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혼자 마라탕을 먹었다. 맛있었다. 혼자 점심 먹으면 천천히 먹어도 20분이면 충분하다. 배부르니 좀 걸어야지 하고 회사랑 최대한 먼 방향으로 산책로를 정했다.
회사 사람 한 명도 안 마주치길 바라며 걷기 시작했다. 20분쯤 걸었을까? 오랜만에 가본 골목이었다. 심한 길치라서 이제 슬슬 회사 근처로 가야겠다, 하며 방향을 틀려던 참이었다.
바로 그때, 내 자리 바로 뒤에 앉는 직원 두 명이 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잘 훈련받은 군인이 뒤로 돌아! 를 하듯이 정말 칼각으로 뒤를 돌아서 도망치듯 옆길로 향했다. 날 봤을까? 너무 어색하게 뒤로 돌아 한 거 같은데… 봤으면 어떡하지?
옆길로 한참 가다가 혹시나 싶어 뒤를 돌아봤더니 오마갓. 두 사람이 저 뒤에 있었다. 내가 뒤돌아보는 거 봤을까? 왜 또 뒤를 돌아봐 가지고!
대체 이게 무슨 심리인가. 왜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스쳐 지나가며 "산책하시나 봐요^^" 같은 멘트를 날리지 못했을까. 혼자 밥 먹고 산책하는 걸 들키는 게 창피해서? 혼자 밥 먹고 산책하는 건 너무도 꿀맛 같은 시간인데, 왜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섬처럼 동떨어져 혼자 일하는 나 자신이 측은해 보일까 봐? 같이 수다 떨 팀원도 없고,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는 내가 스스로 창피하게 느껴져서? "00 님 점심에 혼자 산책하던데" 같은 말이 오갈까 봐 신경 쓰여서? (파워 N이라 힘들다.)
만약 그들이 사무실에서 "00님 좀 전에 마주치지 않았어요?"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회사 사람 아무도 없는 곳이라 놀랐나 봐요. (뭔 소리야...) 그러게요. 저도 모르게 놀라서 그만 ^^ (이상해) 뭐라 변명해야 하지 시뮬레이션하면서 사무실로 복귀했다.
나한테 그런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산책하는 게 뭐 어때서.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뒤로 돌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괜히 위축되고 혼자 소설 쓰는 나 자신이 웃기고 한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