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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은 Jun 08. 2017

영어는 천천히 해도 괜찮아. ⑮

수영 조기 교육 예찬

영어는 천천히 해도 괜찮아.


나는 물이 무섭다. 마흔이 넘어도 절대 친해지지 못하는 것이 물이다. 수영을 배우려고 여러 차례 노력해 봤지만 어느 순간 어린 시절 물 공포증이 되살아나서는 나를 포기시켰다. 그래서 그런가 많은 엄마들이 영어 조기 교육에 열광하듯이 나는 아이들 수영 레슨에 집착한다. 지금도  반드시 어려서 배워야 할 것을 꼽으라면 첫째도 둘째도 마지막도 수영이다. 내가 산 증인이며 내 아이들이 증거이다. 신토불이 사나이 7세 겨울, 이제 수영 레슨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친구들은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며 태권도장으로 향했다. 요즘 태권도장에서는 태권도뿐만 아니라 학교 체육도 봐주니 음악 줄넘기, 훌라후프, 배드민턴까지 엄마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것이다. 수영도 친한 친구들과 함께 배우면 태권도보다 더 즐거울 것 이라며 주변 엄마들에게 “수영 강추, 수영 강추” 떠들어 봤지만 모두들 감기에 걸릴까 봐 겨울에는 안 되고, 비염이 있어서 안 되고 아이가 아직 물을 무서워해서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신토불이 사나이는 홀로 수영 레슨을 시작했다. 강습 첫날 수영장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니 멀리서도 눈가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보였다. 엄마만 만나면 터뜨리려고  준비한 울음보따리가 터지기 10초 전이었다. 갈 때는 분명 신나서 갔는데 가보니 생각보다 즐겁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내가 너를 수영장에 보내면서 배우러 간다고 했지 언제 워터파크로 놀러 간다고 말했더냐. 아이는 워터파크를 상상하고 튜브 끼고 미끄럼틀이나 탈 줄 알았던 것이다. 계속 시키는 발차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얼굴을 물에 넣으라는 말에 경악을 했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나 그 당황스러움을 엄마가 너무 잘 알기에 더욱 배워야 한다고 설명하며 처음 배우는데 쉬운 게 어디 있냐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아이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모르는 척했다. 그저 장하다고 멋지다고 칭찬해줬다. 내 속은 터지지만 포기하지 않게 하려고 살살 달래줬다. 엄마 노릇하기 참 힘들다. 예상대로 아이는 수영장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정말 못 하겠다는 것이다. 7살 아이 입에서 “정말 못 할 일”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또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아들아, 안다 알아. 사실은 엄마가 너 보다 물을 더 무서워한다. 그런데 어쩌니 엄마가 물은 무서워해도 네 말에 휘둘릴 정도의 하수는 아니란다.’ 삐져나오는 웃음도 참고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화도 참으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람이 무슨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열 번도 안 해보고 ‘할 수 있다, 없다’를 결정할 수는 없는 거야. 그런 식으로는 뭐든 배울 수가 없어. 일단 시작했으니 열 번만 해 보자. 앞으로 딱 아홉 번 더 가보고 그리고도 정말 못 하겠으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이 엄마가 4주 동안 주 3회, 총 12회의 겨울 방학 수영특강에 등록을 했던 것이다. 열두 번 중에서 열 번의 레슨이라도 건져보겠다는 생각으로 순간 만들어 낸 말이었다. 아이는 두 번째 수업에는 “이제 여덟 번 남았네”라고 말했고 세 번째 수업을 마치고는 “이제 일곱 번만 더 가면 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하루가 다르게 적응했고 약속한 열 번째 수업에는 수영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드디어 12회의 특강이 끝나는 날, 어설프지만 자유형 25m를 쉬지 않고 완주했다. 정말 감동이었다. 내가 못했던 것을 해 내는 아이를 보니 뭔가 큰 희열이 느껴졌다. ‘아, 이래서들 엄마들이 아이 교육에 미친 듯이 올인하는구나.’ 느낌이 좀 왔다.


그렇게 신토불이 사나이의 수영은 시작되었다. 그 이후에도 쉬지 않고 배웠고 아산 시장배 마스터스 대회까지 나가서 은메달을 걸어 보기도 했다. 수영을 통해서 수영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배움의 시작이 쓰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열매는 달다는 것을 체득했다. 아이가 포기하려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뱉었던 “열 번도 안 해보고 어떻게 아니?”라는 말은 그 이후에도 아이가 벽에 부딪쳤을 때 스스로를 담금질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정작 그 어미는 계속 포기했었다는 부끄러운 팩트가 살아있지만 아이는 수영으로 자기 자신을 이겨냈다.



