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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Dec 24. 2019

육아와 직장생활의 공통점

팀장처럼 일하는 팀원 그게 바로 나일세 

육아와 직장생활이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직장에선 돈으로 보상을 받고, 육아는 아이의 웃음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것만 다르다. 본질은 비슷하다.


나, 엄마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팀장이다. 그런데 팀원처럼 일하는 팀장이다. 팀장은 팀원 관리와 컨펌이 주된 업무인데 나는 팀원처럼 기획하고 팀원처럼 섭외하고 팀원처럼 발주 넣고 팀원처럼 보고서 쓰는 팀장이다. 당연히 모든 책임은 팀장에게 있다.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기면 팀장은 맹렬하게 비난받는다.  


남편, 아빠의 역할은 무엇인가? 남편은 팀원이다. 그런데 팀장처럼 일하는 팀원이다. 팀원은 1) 눈치 빠르고 2) 행동 빠르고 3) 팀장 비위만 잘 맞추면 중간 이상은 가는데 일단 행동이 (팀장에 비해) 느리다. 본인은 눈치 하나는 빠르다고 자부하나 가끔은 왜 저렇게 눈치가 없나 싶다... 업무 욕심도 별로 없다. 시키는 일만 겨우 하고 했던 업무만 반복하려고 하지 다른 업무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 가끔은 시키는 일을 하면서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팀장은 속이 터진다. 팀원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프로젝트가 망해도 비난받는 건 팀장이다.


그게 나다 나야 나라고!   #엉엉

양가 식구들의 역할은 무언인가? 같은 조직 내 다른 부서 사람들이다. 가끔 협조와 합의를 구해야 하는 타 부서 사람들. 타 부서에서 예산을 지원받으면? 결재자로 올려야 한다. 그리고 눈치를 봐야 한다. 예산 지원이 없을 땐 '통보'로 넣고 싶은데 예의상 합의와 참조로 올린다. 상신의 주체는 나, 팀장이다.


직장 생활에도 고비가 있고 육아에도 고비가 있다. 일을 잘해서 성과급을 많이 받으면 기분이 정말 좋다. 동료 평가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한 줄 평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니! 살면서 그보다 좋은 칭찬이 또 있을까.


직장은 여차하면 때려치울 수 있지만 육아에는 '여차하면'이라는 게 없다. 육아에는 성과급도 없다(있으면 좋겠다). 아이의 웃음으로 많은 것이 상쇄되긴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할 때가 있다. 팀장님, 고생 많으세요. 팀장님, 대단하세요. 팀장님, 힘내세요! 같은 팀원의 딸랑딸랑 멘트도 필요하다. 칭찬과 인정은 최대한 많이, 비난과 평가는 넣어두기(팀원에게는 지나친 칭찬이 독이 될 수 있지만 팀장은 그렇지 않다! 일도 책임도 다 내가 진단 말이다! 칭찬을 해달란 말이다 모어 앤 모어!). 팀장은 이것을 원하고 또 원한다.


힘들다. 육아의 일만 이천 봉 중 또 하나의 고비를 넘고 있다. 감정이 주체가 안 된다. 어딜 가든 내 얘기만 한다. "저도 이런 얘기까진 하고 싶지 않은데요"라는 불필요한 전제를 붙여가며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늘어놓는다. 시간당 7만 원씩 주고 상담받는 사람들 이해가 된다. 내 얘기 들어주는 사람에겐 보상이 필요하다. 우울한 이야기, 반복되는 신세한탄, 누가 듣고 싶겠는가.


브런치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곳에 글을 쓰고, 홀로 마음을 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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