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앙데팡당X아트렉쳐/새무]
학부생 신분으로 고향을 떠나 도시살이를 하는 것은 고되지만 설레는 일이 가득하다. 지방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인프라와 문화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줬다. 최신 전자기기로 무장한 채 유행하는 옷을 입고 한 손에는 프랜차이즈 커피 한잔까지 들면 바쁜 일상 속 휴식을 취하는 현대인임을 느낀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고층 건물들과 도심을 수놓은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들은 마음을 사로잡는다. 막대한 자본으로 건설되어 번쩍이는 도심 속을 거닐고 있으면 마치 성공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나 또한 도시의 풍경이 되고 일상이 된다.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스펙터클로 가득한 현대사회를 설명한다. 드보르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의 폐단을 비판하며 자본주의가 삶을 장악하는 방식, 곧 상품 경제 사회가 인간을 소외시키고 소유하는 방식을 스펙터클로 지칭하였다. 쉽게 말해서 스펙터클은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매스미디어 속에서 끊임없이 복제되고 반복되는 이미지이다. 이 ‘이미지’는 상품화의 최고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기 드보르는 저서를 통해 스펙터클은 소비자들은 자본주의가 생산해내는 상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게 만들고, 노동자는 자본주의의 풍요로움과 화려함으로부터 소외된 채 스펙터클의 사회에 살아가게 된다고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도시와 자본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기 드보르와 국제상황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의 상징인 스펙터클을 파괴하고 도시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전략들을 세운다. 그들은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이론과 일상생활 비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서 도시를 하나의 시각적인 세계로 묘사한다.
국제상황주의가 스펙터클 공간의 파괴를 위해 사용한 전술은 전용(detournément), 표류(dérive), 심리지리(psychogeograph)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술들의 최종적인 종착지로서 일원적 도시계획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 전용(detournément)는 기존 예술요소들을 재전유 하는 방법으로, 스펙터클을 파괴하기 위한 핵심전략이기도 했다. ‘고급’과 ‘저급’을 결합함으로써 ‘깊음’과 ‘얕음’의 대립도 해소하려 했고, 이런 의미적인 변용과 함께 재활성화를 통한 가치회복의 기획을 가능케 하는 유토피아적 잠재력이 발휘되기를 원했다. 이것은 회화에 있어서 포스트 모더니즘적 ‘혼성(hybridity)’의 전조를 예견하는 것이기도 했다. 표류(dérive) 주위 환경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기법이다. 다소 당황스럽게 들리겠지만 표류는 일종의 즐거운 집단적 놀이방식이다. 일시적으로 다양한 주위 환경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보행자적이며, 불완전하며, 주관적이고 시간적인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본다.
이는 자연스레 ‘심리지리’(psychogeography)로 이어진다. 드보르는 심리지리를 “의식적으로 조직된 것이든 아니든, 지리적 환경이 개인의 감정과 행동에 끼치는 특수한 효과에 관한 연구”로 규정한다. 평소에 다니던 것과는 다른 경로를 취할 때, 도시는 우리에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심리지리는 이렇게 “도시를 탐험하기 위한 재미있고 창의적인 전략”을 연구한다. 드보르의 ‘벌거벗은 도시’(1957)는 파리의 열아홉 구역을 연결해 그런 심리지리적 배회의 가능한 경로를 가설적으로 제시한다.
표류와 심리지리는 ‘통합적 도시주의’(unitary urbanism)로 나아가게 된다. 앞의 두 가지가 도시의 심리적 의미를 찾아내는 발견적 기획이라면, 통합적 도시주의는 거기에 기초해 바람직한 환경을 구축하는 창조적 기획이라 할 수 있다.
기 드보르의 <벌거벗은 도시>는 국제주의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와 대조적인 도시공간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공동체 예술가 그룹 플라잉시티(flyingCity)는 이러한 전용과 표류, 그리고 심리지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플라잉시티는 서울의 도시조직 형성 과정이 도시 공동체이 변화에 미친 영향, 과밀과 집적의 조건에서 성장하는 도시에 대한 대안적 사유방식에 대해 작업한다. 이들은 도시의 생성과 변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도시공동체에 관한 연구와 자본주의 사회가 직조하는 도시의 면면에 관한 대안적 사유와 실천을 지향한다.
도시에서는 날마다 많은 건물들이 사라졌다가 새로 지어지고, 가게가 들어선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다른 가게로 바뀌는 것은 흔한 일상이다. 우연히 철거되고 있는 건물을 지나갈 때면 철거 이전에 무슨 건물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동할 때 산책이 아니고서야 목적지를 향해 바삐 이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심히 본 것이 아니라면 늘 가는 길목에 있는 건물에는 무심하다. 시끄럽고 화려한 도시 속 현대인들의 일상은 따분하고 지루해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발걸음이 닿는 대로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을 여행하며 반복적인 일상에서 탈피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문헌>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89822&cid=40942&categoryId=31528
- https://sites.google.com/site/urbanp201/Home/text/sanghwangjuui-inteonaesyeoneolgwa-dosi---pyolyu-jeon-yong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0262038215&code=960202#csidx9fbabd06aa3836a8087ecf50cda7a42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6122150015&code=96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