a good swimmer



하와이에 오면 아이들이 모두 수영을 잘 할 줄 알았다. 돌아보면 바닷가요. 널린 게 수영장이요. 날씨는 일 년 내내 따끈따끈한데 수영을 못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 수영장에서나 신토불이 사나이의 수영은 미국 아줌마, 아저씨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7월이 되니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한국에서 많은 아이들이 하와이로 들어왔다. 아파트 수영장에도 한국 아이들과 엄마들이 무리 지어 놀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그 모양 그대로 한국으로 가져가면 한강 둔치 수영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분들은 하와이가 익숙한 분들이셨고 아이들도 하와이 섬머 캠프가 처음은 아닌 듯했다. 아이들끼리 서로 영어로 이야기하며 우리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근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영어라고는 Hello. How are you 밖에 모르는 신토불이 사나이는 눈치도 없이 그 아이들과 놀고 싶어서 기웃거렸다. 아이의 속을 아는 엄마로서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참 속이 상했다. 내가 좀 힘들어도 유난스럽게 일찍 영어를 가르쳤어야 했나. 그러면 지금 저 아이들이 끼워주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아이한테 미안해졌다. 결국 수영장 모습이 신토불이 사나이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물에서 play tag(술래잡기)를 하고 잠수를 하거나 점프를 하며 신나게 노는 꼴이었다. 외국 아이들도 아니고 한국에서 온 아이들인데도 끼어 들 틈이 없었다. 솔직히 그 순간 화가 나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도 됐고 이런 상황에 덩그러니 있는 것이 왠지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들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괜한 자격지심도 생기고 아무튼 뭔가 알 수 없는 박탈감에 기분이 울컥했다.




애들이 끼워주지 않아도 홀로 스위밍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언젠가 놀아주겠지.
엄마는 왜 자꾸 집으로 올라가자고 하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가는데 8층에 살던 미국인 아저씨가 딸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Is he your son? I saw him last Friday in the pool. I was totally impressed by his swimming.”


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Your son is a good swimmer”라는 말을 연발했다. 순간 수영장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영어로만 떠들며 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등장한 미국인 아저씨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딸에게 “You’d better learn to swim.”이라고 잔소리를 했다. 여자아이는 그 소리를 많이 들어 봤는지 이내 얼굴을 찌푸리며 가버렸다. 곧 여자 아이의 엄마도 수영장에 나오더니 남편과 뭐라고 이야기를 한 후 나를 찾아 자쿠지로 건너왔다. 나를 보며 빙긋 웃더니 남편한테 들은 이야기를 다시 전달했다. 최근에 미국에서 물놀이하다가 사망하는 아이들이 많아져서 수영에 대해서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폭풍 질문이 시작되었다. 졸지에 good swimmer의 엄마가 돼서는 미국 학부모들의 관심 대상이 되어 버렸다.


“Where did he learn to swim?”

“When did he start swimming lesson?

“How long, and how often has he taken a swimming lesson?”


여기 엄마, 아빠들도 우리와 똑같은 대화를 하는 것을 보니 재미있었다.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수영의 필요성을 강하게 이야기했다. 이 부부는 나의 생각에 100% 공감한다면서 훌륭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둘은 신토불이 사나이가 어디서 누구한테 얼마나 오랫동안 레슨을 받았는지 궁금해했다. 한국에서 6개월 배우고 왔다고 하니 unbelievable 하게 짧은 시간이라며 당장 짐 싸서 한국으로 유학을 보내야겠다 하여 나를 웃겨 주었다. 그리고는 하와이에서 레슨을 받았다고 했으면 당장 전화번호를 받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 부부의 대화는 도무지 “수영”밖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즐거운 수영 이야기는 어두워져서야 끝이 났다. 한국에서 온 아이들로부터 영어 못한다고 무시를 당하다가 미국 사람들한테 수영 잘한다고 치켜세워지니 아이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 역시 위축될 뻔했는데 몸도 마음도 다시 살아났다. 영어만 쓰던 한국 아이들은 그 이후로 영어만 쓰며 play tag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신토불이 사나이를 배려하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다. 그 날 이후로 신토불이 사나이는 엘리베이터에서나 동네 맥도널드에서 부딪치는 이웃들이 good swimmer로 불러줬고, 한국 아이들이 놀 때는 우리말을 사용했다. 나는 아직도 신토불이 사나이가 답답한 행동을 할 때 이 날을 기억한다. 아이들이 영어 못한다고 안 끼워줬을 때 내가 화가 나서 집으로 끌고 가 버렸다면 어땠을까 미국인 아저씨의 폭풍 칭찬과 부러움 어린 눈빛을 못 받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 어수룩해 보여서 내 속은 터지지만 묵묵히 버틸 줄 아는 아이에게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나는 영어 조기 교육보다는 수영 조기 교육을 예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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