 페인트 통에 검정색이든 흰색이든 다른 색 페인트 몇 방울을 섞는다고 해서 2리터의 빨강이 아예 다른 색이 되지는 않는다. 나의 행복은 2리터의 빨강처럼 자명했다. 막연한 심정으로 나는 앞으로의 모든 성탄절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러지 못할 까닭은 하나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순간,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 p.244 


<카카듀>는 현앨리스의 행적 중 가장 흐릿한 1928년부터 2년 동안을 포착한다. 소설에는 언급하지 않지만 앨리스는 해방 이후 미군정 군속으로 일했고,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행적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진다. 박서련 작가는 허구적 재현이 역사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진실에 스칠 때가 있다고 믿는다면서 허구인 동시에 진실의 가능성을 내표하는 양가적 상태는 이러한 믿음 위에서 비로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이 시대의 카페는 100년 전만큼 절실한 공간은 아닐 것이다. 갑작스레 종로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어쩔 수 없이 만주로, 상해로 도망가야 하는 청년은 없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며 자꾸만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작가의 역사소설 자체가 귀한데, 이 소설은 온통 귀한 것을 다뤄 더욱 특별하다. 식민지 사람들에게 당시 그저 쓴 물에 불과했던 ‘커피’가 등장하고, 암울한 시대상과는 조금 동떨어진 영화 제작과 과정이 그려져 묘하게 기이한 느낌이다. 독자는 생경할지언정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진지하다. 어느 시대에나 청년들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귀한 전언을 남기는 듯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