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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Oct 09. 2020

작품과 액자

[berry 09]

Part1. 치유 (부재: 들어가며)


작년 이맘때 올해의 작가전을 자의로 한 번, 타의로 두 번 관람하고 나서 전시에 대해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껴, 앞으로 미술 전시를 가지 않기로 다짐했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확산으로 미술관에서 직접 작품을 관람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나와 전시회의 사이는 멀어졌다. 그러던 중, 8월 한 달간 많은 일을 하게 되었고 딱 하루 쉬는 날을 갖게 되었다. 몸도 지치고 상황도 상황인지라 집에서 쉬려고 했는데 친구가 같이 전시 보러 가자고 해서 썩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빅아이즈’ 전시를 보러 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날은 8월 한 달 동안 가장 즐거웠던 순간으로 기억되는 날이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전시를 보는 사람은 나와 친구 둘뿐이었고 지금까지 본 전시 중에 가장 조용한 전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처음으로 미술을 통해 치유 받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없이 일 처리를 해야 했던 지난 며칠 간의 상황과는 달리 전시장에 서 있는 이 순간은 평화롭고 어느 누군가에게도 방해받지 않았다. 한 작품 한 작품 보고 싶은 만큼 보고 가볍게 지나가고 싶은 부분은 쓱쓱 넘어가고 다시 보고 싶으면 되돌아가서 보는 전시가 편했다. 전시가 편하게 다가왔다. 지난날의 감상문을 쓰기 위해 갔던 전시와는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작품 설명을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모든 작품을 꼼꼼히 봤던 나의 모습은 이 전시에선 없었다. 전시를 보는 상황이 편하다 보니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Part2. Harmony


전시를 보며 눈길이 간 것은 작품을 담고 있는 액자였다. 거의 모든 작품이 자신과 어울리는 다양한 액자로 전시되어 있었다. 디자인이 너무 과한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액자도 있었고, 어떤 것은 작품과 조화를 이루어 작품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것도 있었다. 


「가파른 등반」 작품을 보자. 회색빛의 거친 질감으로 되어 있는 계단을 오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전반적으로 어둡고 음침한 골목을 연상케 한다. 이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콘크리트 질감의 차갑고 경직된 날카로운 액자는 작품 속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고 있다. 심지어 액자를 자세히 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 선이 그어져 있어 딱딱한 벽돌을 떠올리게 해, 그림 속 돌계단과 이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새로운 날」 작품은 액자를 통해 그림의 재미를 더한 듯 보였다. 아이가 짚고 있는 울타리의 느낌을 살려 나무 액자로 전시되어 있었다. 단색의 일반적인 액자였다면 독립적으로 보였을 작품이 나무 액자 속에 있어, 마치 작품 속 아이가 내 앞에 있는 것처럼 작품을 공감각적으로 느끼게 해줬다. 


작품 「영원」의 액자는 몽환적인 작품 분위기를 살려준다. 일정하게 박혀 있는 점은 규칙적이면서도 각 모서리에 벌을 연상케 하는 문양과 어우러져 전반적인 액자 분위기를 깔끔하면서도 독특하게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여러 얼굴을 담고 있는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전원 탑승」의 액자는 차갑고 깔끔한 색상으로, 다채로운 색상을 사용한 작품에 시선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동시에 액자를 두르고 있는 금색 띠는 작가가 행복했던 시절에 그린 현 작품과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꽃의 아이」 작품은 액자와 전반적인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다. 무지개, 꽃, 풀잎, 아이가 입고 있는 옷들이 풍기는 밝고 신비로운 느낌이 액자의 패턴 띠와 잘 어울리고 있다. 그리고 너저분한 느낌의 액자 디자인은 작품 속 아이가 앉아 있는 풀밭과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구획된 전시 공간 속에 있는 작품이 또 다른 공간인 액자 속 공간을 만나 형성하는 분위기가 재밌었고 액자와 작품의 조화로 새로운 관점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전시를 보며 느끼는 신선한 감정은 언제나 반갑다. 이번 계기로 미술 전시를 다시는 가지 않겠다던 나의 다짐은 무너졌다. 더 다양한 미술 전시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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