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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Oct 05. 2021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나는 출간 작가가 되어버렸네





에세이의 조건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서, 솔직함, 보편성으로의 전환'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좋은 에세이라고 하던데…. 나의 글과 같은 경우, 출간 과정에서 겪고 있는 생각들이나 태도 같은 것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적어 내리고 있으니 앞의 두 가지는 어느 정도 그렇다고 끄덕일 수 있겠다. 하지만 맨 마지막의 '보편성으로의 전환'에 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내 파편적인 상념과 생각들이 타인의 이야기 안에 녹아들 수 있는 걸까?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이야기의 기저에 깔린 지배적인 정서를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꿈에 그리던 출간을 하게 되었는데, 들뜸이나 자만이 아닌, 그보다는 훨씬 아래를 맴도는 느낌이다. 내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나 가치관의 방향은 모두 하염없는 긍정 성향을 띠고 있는데, 왜 출간에 대해서만 유독 이렇게 다운되어있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내 재능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일 것이다. 간혹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그 나이에만 가질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자신감이 부러울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과 같은 명석한 두뇌, 손흥민 같은 기상천외한 운동신경, 100만 구독자를 단숨에 끌어 오르는 도티와 같은 스타성 ….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렘에 두근거리는 아이들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라고 한탄하게 되는 것이다. '배운 적 없었어도 나에게 천부적인 작가 재능이 있을 수도 있잖아!'라며 순진하게 생각하기에는 내가 겪은 일이 너무 많네요. 웃프지만 사실이다.












초등 교사가 아이들의 몸과 성, 마음에 대해 쓴 동화, 서평단 모집




원고를 마감하고, 작가의 말을 적고, 작가 이력을 훑는 동안 내 책을 홍보하는 카피라이트가 담긴 메일이 도착했다. 왠지 모를 눈물이 나면서 그동안의 과정이 파노라마같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출간하기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순간부터 나의 마음고생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서점에서 내가 보고 겪었던 '동화'는 이렇게 어려운 세계가 아니었는데, 내 문장은 동화에 적합한 문장이 아닌 것이 되어있었고, 내가 구상했던 스토리라인은 세상 딱딱하고 재미없는 구닥다리가 되기도 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출간 과정에 출판사 측에서 나와의 계약을 후회하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하기도 했고, 볼품없는 작가이력란을 보면서 살아온 삶에 대한 회의를 가지기도 했었다. 



카피라이트를 보고 흘린 눈물은, 어떤 어린이들에게 닿을지도 모른다는 당찬 희망에서 시작된 글이 드디어 세상 밖에 나왔다는 감격 반, 그 이후에 벌어질법한 나의 마음고생에 대한 안쓰러움 반이었다. 이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면 나는 처참하게 망한 작가로 남게 될 거야. 앞으로 아무런 저작물을 낼 수도 없겠지. 앞으로의 나의 작가 인생 향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하는 나에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정말 앞으로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좋으니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라고. 내가 좋아서 시작한 글쓰기인데 너를 너무 짓누르게 하지 말라고.




어머니 말씀대로 글쓰기는 이토록 나를 힘들게 한다. 

내가 글을 써서 힘든 것인지 글쓰기 자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피동으로 써야 나 자신이 더 가련해질 테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심경조차 글로 풀어내는 게 위로가 된다면, 믿으시겠어요? 개인성이 보편성으로 전환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인가 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활자로 상처 받고, 활자로 위로받는 운명을 타고났다. 글 때문에 절망스러워지는 이 순간에도 타자를 치고 있는 나는, 뭐가 되었든 계속 작가로 살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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