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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Jun 30. 2020

몸을 통한다는 것  

어릴 때 엄마 아빠 사이는 참 신기했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저녁엔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었다. 엄마는 아빠의 걸음걸이와 식성을 지적했고 아빠는 엄마의 피곤한 성격을 지적했다. 두 분 모두 배우자가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를 원했다. 괜찮은 남편, 괜찮은 아내로 보이길 원하셨다.


코 골고 냄새나는 아빠가 싫다면서, 엄마는 아빠와 30년 가까이 한 방을 쓰셨다. 부부는 함께 자야 한다는 게 두 분의 철칙이었다. 나중에 남자랑 같이 잘 수 있을까? 코 골고 냄새나는데? 남자랑 한 침대를 쓴다는 건 SF영화만큼이나 먼 미래 같았다.


결혼의 신비. 요즘은 남편과 한 침대에서 자고 싶다. 아이가 생긴 뒤 남편은 바닥, 나는 침대가 일상이 됐다. 남편과 살을 맞대고 잠들 때가 그립다. 부비적거리고 만지작거리다가 낄낄대고 종종 야한 짓으로 이어지기도 했던 신혼 일상이 그립다. 새벽에 뭉글거리는 품으로 파고들곤 했던 그때가 그립다.


몸을 통하는 건 대화가 통하는 것, 마음이 통하는 것만큼이나 중하다. 대화가 통하고 마음이 통하면 몸도 통하고 싶어 진다. 몸을 통하면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긴장과 설렘, 애정과 질투가 스며든다. 몸을 통하는 사이는 친밀하다.


남편과 암묵적 거리두기를 하다가 아이가 일찍 잠들면서 둘만의 시간이 늘어났다. 부부 사이에 텐션이 생겼다. 남편과 몸을 통하는 건 여전히 즐겁다. 일상을 나누다가도 즐겁게 몸을 통할 사람이 있다는 것. 편하게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내 것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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