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o가 뭐길래?
며칠 전, 저경력 선생님을 위한 간담회가 작게 열렸다. 한 학기가 끝나가는 이 시점, 교장선생님께서 우리를 잘 챙겨주지 못해 아쉽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코로나로 하수상한 이 시국에 가장 고생하신건 관리자분들이었으니 전혀 섭섭하진 않았으나 우리를 챙겨주시겠다는 그 마음이 너무나 감사했다.
간담회 대상자는 나와 동년배 남자 선생님. 4년차인 나와 달리 남자 선생님은 군대에 다녀오는 바람에 실경력이 2년이 채 안되었다.(호봉은 같은건 비밀.) 각 학년의 온라인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냐고, 더 필요한 건 없냐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되었고, 더할나위없이 기분 좋고 산뜻한 간담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나는 몰랐지, 관리자분들이 반바지의 옷차림을 언짢아 했을 줄은.
아, 물론 내 옷차림이 아닌 남자 선생님의 옷차림을 향한 지적이었다. 웃긴건, 나도 반바지 옷차림이었다는 것이다. 둘 다 비슷한 의상이었는데, 남자 선생님만 교무실로 불려가서 혼이 났다고 한다. TPO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이다. 왜 나는 괜찮고 남자 선생님은 괜찮지 않았던 걸까? 다리털 때문에? 아님 남자 특유의 정장 차림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때문에?
tpo의 정의는 time, place, occasion에 맞는 의복을 착용해야한다는 것이다. 평소 학교에서 수업할 때는 반바지라는 옷차림을 딱히 지적하지 않으니, 여기서 중요한건 occasion, 즉 상황이었다. 간담회라는 상황은 우리에게 어떤 무게를 주었나? 실제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전반은 토의, 토론 혹은 회의가 아닌, 지난 학기에 대한 회고였다. 그러한 상황이 우리가 정장을 갖춰입어야 할만큼 무거웠던 것일까? 그 기준은 누가 세운 걸까?
눈에 거슬리면 그 앞에서 혼내는게 그리도 어려웠나. 우리 둘을 모두 지적했으면 차라리 더 납득이 됐을 텐데.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길 원하는 만큼 그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고 느끼지 않길 바란다. 그가 "그게 중요한가요?"라고 되물었다는 이유로 당돌한 신규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길 바란다. 우리의 입장에서 납득할 수 없는 지적이라는걸 알고, 반바지가 왜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지 합리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그 모두가 실패했다. 기분 좋고 산뜻한 분위기였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오묘함. 세상은 변하려면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