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모 09]
코로나로 외부 활동, 특히 해외여행이 극도로 자제된 요즈음 가장 그리운 것은 미술관 투어다. 현재 각 미술관에서 VIRTUAL VISIT 시스템을 통해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그 스케일과 표면을 직접 보는 것과 액정 너머 보는 건 다르니까.
그래서 이번 기회에 지금까지 다녀온 미술관과 비엔날레를 리뷰해보려 한다. 첫 번째 미술관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위치한 미술사 박물관. 다녀온 지 조금 되어서 기억이 흐릿하지만, 사진도 잘 못 찍었지만 애초에 리뷰용으로 찍은 게 아니니 양해 부탁드린다.
빈 미술사 박물관은 유럽 대륙의 3대 미술관에 꼽힐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소장품도 다양하다. 독일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웬만한 작품 설명은 영어로도 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독일어 설명이 더 자세하게 되어 있기는 하다.
박물관은 보건부의 긴급 지침으로 잠시 문을 닫고, 7월 1일부터 개관 예정이라 하니 혹시라도 계획을 세우는 분은 참고하시길.
이집트 컬렉션부터 주화, 비엔나 도시 컬렉션까지 매우 다양하지만 시간 관계상 회화 갤러리만 본 점, 양해를 미리 구한다. 본 전시는 르네상스 초기 회화부터 19세기 회화까지, 약 5세기 정도의 회화 변천사와 각 국가별 회화 스타일을 볼 수 있다.
아마 이 부분이 전시 가장 초반의 작품일 것이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유디트>를 시작으로 첫 번째 관은 알브레히트 뒤러와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죽음과 성(참고 웹사이트 링크 참조)’을 다루면서 루카스 크라나흐의 그림 속 영웅적 여성들의 표정이 똑같음을 지적했지만, 사실 그는 꽤 사랑받는 화가다. 독일 르네상스 시기에 활동했고, 소위 ‘멍 때리는’ 표정의 인물과 개성 있는 화풍에 팬도 많다. 이 그림도 섬세하게 잘 그린, 완성도 높은 작품이지만 홀로페르네스의 목과 칼을 쥔 여성의 얼굴은 아주 무표정해 어떤 정물을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에 두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의 그림 속 여성의 표정을 대부분 비슷하고, 남성 얼굴 표현은 그나마 좀 다양한 편이다. 르네상스 시기 의복의 특징인 스퀘어 넥과 허리끈, 부푼 소매가 눈에 띈다. 섬세한 질감 묘사는 르네상스 화가들의 전매특허다.
미술사 박물관 홈페이지 속 크라나흐의 작품을 찾아보면 대략 이런 표정들이다. 약간 맹한 표정에 뾰족한 턱, 발그레한 볼, 동그란 얼굴형에 넓은 이마. 보통 붉은 벨벳 계열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 무언가를 쥔 손은 꼭 장갑을 끼고 있다.
(마지막 작품은 약 1530/1540년 작품이다.)
아마 그가 주로 모델로 삼고 그린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혹은 루카스 크라나흐가 이렇게 생겼을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릴 때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얼굴을 닮게 그리는 경향이 있으니.
또 다른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이다. 아래 그림은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린 것 같다. 좀 더 생동감 넘치고 인물의 개성이 살아있다. 공통적으로 붉은빛이 들어간 의복을 입은 걸 보니 당시 상류층이 붉은 옷을 많이 입었나 보다, 추측할 수 있다. 목에 초크처럼 두른 두꺼운 장식, 둥근 고리로 엮은 장식은 매우 화려하다. 허리를 가늘게 하려고 동여맨 끈(일종의 코르셋처럼 보인다.)은 스퀘어넥으로 깊게 파인 윗부분과 만나 풍성한 가슴과 가는 허리를 강조한다. 치마와 팔소매에 주름을 많이 넣어 풍성하게 강조함으로 당시 여성 의복에 요구된 것이 가는 허리와 풍성한 볼륨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크라나흐가 그린 여성 인물의 자세가 상당히 굽어있다. 어깨가 앞으로 쏠려 둥근 어깨선을 만들며, 허리가 굽어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라인을 만들지만, 이 그림을 보는 나는 왜인지 허리를 꼿꼿이 피게 된다. 모르겠다면 아래의 그림을 보자. 당시엔 그림을 배우기 위해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모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래도 그러한 경우인 것 같다.
