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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Jan 13. 2020

좋은 아들이자 좋은 남편일 수 있을까

남편은 효자다. 나는 뭐든지 나랑 비교하는데, 나랑 비교하면 남편은 100퍼센트 효자다. 결혼 후 나에게 부모님은 아주 가끔 그립고 도움을 주면 감사한 존재인데, 남편은 그렇지 않다. 남편에게 어머님의 존재는 항상 가슴에 품고 있는, 도움을 받기보단 당연히 도움을 드려야 하는 존재다.


최근 남편과 서로 똥물을 튀기며 싸웠다. 부부싸움을 하면 할수록 똥 싼 바지에 계속해서 똥을 싸서 뭉개는 기분이다. 나중엔 똥을 쌌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부부싸움의 원인은 대부분 비슷하다. 나보다 어머님을 우선시하는 남편의 태도 & 그로 인한 나의 히스테리컬한 반응 때문이다.


남편과 나의 입장 차이를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을까. 나는 남편이 나보다 어머님을 더 위하는 게 싫다. 연세가 많으시고 혼자 계시니 측은한 마음이 드는 건 이해한다. 문제는 마음의 크기다. 남편의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고 회사를 다니며 생계를 주관하는 것은 나인데, 남편이 나보다 어머님을 더 위한다고 느낄 때마다 목놓아 울고 싶다.


나의 부양가족 우선순위는 1) 아이 2) 남편 3) 우리 부모님이다. 그런데 남편은 가끔 1) 어머님 2) 나와 아이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억장 무너진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한다.


"엄마 청소 좀 도와드리고 올게" 부부싸움은 남편의 발언에서 비롯했다. 어머님이 대저택에 사시는 것도 아니고 거동이 불편할 만큼 편찮으신 것도 아닌데, 휴일 저녁에, 그것도 여행 다녀온 직후에, 내일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매일 피곤하단 말 입에 달고 사는), 나와 아이를 놔두고 어머님 댁에 청소를 도와드리러 간다? 여기서 이해라는 카드를 꺼내긴 힘들었다.


"당신이 청소 도와드리러 가면 나 혼자 아기 봐야 하는데?" 말이 곱게 나올 리 없었다. 남편이 시댁에 다녀온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왜 당신은 어머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나랑 아이는 안중에도 없어? 나도 피곤해! 말이 총알이라면 기관총을 쏘고 싶은 심경이었다.


남편에게 어머님은 아킬레스건 같다.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고 원망을 드러내면 더더욱 안 된다. 결혼 전까지 가장 소중한 존재였고 지금은 마땅히 보살펴드려야 하는 존재니까. “어머님은~”으로 시작하는 말을 생각 없이 꺼냈다간 “넌 참 못됐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왜 그렇게 소중한 존재를 이미 가슴속에 품고 있는 남자와 결혼을 했을까. 가장 소중한 존재, 마땅히 보살펴야 하는 존재는 부인과 아이가 되어야 하는데 가끔은 남편의 잊지 못할 첫사랑이 어머님 같다. 케이크 한 판을 다 먹고 싶은데 나에겐 늘 절반만 주어진다. 나도 데코 멀쩡하고 커팅 흔적 없는 온전한 케이크 한 판을 받고 싶단 말이다!


2차 부부싸움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나와 상의해서 A로 결론 낸 사안이 있었다. 다음날 남편과 어머님의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B로 기운 것 같았다. 나랑 상의해서 A로 결정했는데 왜 어머님께는 B라고 얘기하는 거지? 나에겐 "A로 할게"라고 하고 어머님껜 "상황 봐서 B로 할게요” 한 거였다. 어머님은 B를 원하셨고 남편도 B로 맘이 굳혀져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그럼 왜 나한텐 A라고 한 거니. A로 결정하기까지 나와 나눈 대화는 대체 뭐니. 남편은 나와 어머님과 다르게 소통하고 있었다. 남편의 부인은 나인데, 남편이 의사소통을 하며 편안함을 느끼고 의견도 잘 맞는 상대는 어머님이었다.


덕분에 가출했고 잘 놀았다...이게 얼마만의 와인이냐

나는 또 남편의 첫사랑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구나. 남편이 원하는 것은 어머님이 원하는 것이고 어머님이 원하는 것은 남편이 원하는 것이었다. 나는 세 사람의 관계에서 눈치 봐야 해서 불편하니 빠져주면 오히려 고마운 그런 존재였다.


좋은 아들이자 좋은 남편이란 게 가능할까. 남편에게 묻고 싶다. 35년을 함께 산 어머님과, 남은 생을 함께 할 부인 중 당신에게 더 중요한 사람은 누구냐고. 유치하지만 묻고 싶다. 언젠가는 나에게 케이크 한 판을 다 줄 것인지. 아니면 계속 케이크 절반은 떼어놓고 생각해야 하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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