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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Jul 29. 2019

아줌마의 몸무게  

누가 아줌마 몸무게에 신경이나 쓸까.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나의 몸무게에 나는 대단히 신경을 쓰며 산다. 나는 날씬하고 낭창낭창한 몸을 갖고 싶다. 부서질 듯 가느다란 몸까진 아니더라도 적당히 군살 없고 날씬한 몸으로 살고 싶다.


매일 아침 체중계 위에 서는 건 나만의 의식이다. 눈을 뜨자마자 일단 화장실에 간다. 그다음 속옷까지 벗고(남편이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다이소에서 산 디지털 체중계 위에 올라간다. 샤워 후에 몸무게를 재면 왠지 좀 억울하다. 젖은 머리칼 때문에 몸무게가 더 나갈 것 같아서다.


요즘 몸무게는 51.8부터 53.7까지 2킬로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고작 2킬로가 왔다 갔다 하는 것에 따라 내 기분과 자존감은 널을 뛴다. 몸무게가 덜 나가는 날은 기분이 좋다. 반면 전날 뭘 많이 먹고 잤거나 운동을 못해서 평소 체중을 초과한 날은 그렇게 찜찜할 수가 없다. 옆구리 군살이 눈에 띄고, 팔뚝은 퍼져 있고, 종아리는 유독 두꺼워 보인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맑지 않다. 육아 컨디션도 별로다.

 

매일 아침 작두 위에 오르는 심경 #떨린다으아아


임신 기간 동안 총 13킬로가 늘었다. 나에게 임신 전 몸무게란 회사 건강검진 날에나 재는 거였다. 임신 후 생소한 것 중 하나는 2주에 한 번 병원 갈 때마다 몸무게를 재고 그 숫자를 산모수첩에 기록하는 거였다. 흐잉! 내 몸무게는 나도 모르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내 몸무게를 재고 기록한다는 게 영 어색했다. 날짜 옆에 크고 선명하게 쓰여진 숫자를 볼 때마다 나와는 상관없는 숫자라고 모른 척해버리고 싶었다.


60킬로를 넘기 전까진 몸무게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다. 고3때 이후 앞자리가 6으로 바뀐 적은 없었는데, 16년 만에 다시 6을 마주할 용기가 안 났다. 그런데 마의 60킬로를 돌파하고 나니 오히려 이전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모두의 관심과 응원과 축복 속에 행복한 돼지로 살아 보자. 마음껏 살찔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하지만 낙천성이라곤 초기 세팅값에 없는 게 나였다.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한 성격 탓에 행복한 돼지가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신 호르몬의 영향으로 평소보다 기분 좋은 상태가 유지되긴 했지만, 살찐 내 모습이 만족스럽진 않았다. 임신한 여성이 아름답다는 말도 “고생하시네요” 같은 격려와 위로의 말로 들릴 뿐이었다. 동그랗게 나온 배가 귀엽긴 했지만 배 말고 다른 부위가 퉁퉁 붓고 턱살이 접히는 건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출산 후 원래 몸무게 언저리로 돌아가는 데 두 달이 걸렸다. 생각보다 빨리 빠진 편이었지만 맞는 옷이 하나도 없었다. 치마며 바지며 배가 볼록 튀어나와서 후크가 잠기질 않았다. 예전 옷을 입으려면 다이어트를 해야 했다. 


모유수유만 하면 살이 쫙쫙 빠진다는 건 거짓이었다. 젖이 잘 돌려면 잘 먹어야 했고, 한 숟갈 더 먹은 밥은 내 몸무게를 굳건히 유지시켜 주었다. 60킬로 아래로 떨어지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60까지는 금방 빠졌는데, 60에서 58이 되고, 58에서 56이 되고, 56에서 54가 될 때까지 각각 한 달이 걸렸다.


미용 체중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표준 체중만 유지해도 삶이 훨씬 가벼워진 걸 느낀다. 비싼 옷을 사 입지 않아도, 화장과 머리에 큰 공을 들이지 않아도, 내 몸을 내가 잘 컨트롤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매사에 당당해진다. 52킬로의 삶과 60킬로의 삶은 정말 천지차이다. 


늘어난 살과 이별한 뒤 임신과 출산이 준 외모 콤플렉스도 사라졌다. 25인치 청바지는 못 입더라도, 27인치는 입으며 살고 싶다. 55 사이즈를 공효진처럼 헐렁하게 소화하진 못해도, 66을 입었을 때 꽉 끼는 기분은 싫다. 요즘은 저녁을 안 먹는다. 현재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오늘 본 숫자를 내일 아침에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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