좌측 루카스 크라나흐 그림 속 사람은 어깨와 허리가 굽은 반면, 조셉 하인츠 그림 속 인물은 상대적으로 바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손이나 장신구 디테일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인물 형태, 의복과 표정이 아주 흡사하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흡사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왼쪽 인물은 유디트, 오른쪽 인물은 살로메를 그린 작품이란 점이다. 그러니까 죽은 남자의 얼굴도 매우 유사하지만(이 정도면 쌍둥이다) 왼쪽은 홀로페르네스고 오른쪽은 세례 요한이란 것.
유디트는 칼로 목을 베어서 칼을 들었고, 살로메는 하사 받은 목을 쟁반에 들고 있는 묘사로 둘을 간신히 구분하고 있다.
다음에 등장하는 화가는 알브레히트 뒤러 다. 예수님을 닮은 자화상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그 자화상은 빈 미술사 박물관에 없다. 정말 아쉽게도 본인이 스페인에 있었으면서 방문하지 못 한 프라도 미술관 소장이라고 한다... 마음이 아프다.
뒤러는 주로 종교화를 많이 그렸다. 아래 그림 역시 기독교 전설을 그린 그림이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이교도 왕자인 아차티우스와 그의 휘하 9000명을 병사로 모집한다. 천사들은 그들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한다면 승리를 보장하리라 약속한다. 화가 난 하드리아누스는 그들을 모두 죽이라 명령한다. 개종한 사람들은 전투에서 순교하며 버티고, 이에 그들의 적 천여 명이 합류해 총 만 명의 기독교 인이 순교한다. 뒤러는 자신을 중앙에, 그리고 옆에 인본주의자 콘라드 셀티스 Conlad Celtis를 함께 두어 그림 내부에서 관찰하는 형태를 취한다.”
해설에 따르면 죽어가는 이들이 그리스도교이고, 그들을 박해하는 인물이 로마인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착용한 터번은 아랍-이슬람 계를 연상시킨다. 중세 십자군 전쟁을 지나며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반감을 이렇게 나타낸 건가? 생각해본다. 화면 중앙에 어울리지 않게 검은 옷을 입고 관망하는 이가 바로 작가, 뒤러 자신이다.
‘알레고리의 여성 형태’라는 제목인데, 알레고리라 함은 추상 명사를 형상화한 것이라 간략히 설명할 수 있다. 이 그림은 특이하게 양면으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앞에 있는 그림은 찍어두지 않아 모르겠다.
설명을 보면, “가득 찬 돈가방을 들고 가슴을 드러낸 늙은 여인이 나타난다. 뒤러는 이 형상으로 삶의 덧없음(vanitas) 혹은 유혹이나 욕심의 알레고리를 전달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다른 해석으로는, Haller는 부유한 집안의 여식 Dorothea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풍자하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후 그녀는 폭력적이고 자제력 없는 남편과 헤어졌다.” 고 나온다.
이 시기에 늙은 남성을 그린 작품은 많아도, 늙은 여성을 그린 작품을 발견하기 힘들다. 그래서 신선했으나, 그리 좋은 의도에서 노인을 그린 건 아니다. 죽을 날이 가까운 노인이 돈가방을 든 모습은, 금전적 풍요는 죽음 앞에서 덧없단 의미에서 바니타스 vanitas를 의미한다. 성적인 의도와 물질적 풍요 역시 욕심이나 유혹의 알레고리와 연결이 된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 1세와 그의 가족을 그린 그림. “이 그림은 비엔나에서 열린 두 번의 결혼식, 그리고 Jagellonian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와 관계를 기념하기 위해 그려졌다.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그의 첫 번째 아내 Maria von Burgund(그녀는 그림이 그려지기 30년쯤 전에 죽었다.) 이 둘 사이에 아들 필리페(역시 1506년에 죽었다)가 있다. 막시밀리안의 손자가 가운데 위치해있다. 후대 황제 Charles V(가운데) Ferdinand I(왼쪽)이고, 헝가리와 보헤미아 왕가 후계자가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붉은 루비 목걸이를 한 여자가 막시밀리안과 아주 사이가 좋았다 하는, 그의 첫 번째 아내 마리아 본 부르고뉴이다. 사실 이 그림은 여성의 눈 때문에 찍었는데, 웹사이트를 뒤져도 그녀가 눈을 이렇게 뜬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지병인가 싶어 다른 그림을 찾아봤는데 다른 그림은 시선 처리가 평범하다. 이 그림이 그려졌을 때 죽었기에 그랬을까 싶었는데, 그렇다기엔 아들의 시선 처리 역시 평범하다. 이 화가는 막시밀리안의 두 번째 아내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차의 초상도 눈이 위를 향하게 그렸던데, 왜 이렇게 그렸는지 아주 의아하다.
