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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May 27. 2024

말도 안 되게 디테일

말도 안 되게 디테일을 추구하는 요즘이다. 이게 원해서 하는 거면, 없는 시간 쪼개가며 방망이 깎는 노인에 빙의해서 하는 행위라면 참 짜릿할 텐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늘 오전 9시 30분부터 11시까지의 상황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 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님 말씀을 되새기며… 결코 세계적이 될 수 없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하찮은 일상을 기록해 본다.


60명 가까운 사업부 인원을 대상으로 메일을 써야 했다. 한 달 뒤에 있을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안내 메일이다. 60명 수신처를 어떻게 지정하지? 한 명 한 명 조직도에서 검색해서 넣다가 아… 이거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싶어서 여러 방법을 강구해 보기로 했다. 왜냐면 시간이 많으니까.


시간이 없을 때 시간을 단축할 방법을 찾는 게 인지상정인데 나는 시간이 많아서 그 작업을 단축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말이야 막걸리야.  


1. 엑셀로 현재원을 추출해 이메일 주소를 전체 복붙한다. 아웃룩엔 이런 기능이 없으므로 포털 메일로 보내야 하는데 현재원과 매칭 안 되는 인원이 있었다. 현재원에 없거나, 인사 이동이 반영 안 되어 있거나. 시간이 많으니까 가내수공업으로 매칭을 해보자!


2. 가내수공업으로 매칭하다가 600명도 아니고 60명인데 지쳐갔다. 포털 메일 시스템에 엑셀 파일 업로드하면 자동으로 메일 주소를 인식해 주는 기능이 있었다. 엑셀 파일을 만들었다. 파일 업로드가 안 되네? 포털 에러인가? 시간 많으니까 다른 방법으로 갈아타자.


3. 각 조직의 그룹 메일 주소를 선택하여 해당 그룹에서 퇴사했거나, 조직 이동을 한 사람만 골라내기로 했다. 이것도 뭐 그리 편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시간은 많고, 최선의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고. 그래도 슬슬 지쳐가니 이쯤 하자.


메일 한 통을 장장 한 시간 반에 걸쳐 보냈다. 다른 팀원이 이 짓을 하고 있었다면 답답해서 복장이 터졌을 거다. 나는 그래도 된다. 시간이 많으니까.


문제는 시간을 들인다고 해서, 결과물이 더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럴만한 의미가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의미한 일을 하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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