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저기요 Jul 05. 2019

계획 임신을 계획한다는 것

육아를 하며 아이가 마냥 예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 새벽에 시조새처럼 끼루룩 울어대는 아이를 보면 잠시나마 아무도 없는 곳으로 텔레포트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이의 존재가 때때로 버겁게 느껴질 때면 과거에 쓴 일기를 본다. 아이가 없을 때,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쓴 일기를 보면 인간은 참 간사한 존재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 한편으론 숙연해진다. 


나는 계획 임신을 했다. 산부인과에 가서 피 검사를 통해 난소 나이를 진단 받고 배란 초음파를 본 뒤 병원에서 정해준 날 남편과 관계를 해서 아이를 가졌다. 임신은 마음만 먹으면 자연스럽게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계획 임신은 정말로 계획이 필요했다.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기까지 나와 남편은 긴긴 논쟁을 벌였다. 결혼 전 아이를 갖기로 합의를 했지만, 결혼 후에도 나에게 임신이란 먼 훗날에나 일어날 법한 막연한 일이었다. 온전히 내 몸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 책임도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게 부담스럽고 싫어서였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임신을 차일피일 미루는 와중에도, 임신의 가장 절대적인 요소인 물리적 나이는 한치의 오차나 봐줌도 없이 정직하게 카운트 되고 있었다. 


생물학적 노산의 기준이 점점 다가올수록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를 가질 거면 빨리 가지는 게 맞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도 자꾸만 생각이 나고, 주변에 아기를 낳은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나만 뒤쳐진 것 같다는 열패감이 들기도 했다. 가장 결정적인 건 회사 동료들의 연달은 임신이었다. 계획 없이 혼전 임신을 한 동료1과 계획 없이 둘째가 생긴 동료2를 보며 내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만큼 강한 질투와 부러움의 감정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당시 나는 피임을 하지 않고 남편과 정기적으로 부부관계를 하는데도 임신이 되지 않고 있었다. 정상적인 부부가 1년 동안 피임을 안 했는데 아이가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으면 '난임'이라고 한다. 어느덧 결혼한지 만 1년이 돼 가는 시점이었고 곧 난임의 범주에 속하게 될 터였다. 내가 난임이라니! 임신이 어렵다니! 의사 양반에게 내가 왜 고자가 되었느냐고 따저 묻고 싶은 심경이었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바로 그것 #두줄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나의 행동은 오로지 임신에만 꽂혀 있었다. 배란기에는 남편과 꼬박꼬박 관계를 갖고, 새벽 첫 소변으로 임신 테스트를 하며 선명한 두 줄이 뜨기만을 기다리는 게 매달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이런 앞뒤가 안 맞는 말과 행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남들 다 하는 걸 나만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몇달 간 계속된 임신 실패에 결국 병원을 찾았고, 나는 20년 넘게 생리를 했으면서도 나의 배란 주기가 내가 알던 것과는 꽤 다르다는 걸 처음 알았다. 병원에서 임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점쟁이가 날을 점지하듯 콕 찝어준 날은 내가 계획했던 날과는 달랐다. 결혼 전에는 계획 임신을 시도하는 선배들을 보며 '어떻게 임신을 계획하지?' 하고 의아해 했었는데, 임신이야말로 정확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지는 과학적인 현상이었다. 


나와 남편은 먹방 BJ가 방송 시간에 맞춰 엄청난 양을 먹어치우듯이 계획된 날을 기다렸다가 부부관계를 했다. 먹는 걸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도 먹는 게 일이 되고 의무가 되면 흥미를 잃기 마련인데, 우리 부부도 그랬다. 둘만의 가장 은밀하고 즐거운 행위가 아이를 갖기 위한 수단이 되다 보니 설레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병원에서 말하는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우리는 아이를 만들기 위한 부부관계를 했고 병원을 찾은지 한 달 만에 아이가 생겼다. 


계획 임신은 대학 입시랑 비슷하다. 성공과 실패가 명확하게 나뉘고, 시도할 땐 성공만 했으면 하는 간절함에 온 정신을 지배당한다. "대학만 들어가면"이라는 전제에 엄청난 기대와 설렘이 깔려 있는 것도 비슷하다. 임신을 계획할 땐 육아 고충을 털어놓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매주 사발식을 하며 숙취에 시달리는 대학생 친구를 보는 재수생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간절히 부러워했던 것, 가지지 못해 초조함과 조바심에 시달렸던 것을 나는 마침내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임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일생일대의 고민으로부터도 영영 자유로워지게 되었다(임신의 가장 큰 이점 중 하나다). 과거의 나를 돌이켜보며 현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 나라는 인간의 간사함을 반성해야 하는 이유. 잠투정 심한 아이를 달래며 나오는 한숨을 참아야만 하는 이유다. 






이전 11화 두 번은 못하겠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