아들의 얼굴엔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손자들의 턱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전병이 드러난다. 근친혼으로 인해 유전병이 점점 심해졌는데, 외형적 특징은 턱이 돌출된 것. 이 때문에 입을 다물기 힘들었다고 한다.
베른하르트 스트리겔은 이 막시밀리안 황제와 그의 가족 초상화를 상당히 많이 그렸다. 특히 막시밀리안의 초상은 거의 해마다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완전히 우측 측면 얼굴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도 완전 우측 옆모습을 그렸다. 왼쪽 얼굴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상처가 있었는지, 혹은 이게 그 시대 유행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르네상스 미술을 보다 보면 무언가 어색한 부분이 보일 때가 있다. 중세 미술은 대놓고 인체를 엉망으로 묘사해서 오히려 조화로운(!) 경우가 있는데, 르네상스 미술은 다른 묘사가 매우 수준급이기에 어색한 부분이 더욱 튀어 보이곤 한다. 아래 그림이 그러한 예시이다. 동굴과 하늘, 질감 묘사가 자연스러운 데 반해 성모의 인체 비례나 자세가 불안정하고 가장 앞에 위치한 두 인물의 표정이 어색해 엄숙하면서도 아주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스트리아의 어퍼 오스트리아 세인트 플로리안 수도원에 기증된 재단화다. 12개의 패널로 이루어진 재단화로, 아직 일부는 세인트 플로리안에 있다. 이 그림은 특이한 시점으로 그려졌는데, 관객은 무덤 동굴에서 거의 동일한 위치에 있으며 그림 속 상황에 증인이 된다.”
설명이 아주 길어서 좀 잘랐다. 설명을 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보통 마리아와 예수를 화면 중앙에 위치시키는 구도에서 벗어나 깊은 공간을 연출한다. 특히 예수가 저렇게 뒤에, 부수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관객이 그림 속에 동화되는 구도로, 마치 동굴 안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자, 이제 이번 글의 마지막 그림이다.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지만...
수미상관의 구조로, 루카스 크라나흐의 그림으로 마무리한다. 딱히 그의 팬은 아니지만, 이쯤 되니 그의 그림이 묘한 매력이 있는 건 인정하게 된다.
“성경 이야기에 따르면, 신은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고 그중 유일하게 죄가 없는 롯과 그의 가족을 대피시킨다. 인물들 뒤로 불타는 도시가 보이고 그들이 이동하던 중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가 보인다. 화면 중앙엔 롯의 두 딸이 아비를 유혹하는 대신, 술을 따르며 그를 취하게 만들고 아이를 가지려 하는 중이다. 그들은 (당시 기준으로) 현대적 의복을 입고 있는데, 이는 비도덕적인 상황에 더욱 강한 효과를 주기 위해서이다.”
(루카스 크라나흐는 참 정들만하면 정 떨어지는 내용을 그린다.)
무교에 성경 내용을 잘 모르는 내가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싶어 해설을 여러 번 읽었다. 이 글을 쓰며 비로소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는데, 결국 롯의 두 딸이 자손 보존을 위하면서, 아버지의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 모르게 근친 성관계를 가져 아이를 가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롯의 아내를 소금 기둥으로 만든 건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독자를 위해 성경 내용을 붙인다.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30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젯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5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6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현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지만 저 시대 화가들은 이 일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양한 버전으로 그려놨다. 빈 미술사 박물관에도 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있는데, 시대별로 차차 소개하려고 한다.
여기까지 빈 미술사 박물관의 독일 르네상스 시기 그림을 소개했다. 다음은 동 박물관 플랑드르 지역,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뢰겔의 작품으로 돌아오도록 하겠다!
참고 웹사이트
빈미술사박물관웹사이트
롯과 그의 딸들
http://guseong.org/mn0210/dailybibleboard/?mod=document&uid=210
<죽음과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