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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Dec 10. 2019

고부갈등 없애는 대화 팁

지난 주말 아이 돌잔치를 했다. 1년 동안 무탈하게 자라준 아이와, 1년 전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고생한 나! 그리고 아내 눈치 보느라 힘든 남편...을 식구들에게 보여주며 "우리 잘했죠?" 하고 확인받는 자리였다. 직계 가족만 초대해 소박하게 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타인의 감정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같이 사는 남편의 감정은 데칼코마니처럼 그대로 찍힌다. 남편이 기분이 나쁘면 나도 기분이 나쁘고, 남편이 기분이 좋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부부 사이에 숨만 쉬어도 그 감정이 다 전해지는 것 같다. 시간이 흘러 휘발되는 감정도 있지만 안 좋은 감정은 대부분 먼지처럼 쌓인다.


얼마 전 결혼 생활의 대공황 같은 시기를 겪었다.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시어머니의 말을 마치 자신의 의견인양 그대로 옮기는 남편에게 느끼는 서운함과 무력함 때문이었다. 습관이나 버릇이라기보단 남편의 성향인데, 쉽게 건드리기 힘든 문제라 속앓이를 하다 마음을 깊게 다치고 말았다.


아기가 모자를 싫어해서 쓰자마자 꼭 벗어던진다. 그걸 본 시어머니가 "아기 때부터 모자 쓰는 걸 훈련시켜야지"라고 하셨다. 친할머니로서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저 말씀을 세 번 정도 하셨는데, 나는 그때마다 주양육자인 나를 아주 조금 살짝 나무라시는 것 같다는 뉘앙스를 캐치하긴 했지만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시어머니의 말을 남편이 자기 의견인양 나에게 옮겼을 때다. 주말에 마트에 갔는데, 남편이 아기 선물로 모자를 사주면 어떻겠냐고 해서 "모자 잘 쓰지도 않는데?"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남편이 "그래도 모자 쓰는 훈련을 시켜야지!"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그래, 니 맘대로 해라~" 하는 비아냥거림도 덧붙여서. 순간 팔 안 쪽이 뜨거워졌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식은땀이 났다.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생후 50일이 되기까지 아기는 밤새 안아주지 않으면 계속 울어댔다. 시댁에서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우는 아기를 보고 시어머니가 "아기가 손을 탔네"라고 하셨다. 이 말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문제는 시어머니의 말을 남편이 나에게 그대로 옮겼을 때다. 새벽에 아기가 울어대자 남편은 잠결에 짜증을 내며 "아무래도 손 탄 것 같아!"라고 말했다. 응? 대부분의 아기가 이 시기에는 밤에 잠을 안 자는데 그게 손을 타서 그런 거라고? 손 탄 아기의 기준은 뭐고 그 근거는 또 뭔데?


여기서 핵심은 왜 남편은 어머니의 말을 나에게 그대로 옮기는가?이다. 시어머니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양, 플러스 짜증과 훈계조까지 섞어서 말하면 나는 문제의 발언을 하실 때 짜증과 훈계의 의도는 1도 없으셨을 시어머니에 대한 반감과 적개심, 원망과 서운함마저 품게 된다. 남편, 왜 그걸 모르는 거니...?

열 마디 말을 대신해주는 짤 #하아


내 감정은 남편을 향한 원망에서 시어머니를 향한 원망으로 산불보다 빠르게 번졌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나를 나무라고 싶으셨던 걸까? 도돌이표를 찍고 반복되는 생각에 괴로웠다. 어머님은 잘못이 없으셨다. 조부모로서, 육아 선배로서 손주 양육에 대한 본인 의견을 자유롭게 말씀하실 수 있으니까. 문제는 남편이었다.


와이프(며느리)가 어머니(시어머니)에게 안 좋은 감정을 품지 않게 하려면,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무조건 맞다고 편들지 않으면 된다. 더 나아가 어머니 말씀은 남편부터 솔선수범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된다. 무시하라는 게 아니다. 남편의 태도에 따라 대화는 이렇게 달라진다.


대화 1)


-시댁에서-

어머니 : 아이가 모자를 쓰지 않는구나. 어릴 때부터 쓰도록 훈련을 시켰어야지.

아들 : 네 알겠어요~ ㅎㅎ


-집에서-

남편 : 모자 안 쓴다고 뭐 클나나? 모자가 뭐라고 훈련까지 시켜~ ㅋㅋ

아내 : 에이, 그래두 어머님 말씀대로 모자 쓰도록 해야지~


대화 2)


-시댁에서-

어머니 : 아이가 모자를 쓰지 않는구나. 어릴 때부터 훈련을 시켰어야지.

아들 : 그치. 우리가 훈련을 못 시켜서 그래~ 앞으로 쓰게 해야지!


-집에서-

남편 : 모자 쓰도록 훈련시켜야지!

아내 : 왜??????????????????? (모자가 군모야? 안 쓰면 생명에 지장 있어????????)


대화 1과 2는 이렇게 다르다. 남편이 시어머니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만 않아도, 와이프 입장에선 시어머니 말씀을 옹호할 마음이 생긴다. 아들이 아내보다 어머니를 우위에 둘 때,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배려가 차고 흘러넘칠 때, 우리 엄마 불쌍해! 를 시전할 때, 그 어머니의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는 가슴이 저며온다.


대화 3

남편 : 엄마가 아기 정말 많이 보고 싶어 하시니까 2주에 한 번은 가자.

아내 : 응 (... 당신이랑 아기만 가면 안 될까 ㅠ_ㅜ 나도 쉬고 싶어)


대화 4

남편 : 어떻게 시댁에 2주마다 한 번씩 가~현실적으로 그건 어렵지. 자기도 쉬어야 하는데.

아내 : 그래도 되도록 자주 가자~ 어머님이 아기 보고 싶어 하시잖아. 난 괜찮아 ㅎㅎ


대화 3과 4도 이렇게 다르다. 4는 얼마나 훈훈하고 아름다운가. 남편이 어머니보다 아내를 더 배려할 때(실제 마음과 달라도 상관없다! 말만이라도 제발!), 아내의 입에서는 고운 말이 나온다. 아, 이 남자가 나를 1번으로 생각하는구나. 내 눈치를 보고 나를 이렇게 배려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나 역시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고 싶어 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남편은 다음과 같은 방식을 택했고 나는 자다가 뺨 맞은 것 같았다.


남편 : 엄마, 2주에 한 번은 올게요~

아내 : ???? (나랑 상의도 없이??????????)


남편이 나쁜 게 아니다. 몰라서 그런 거다. 이 사소하지만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말 때문에 나는 감정이 있는 대로 상했고 '마누라의 감정 기복'이라는 롤러코스터에 강제 탑승한 남편 역시 멘탈에 후려침을 당했다. 남편과 시댁 가는 문제로 카톡을 할 때마다 팔 안 쪽이 뜨거워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나중엔 손 끝이 아팠다. 시댁 가는 게 그렇게 싫은 것도 아니었는데. 남편이 "2주에 한 번" 가자고 정해 놓으니 내 의사를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고 몸도 아팠다.


글로 정리하기도 힘든 이 문제로 끙끙대다가 결국 남편에게 내 감정을 털어놨고, 묵은 먼지 같은 감정을 뒤집어쓴 남편은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그런 것 같다. 어디까지나 추측). 내 브런치를 구독하지 않는 남편에게 우연히라도 이 글을 읽게 된다면 1) 사랑하고 2) 고마운데 3)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이건 제발 지켜줘 라고 전하고 싶다. 어머니 말씀은 나에게 그대로 전하지 않기 & 무조건 옹호하지 않기.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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