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ry04]
불온한 데이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3,4 전시실
2019.03.23.~2019.07.28.
Chris Shen
<위상 공간>
이 작품은 로봇 청소기의 기술적 특징을 조형적인 오브제로 탈바꿈시킨 작품이다. 바닥에 놓인 360개의 로봇 청소공은 자유롭게 이동하고 이들의 운동 궤적은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송출된다. 공들의 위치와 운동량, 회전, 진동으로 만들어내는 점들은 화면에 끊임없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복잡하게 얽힌 나선형의 선들을 만들어 낸다. 작가는 로봇 청소공을 하나의 입자로 보고 이들의 움직임이 기록되는 전시장 공간을 위상 공간으로 상정했다. 즉 위상 공간 상의 한 점이 한 입자 상태를 운동의 관점에서 완벽하게 기술하듯, 화면 위의 추상적인 선들은 개별 로봇 청소공의 운동 상태와 모든 자유도를 기록한다. 작가는 Carlo Rovelli의 『모든 순간의 물리학』을 인용해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이 로봇 청소공을 우주 공간에 무리 지어 나타나며 끊임없이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는 기본 입자에 비유한다. 그리고 위상 공간으로 상정한 전시장 공간을 우주공간이라고 비유한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로봇 청소공이 스크린에 복잡하게 얽힌 나선형을 만들어 내고 이 스크린은 개별 로봇 청소공의 운동 상태와 모든 자유도를 기록하는 것처럼 개별의 입자들이 우주공간에서 다양한 궤적을 만들어 나가면서 우주가 돌아가는 것에 역사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러한 입자들이 우주의 문자처럼 무수히 다양한 조합을 이루고 은하의 거대한 역사까지 알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Rachel Ara
<나의 값어치는 이 정도(자가 평가 예술작품): 한국 버전>
이 작품은 ‘엔도서’라는 데이터마이닝(1)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자신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서 보여주는 디지털 아트이다. 작품에 설치된 웹카메라가 집계한 관람객 수 및 SNS, 작품 거래 사이트, 종합 주가 지수인 FTSE 100에 작가와 작품명이 언급된 횟수를 실시간으로 반영하여 작품 값이 네온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렇게 측정된 작품 가격이 작품의 실제 가치와 갖는 연관성은 있을지 의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높은 가격에 측정되기 위해서 성별, 인종, 나이 등과 같은 여러 요소들이 작업에 포함되도록 프로그래밍하여 자신과 작품의 가치, 가격을 결정하는 조건들을 탐색하고 조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의 값어치’로 설정된 수치가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지도 고려해 보아야 할 사항이다. 현재 어떠한 작품의 가격을 매기는 것에 있어서 기준이 모호해, 정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존의 많은 데이터 가운데에 숨겨져 있는 유용한 상관관계를 찾아내서 작품의 가격 측정에 도움을 주는 것이 나온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다. 하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이것이 가지고 있는 우려할 점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데이터마이닝: 많은 데이터 가운데 숨겨져 있는 유용한 상관관계를 발견하여, 미래에 실행 가능한 정보를 추출해 내고 의사 결정에 이용하는 과정
Harm van den Dorpel
<내포된 교환>
이 작품은 언어, 소프트웨어 개발, 건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내포(2)’구조에 주목한다. 작가가 개발한 생성 소프트웨어는 그가 사전에 결정한 모집단에서 두 가지 디자인을 취한 후, 서로 다른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모양과 패턴을 자동으로 만들도록 고안되었다. 이렇게 고안된 소프트웨어는 유전자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작가가 채택한 두 가지 디자인을 엄마, 아빠라고 보고 새로운 모양과 패턴이 만들어지는 것을 자식으로 본다. 자식이 부모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것처럼 이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모양과 패턴은 작가가 채택한 모집단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형태를 띤다. 그리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가족단위가 커지는 것처럼 이 소프트웨어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가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갖는 의의는 예술가가 손으로 직접 제작해야만 하는 전통적인 예술 매체를 사용하지 않고 작가가 소프트웨어를 직접 프로그래밍해서 예측할 수 없는 미적 결과물을 생산해 낸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예술의 범위가 넓어졌음을 시사할 수 있다.
(2) 내포: 루틴이나 데이터의 작은 블록을 큰 루틴이나 데이터의 일부에 끼워 넣어 구성된 구조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미술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과학기술과 융합하는 예술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시대에 흐름에 맞춰, 이러한 전시회를 전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불온한 데이터 전시 팸플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