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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Jul 25. 2019

두 번은 못하겠어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외출하는 엄마들과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진심으로 리스펙트를 외치고 싶다. 임신 x출산 x육아라는 인생 역경 삼단콤보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겪다니. 육아도 힘들지만 임신과 출산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경험을 통해 그게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알면서도 '다시' 그 길을 택한 것에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사람의 욕심엔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건 자식 욕심이다. 자식이 정말 예쁜 건 맞다. 아이는 존재만으로도 행복을 준다. 내 속으로 잉태해서 내 밑으로 낳은 아이가 내 눈에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을 리 없다.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고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아이가 예쁜 것과 임신 출산을 두 번 겪는 건 다른 문제다.


출산 후기는 많이 봤어도 적나라한 산후조리 후기는 많이 못 봤다. 아이를 낳은 뒤 세세하게 찾아볼 여력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이를 낳으면서 붓고 벌어지고 찢어진 몸이 회복돼 가는 과정은 정말 처참했다. 진통 네 시간 만에 둘째 낳듯이 비교적 수월하게 아이를 낳은 출산드라 체질이지만, 산욕기는 정말 괴로웠다. 누가 이걸 다시 겪으라면 "제가 왜요!" 하며 멱살을 잡을 판이었다.


인간의 몸은 정말 대단하다. 특히 여자의 몸은 경이롭다. 양수에 불어 빨긋빨긋했던 신생아가 뽀얗게 살이 오르며 점점 예뻐지는 것처럼, 출산 직후 시한폭탄을 맞은 것 같았던 나의 몸도 6주가 지나니 점점 원상태로 돌아갔다. 지금 나의 몸은 가볍다. 연한 튼살 몇 개가 임신과 출산의 흔적의 전부다. 하지만 두 번은 못 할 것 같다. 아니 안 한다.


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무지한 편이었다. 변명하자면 미리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거라곤 선배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수준으로 여러 번 들려준 혹독한 출산 후기와, 이름처럼 '홀릭'될까 무서운 맘스홀릭 카페에서 읽은 글이 전부였다. 출산 이후 몸이 아무는 과정이 어떤지, 아무도 나에게 먼저 알려주지 않았었다.


우선 오로. 오로라는 게 애를 낳고 나서 이렇게 엄청나게! 쉴 새 없이! 쏟아진다고 아무도 나에게 안 알려줬다. 아이를 낳은 직후부터 몇 달치 생리가 한 번에 나오듯 시뻘건 피가 꿀럭꿀럭 쏟아졌다.  2주가 지나자 빨간 피는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정말 뭐라 설명하기 힘든(사실 설명할 수 있는데 너무 적나라해서 패스) 요상한 냄새가 났다. 내 몸에서 이런 게 나온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징그럽고 내가 짐승처럼 느껴졌다.


회음부 통증. 과연 나의 아래를 분만 이외의 용도(배설 혹은 부부관계)로 사용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은 직후 그로기 상태에서 든 생각이었다. 터지고 붓고 메스로 잘리고 꿰매진 나의 회음부가 너무나 처량했다. 가장 은밀한 신체 부위이자 여성으로서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쾌락이 집약된 부위인데. 나의 회음부는 갈퀴질을 당한 것처럼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분만 후 상태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짤


조리원에 가서는 꿰맨 부위가 터져서 회음부 재봉합이란 걸 했다. 마취 주사 맞는 게 더 아프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해서 마취 없이 다리를 벌리고 회음부를 꿰맸다. 여긴 어디이며, 난 또 누구인가. 속으로 '나 애도 낳은 여자야'라 중얼거리며 굴욕의 시간을 견뎠다. 구멍 난 회음부가 메워질까요? 의사 선생님께 물어봤더니 선생님이 해맑게 웃으시며 "여기는 똥이 묻어도 아물어요~"라 대답하셨다. 똥이 묻어도 아문다니... 처량한 와중에 왠지 웃겼다. 노련한 경험자가 건네는 건강한 위로였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소중히 여겨야 하는 보물 같은 곳이라고 그랬는데. 이제 나의 회음부는 똥이 묻어도 아무는 신체 부위가 돼 있었다!


훗배앓이. 늘어났던 자궁이 원래 크기로 돌아오면서 느끼는 통증인데 누가 이름 붙인 건지 정말 잘 지었다. 훗, 다 끝난 줄 알았지? 후폭풍이 몰아친다 우르르 쾅쾅! 같은 느낌이었다. 안에서 배를 쥐어뜯는 것 같은데 뭐라 참 표현하기 힘든 신박한 증세였다. 아이를 낳은 후에도 이런 진통 비슷한 고통이 남아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대체 아픈 건 언제 끝나나요.


젖몸살은 견딜만했다. 젖몸살보다는 모유수유로 인한 부담이 내 마음을 짓누르는 게 더 힘들었다. 아이를 낳은 직후부터 내 가슴에서 젖이 얼마나 나오느냐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새벽 12시 37분에 아이를 낳았는데, 약 세 시간 후에 첫 수유콜을 받았다. 아니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젖을 물려요 엉엉!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그땐 제정신 아닐 때라 그냥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몇 달이 지난 뒤 떠올려 보니 정말 하드코어 한 기억이었다.

초유 & 애증의 유축기 투샷

모유가 아이의 두뇌 발달과 건강에 좋다는 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하지만 모유천국 불신지옥은 좀 아닌 것 같다. 젖이 아예 안 나오는 사람도 있고, 아파서 못 먹이는 사람도 있고, 아이가 못 먹는 경우도 있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모유천국"을 외치고 있으니 모유 말고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거나 잘 나오는 젖을 일부러 끊는 건 엄마 노릇을 거부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이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건 정말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젖을 빠는 아이를 보면 내게도 존재하나 싶었던 모성애라는 유전이 퍽! 하고 솟구치는 것 같았다. 엄마니까 당연히 모유를 먹여야 한다는 강박만 좀 덜했다면. 언제까지 모유를 먹일지 내 스스로 결정하고 계획해도 아무 비난받지 않는 분위기였다면. 모유를 먹이는 동안 더 기쁘고 행복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잘 나오는 젖을 끊기로 결심했을 때, 살면서 가장 큰 죄책감을 느꼈다. 내 몸 편하자고 아이를 희생시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말고도 많은 엄마들이 이런 고민을 할 텐데, 그 죄책감에 괴로워했던 사람으로서 힘주어 말하고 싶다. 엄마의 의무는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없다고. 엄마의 건강, 엄마의 자신감, 엄마의 행복만큼 중요한 건 없다.


임신과 출산은 고통이다.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지만 그건 정신적 스트레스와 누적된 불행을 종합해서 하는 말이고. 임신과 출산은 차원이 다른 물리적 고통이다. 꼬물거리는 아이는 정말 너무 예뻐서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지만, 나는 이 과정을 반복할 정도로 낙천적인 사람은 못 된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망각이라고 한다. 망각이라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썼다.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임신과 출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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