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 이름 니체.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교양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1800년대에 태어나 일면식도 없는 이 사람의 말과 행동이 아직까지 회자되는 이유가 뭘까?
세계적인 명사들에게 영향을 끼쳐 위대한 철학자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서구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다. “오늘의 나를 완전히 죽여야 내일의 나가 태어난다. 새로운 나로 변하려면 기존의 나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 등 그가 남긴 명언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사유를 남긴다. 니체의 말처럼, 지금 내 삶을 고민하고 있다면 먼저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내는 게 최우선이다.
미디어가 쏟아내는 수많은 콘텐츠에 둘러싸여 정보 과잉 시대에 사는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이런 우리에게 니체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너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가>를 보면 그의 철학적 탐구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다. 신을 부정하고 인간은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해 당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스스로 정신을 단련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자를 초인으로 정의했다. 이러한 사상은 책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왜 너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가?'라는 물음 역시 이러한 철학적 배경을 반영한다.
저 높은 하늘을 향해 성장하려는 나무가 험한 날씨와 거센 폭풍우를 피할 수 있겠는가? 바닥끝까지 내려가 땅 밑으로까지 파묻혀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라면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당신은 땅속에 묻힌 게 아니라 심어진 거라고. - p.42
제목처럼 니체는 인간의 본능적인 편안함 추구를 강하게 비판한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편안함에서 벗어나 불편과 고통을 마주하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결국 도전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의미로 읽힌다.
희망과 절망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특히 와 닿았다. 니체는 절망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고 다독인다.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영원할 것 같은 막막함에 심장이 쿵 내려앉을 때가 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느낌에 헤어 나올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니체는 이럴 때 스스로를 찾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이 주인이 되는 법, 나의 이야기를 듣는 법을 말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의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살면서 주인공을 자처하지만 정말 주인공처럼 살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 사람인줄 알고 살았는데 지금 시간 속에는 남이 바라보는 내가 자리 잡아 비켜주지 않는다.
니체 철학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기술이 발달해 우리는 손끝 하나로 명령을 내린다. 힘과 시간을 들여 귀찮게 해오던 청소, 빨래는 기계가 대신한다. 하지만 이런 편리와 풍요가 정말 행복한지 생각해보자. 니체는 편리함과 쾌락을 행복이라 착각하면 더 큰 쾌락을 향해 끌려가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은 편하게 살고 싶다. 이왕 태어나 세상에 던져진 이상, 어려운 숙제하듯 끙끙거리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같은 마음 아닐까?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편하고 즐겁게 살고 싶지 않은가? 일부러 힘들게 살아야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인가?
니체의 가르침이 어느 대목에서는 뼈저리게 공감되면서, 어느 대목에서는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시나브로 위로를 받는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성장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고통은 언제나 끝난다는 사실 하나를 믿어보려 한다. 그럼 어떤 절망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