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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은 May 25. 2017

두 상전을 모시고 여행을 간다.
그것도 하와이! ②

아빠!  돌아서서 울지 마요

아빠! 돌아서서 울지 마요.



하와이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알려준다. “이제 천안아산역에서 KTX 타고 인천공항까지 가잖아. 몰랐어? 내리면 바로 공항이래!” 럴수럴수 이럴 수가! 완전 감사하네. 그리고 바로 기차표 검색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뭐냐? 아직 수요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시범운행 중인 건지 운행 횟수가 하루 세네 대뿐이었다. 게다가 우리의 비행기 스케줄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다음부터는 비행기 표 끊을 때 KTX 표랑 잘 연계되게 해야지. 중간에 날리는 시간이 너무 많다. 



지방에 살아보니 이게 참 별로다. 저가항공사도 많아지고 항공사 프로모션도 다양해져서 외국에 나가는 일은 점점 쉬워지는데 공항 나가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다. 그래서 고민이 시작됐다. KTX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인천공항 KTX를 탈까? 그건 비용 대비 별로다. 천안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갈까?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비행기를 타고 9시간을 가야 하는데 그전에 버스를 3시간 탄다면 너무 힘들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움직이는 시간이 러시아워라서 길이라도 막히면 나는 이 어린양들과 짐을  끌고 뛰어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차라리 일찍 가서 공항에서 노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은 천안아산역에서 KTX를 타고 광명역까지 가서 6004번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천안아산역에서 광명역까지 15분, 광명역에서 공항버스 6004번 타고 55분이면 공항 도착이니 여러모로 이 방법 최선이었다. 






유명한 축구 선수의 아내가 토크쇼에 나왔다.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거침없이 “No"라는 푯말을 들었다. 이유를 물으니 “다시 태어나면 내가 남편이 되고 싶기 때문에 아내 역할은 싫다. 남편은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운동하면서 외박이 잦았다. 남편도 당해봐야 한다”라고 말을 해서 나 혼자 낄낄거리며 웃었다. 나 역시 다시 태어나면 남편과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다음 생에 꼭 그분의 딸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엄부자모(嚴父慈母)가 미덕이었다. 아버지 숟가락 드시기 전에 숟가락 들었다가 그 숟가락으로 머리통을 얻어 맞고, 아버지 전화 통화 중에 시끄럽게 굴었다가는 불벼락이 떨어졌다. 아버지들은 왜 꼭 TV 리모컨을 꼭 쥐고 주무시는지 채널 좀 돌리려면 벌떡 일어나셔서는 보고 있노라 하셨다. 요즘은? 아빠가 저러시면 바로 왕따가 된다. 그러니 억울할 법도 한 것이 드디어 내가 부모가 됐는데 이제는 아이들을 상전으로 모시고 산다....




 그래서 그 상전들을 모시고 여행을 간다. 두 상전을 모시고 가니 무수리도 둘이어야 하건만 누군가 하나는 생계를 책임지셔야 하니 더 잘 버는 사람이 남아서 벌고 못 버는 사람이 가는 것이 누가 봐도 효율적 이건만 이상하게 발이 안 떨어진다. 발은 왜 안 떨어질까? 아이들이 아빠를 그리워할까 봐? 남편이 밥 굶을까 봐? 애 둘 데리고 내가 너무 고생할까 봐? 새로운 환경이 무서워서? 잘 모르겠다. 애초에 엄마랑 여행을 많이 했던 아이들이라 쉽게 내린 결정인데도 설명할 수 없는 이 감정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래 봤자 4주야. 일요일을 네 번만 보내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야?’, ‘일요일 네 번이라고? 일요일마다 아이들 데리고 자전거 타러 공원 가고 공 차러 운동장 가고 수영장이며 등산이며 하루도 집에 가만히 있는 날이 없는데 아빠 없이 일요일을 네 번이나 보내라고?’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3박 4일도 아니고 한 달이라니 좀 길긴 길다. 







아침밥 먹고 출근하면서 이미 작별인사를 했건만 KTX 타러 나가려는데 남편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아무래도 이렇게 헤어져서는 안 되겠는지 점심시간에 틈타 후다닥 나온 모양이다. 아이들은 아직 한 달이라는 시간이 실감이 안 나는지 그냥 신이 났다. 나는 괜찮을까? 괜찮을 거야. 나는 엄마잖아. 그렇게 천안아산역 플랫폼에서 인사를 했다. 아이들은 마치 내일 돌아올 것처럼 신나게 손을 흔들었고 나랑 남편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잘 지내라는 말만 하고 돌아섰다. 기차는 출발하고 아빠는 뛴다. 기차는 점점 빨라지고 아이들은 더 신나게 손을 흔든다. 열심히 뛰던 남편이 갑자기 뒤돌아섰다. 그리고 나도 울컥했다. 



여보! 뒤돌아서 울지 마요. 

우리 기러기 생활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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