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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May 05. 2020

중2병은 여전히 진행중

이제 나는 존재하되 존재하는 티를 너무 많이 내면 안 되는데, 후자에 목숨 걸고 살아온지라 육아 일상이 편안하다가도 문득 조바심이 든다.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한다거나, 육아가 힘들다고 징징댄다거나, 나 그래도 아직 괜찮은데 & 놀고 싶다 식의 발언을 너무 많이 하는 것 등등 <- 육아의 세계에 입성하기 전에 이미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을 보며 이해 못했던 부분이다. 너무 철없고 중2병 같고 '어쩌라고' 싶었었다.


나라고 뭐 다르랴. 날 보는 사람이 없어도 나는 내가 너무 신경이 쓰인다. 막 되게 예뻐 보이고 싶은 건 아닌데 추레하게 보이긴 싫고, 돈이 없어도 돈 없는 티는 안 났으면 좋겠고, 아이를 키우며 예쁘고 행복한 엄마처럼 보이고 싶은 이 가식과 위선.


코로나 집콕 기간에 나의 고질병인 '이직병'이 도졌다. 내가 회사에서 쓸모없는 부품 같다고 여겨져 자존감이 하락한 것도 원인 중 하나였지만, 계절이 도래하듯 때가 되니 병이 도진 것도 있었다.


인정받고 싶고 드러나고 싶고 잘했다고 칭찬받고 싶고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고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싶은 중2병. (타인의 관종 기질을 너무 쉽게 비난하면서도 내가 관종인 걸 부정할 수 없는 이 아이러니!) 새 회사에 가서 능력을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다는 이 유치뽕짝스러운 마음.


10개쯤 해당되는 거 같은데...?!!


나!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 나는 어떤 경험을 하며 살아왔는가?

나! 나는 어떤 분야에 특화돼 있으며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 이걸 너무너무 어필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시기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그럼 면접을 봐야 한다! 면접 아니면 아무도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으니까. 내가 나에 대해서 어필할 기회가 없으니까!


그렇게 코로나 기간에 한 번의 화상 면접을 포함해 총 3번의 면접을 봤다. 전화 인터뷰라는 것도 해봤다.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애기 맡기고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녀 봤다. 현재 회사가 나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육아를 하기에 최적의 조건인데 이 병이 도지면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지금은 결과를 기다라고 있다. 조바심이 극에 달했다가 '하는 데까진 해봤다'라는 자기만족 & 정신승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나이를 먹으면, 이전보다 성숙해질 줄 알았지. 나에게서 내가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은 줄어들 줄 알았지. 몸을 낮추고 풀처럼 바위처럼 버티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깃털처럼 가볍고 불안정한 속성을

왜 버리질 못하니 왜.


참 지긋지긋한 중2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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