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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은 Jun 09. 2017

노란메리야쓰의 트라우마 ⑯  

She can do, he can do, why not me 스쀠맅

She can do, he can do, why not me!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확실한 건 돌잔치 전이었다. 둘째가 옹알이를 마치고 바로 문장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어버버 했던 30개월 오빠와는 완전 다른 DNA 형질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우리 집안에 초강력 하고잡이가 등장했다. 엄마 입장에서는 뭐든지 늦게 했던 큰애에 비해서 너무 수월했다. 언제 뒤집나, 언제 걸을까 기다렸던 첫째에 비해서 둘째는 뒤 돌아보니 구구단을 외우고 있었다. She can do, he can do, why not me! 노란메리야쓰의 DNA에는 이 문장이 심어져 있을 거라 장담한다. 오빠는 하는데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신토불이 사나이 8세 2월, 우연한 기회에 스키를 배우게 됐다. 그렇다면 노란메리야쓰도 6세 2월에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었다. 최소한 그녀의 월드에서는 그랬다. 나는 딸을 말리지 못한 죄로 두 아이가 레슨을 하는 그 3시간 동안 계속 초보자 코스를 돌며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아는 척이라도 하면 방해될까 10미터 떨어져서 아이들을 지켜줬다.



스키 레슨이 끝나고 아이들을 만났을 때 노란메리야쓰 얼굴에 눈물 자국이 보였다. 스키 강사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조금 울었어요. 그 밖에는 잘 했습니다.”라며 짧게 브리핑을 해 주고 사라졌다. 강사가 떠나자 노란메리야쓰가 울기 시작했다. 보통은 이런 분이 아니었다. 어딜 가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선생님이 좋아서 안기는 아이인데 그 날은 이상했다. 아이의 공포가 느껴졌다. 강사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저 선생님이 리프트에서 막대기(폴) 떨어뜨리면 절벽 위에 세워 놓는데.”

“그리고 저 선생님이 발을 A자로 모으지 않으면 발가락을 가위로 잘라버린데.”

“엄마, 너무 무서웠어. 왜 이제 왔어?”



나는 순간 가슴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3시간 내내 아이들 옆에 있었는데 이런 걸 못 막은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분통이 터졌다. 이 자식을 당장 불러서 따귀라도 한 대씩 쳐 올리고 싶었다.


“알았어, 엄마가 지금 슬로프에서 내려가면 바로 찾아서 혼내줄게.”




[엄마와 첫 스킹, 폭풍 전야의 사진]



그리고 슬로프에서 내려오다가 노란메리야쓰는 바로 골절 사고가 났다. 아이의 스키가 눈무덤에 꽂히며 단 한번 넘어졌을 뿐인데 맥없이 다리가 부러졌다. 넘어지는 순간 바인딩이 풀어지며 스키 플레이트와 부츠가 탈락됐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안고 의무실로, 춘천 대학병원으로, 깜깜한 산길을 달리며 밤을 지새웠다. 노란메리야쓰는 그 날 이후로 낯선 선생님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워낙에 사교적이고 적극적이었던 아이 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노란메리야쓰는 엄마가 자기를 어디 보낼까 봐 노심초사였다. 스키장 이후로는 처음 보는 선생님은 무조건 거부했다.  오빠가 다니는 학원에 갔을 때도, 하와이안 칠드런스 디스커버리 센터에서도 YWCA에 갔을 때도 엄마 가랑이를 붙잡고 계속 자기는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며 매달렸다. She can do, he can do, why not me! 의 스쀠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하와이까지 와서 매일 엄마 옆에만 붙어 있는 아이가 답답했다. 보통은 엄마가 안 보여도 너무 잘 놀아서 나를 불안하게 했던 아이인데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게 하면 빨리 회복될까 하여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나 아이는 하와이 햇살 아래 엄마 껌딱지를 하며 낯선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상처들을 치유하고 있었다. 새로운 환경과 친절한 사람들은 두려움을 퇴색시키고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하와이안 칠드런 디스커버리 센터에서 하는 아트 클래스에 처음 가는 날 아침이었다. 눈 뜨자마자 자기는 무조건 가지 않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아무리 엄마가 옆에 있는 수업이라고 설득을 해도 아이는 듣지 않았다. 애타는 마음을 겨우 달래서 첫 수업을 하고는 다음번에도 엄마가 옆에 앉아 있으면 수업을 하겠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 수업에는 자기가 수업을 하는 동안 엄마는 커피를 마시고 와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한 발씩 나아갔다.




[커피가 마구 당기던 날이 아니었지만, 노란 메리야쓰가 혼자 있을 수 있도록 카페에 와 있었어요.]


아이와의 여행은 고진감래의 여행이다. 아이의 마음을 만져보면 뜻하지 않은 응어리들이 만져질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뛰어노는 줄 만 알았던 아이들의 이 작은 세상에도 있을게 다 있어서 해소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더라는 것이다. 친구하고 싸운 일, 선생님이 오해하셔서 억울하게 혼난 일, 동생이 너무 미웠던 일 그리고 엄마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을 키우고 있을 때도 있다. 마냥 밝고 철없는 꼬맹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자신만의 상처를 가지고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와의 여행은 이런 엉키고 꼬인 것들은 풀어지게 한다. 엄마와의 여행은 그 모든 것을 풀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누군가 가이드해 주는 여행보다 몸은 고되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은 많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엄마는 한 뼘 성장하고 그 사이에 아이는 열 뼘 성장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꼭 무언가를 얻기 위한 여행이 아니더라도 아이와 그냥 떠나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와의 진심 어린 교감을 시도해 보자. 아이는 어리지만 부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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