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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Oct 23. 2024

독일 집에서 겨울맞이 _1

발꽁꽁 손꽁꽁 코꽁꽁

흔히 말하는 '대 환장의 시간'이 돌아왔다. 해가 저물어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고 자연스레 어둠이 늘어난다. 밤이 길어지면 추위도 찾아온다. 자라나는 시절동안 한국의 뜨끈한 온돌, 구들장을 지지는 따듯함으로 키워진 이들에게는 피에 새겨진 '겨울나기 온도'를 애써 외면해야 하는 시간이기도하다.


보일러가 없는 나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춥냐면, 여기는 바닥을 데우는 난방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기를 데우는 '라디에이터'- 하이쭝 이라고 하는 놈이 온갖 집에 다 달려있다. 그 말인 즉슨 바닥을 데워주는 따뜻함은 하나도 없다는 것. 그냥 없다. (있긴 있다. 신식건물이나 큰 돈 들여 공사한 그런집에는. 우리집엔 없지만)


실내에서 실내화를 그냥 신는 게 아닌게 정말 바깥 온도보다도 차가워진 바닥은 도무지 적응이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집에서 신발을 신는 것이 문화라고 하지만서도 내가 방문한 독일 집들은 대게 실내화를 따로 구비해놓고 손님에게 내어주었다. 아, 물론 공사를 위해 집에 방문하는 이들 - 소위 테크니커에게는 신발을 벗어주길 권유할수는 없다. 그냥 깔끔히 포기 하고 나가면 바닥을 슥슥 닦는 것이 모두에게 평화롭다. 그분들의 신발은 '작업화'라서 테크니커의 직업을 존중한다면 신발까지도 존중해야 한다.


바닥이 카펫인 집은 사시사철 '바닥을 어떻게 하면 꺠끗하게 유지할까'- 가 고민이라면, 카펫없는 집은 '어떻게 하면 좀 덜 추울까'가 큰 고민이다. 심지어 이제는 스스로 집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생긴 '유일무이한 세입자'가 아닌가.


독일에 온 후 처음으로 책임이 생긴 집은 '기숙사'였다. 대략 5평이 조금 넘는 공간에 방 한칸과 화장실 부엌이 딸려있었다. 조그마한 공간인데도 어찌나 춥던지 빵빵하게 하이쭝을 틀다가 그만 '나흐짤룽'이라고 불리는 연말정산시스템에 돈을 와르륵 낸 적이 있었다. 매달 얼마간의 가스비와 전기세를 내고, 일괄적으로 연말에 정산하여 매달 낸 돈이 사용료보다 적으면 돈을 돌려주고, 사용료가 많으면 더 가져간다. 달마다 사용한 내역을 꼼꼼하게 체크할줄도 몰랐으니 돈을 더 내라는 고지서가 얼마나 청천벅력같았는지. 그 뒤로는 코가 꽁꽁 얼어붙는것 같아도 그저그렇게 뜨뜨미지근하게 살았다. 사실 기숙사에 머물 무럽에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함참 더 길었으니 그럭저럭 이겨낼 수 있었다. 잠이라도 따뜻하게 자고 싶어서 전기 장판을 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전기세마저 나흐짤룽을 내야 할 까봐 뜨큰한 물을 품은 물주머니를 품고 자는 것으로 겨울을 보냈다.


근데 아닌게 아니라 꽤나 좋은게, 전기나 가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불을 뜨끈하게 데워주고 찜질이 하고 싶은 날에는 몸 위에 올려놓으면 적당히 따끈따끈한게 몸은 노곤하게 해준다. 식어버리며 다시 물을 채워야 한다는 점과 혹시나 물이 샐까봐 약간 걱정스럽다는 점이 단점이기는 하지만.


이후 이사간 집은 여러명이 함께, 심지어 집주인도 함께사는 셰어하우스였다. 그러다 보니 집 관리는 일체 집 주인의 몫이 되고 (좋은 분이셨다.) 난방비나 전기세는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라기보다는 통지받는 것이었다. 물론 약간의 마찰이 있기는 했지만, 좋은게 좋은거라 생각하며 넘어가는 부분이었다.


이제는 방 두칸, 부엌하나, 복도, 화장실 까지 있는 집을 혼자 관리한다. 집 안에는 개인 보일러도 달려있다. 이 얼마나 장족의 발전인지. 5평짜리 기숙사에서 보눙이 되었다. 그렇다. 내야 할 돈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지 뭐.


작년 겨울 숱하게 내리는 비를 헤치며 이 집을 구하기 위해서 몇번이고 도시를 건너 왔었다. 이미 입주했을 때가 12월 이었고, 어영부영 넘긴 겨울을 제외하면 이번이 하이쭝이 켜지는 첫 순간부터 함께한 겨울인것이다.

근데 10월이 되어 불이 들어온 하이쭝이 어째 상태가 이상했다. 화르륵 화르륵 하며 스스로를 불태우는 소리는 요란한데 집이 요만큼도 따뜻해지지 않았다. 하하 빈수레가 요란하구나, 하며 홀로 보일러는 놀리는 것도 잠시 저 불태우는 소리가 내 돈을 태우는 소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니 근데, 거참 요상타 싶어 이리저리 찾아보니 하이쭝이 데워지면서 생기는 공기를 빼줘야 따듯한물이 잘 회전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아하!' 하고 시도한 여러번의 시도가 속절없이 실패로 돌아갔다. 분명히 쉽다고 각기 다른 장비를 손에 쥔 독일사람들이 유트부에서 그렇게나 종알댔는데 이쪽은 영 소득이 없었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보일러 안쪽이 애매하게 더럽다는 것과 각 방과 화장실에 달려있는 하이쭝이 관리가 안 된 것 처럼 보인다는 점. 그리고 하이쭝 공기 빼는 일로 사람을 부를 수는 없다는 것. 문제가 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테크니커부터 덜컥 부르면 해주는 일 없이 출장비만 왕창 내야 한다는 것.


여차저차 친구의 도움을 받아 육각렌치등등 무시무시한 장비들을 동원해 결연한 마음으로 다시 도전했다.  깡깡 - 소리가 요란하게 하이쭝을 두드리고 돌리고서야 공기가 쇼옥-하고 빠지는 소리가 났다. 다행이도 집 안에 있는 세개의 하이쭝 중 두개는 멀쩡했는데 여간해서 따듯해지지 않던 제일 큰 하이쭘이 말썽이었다. 이리저리 돌려봐도 공기도, 물도 뭐 하나 뱉어내는 것이 없었다. 텅 비어버린듯 고요하고 차가운 하이쭝.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 들며,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일러를 꼼꼼히 들여다봐도 영 알수 없는 상태라 그냥 사진을 찍어 부동산에 이메일로 알렸다.

'문제가 있는것 같아요-'


답은 매우 빠르게 돌아왔다.

'하이쭝 점검 하셨나요? 매년해야 하는 것을 안 한 것 같네요- 당장! 가능한한 빨리! 그것을 점검하세요! 이쪽으로 연락하세요' 한 회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답장이었다.


'그' 독일인 들이 '빨리!' 라는 단어를 쓴 것을 몇번이나 보았던가. 심지어 나름 공적인 사이에서.

하하. 망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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