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대문 Apr 22. 2024

지속가능한 진심

독일의 벽을 똑똑 노크하는 방법

저는 요즘 꽤나 많이 웃고 다녔습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도 빙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슈퍼마켓에서 만난 직원들에게 미소를 띄우고 인사를 합니다. 처음으로 더 이상 이동하지 않고 정착하는 직장이 생겼다는 안도감 때문일지, 출근하는 매일매일이 즐겁기까지 합니다. 직장인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는 사직서가 품어져 있다던데, 저는 아직 병아리 직장인이라 사직서를 품을 새도 없었나 봅니다.


찬 바람 속 슬쩍 봄 기운이 서리자 출근길에 흐드러게 피어나는 목련의 꽃봉오리를 바라보여 다녔습니다. 둥글게 피어오르는 꽃봉오리가 어느새 만개한 목련이 되어 생생한 봄의 향기를 가져와 주는 것이 시작이었구요. 뒤이어 벛꽃이 피었다가 화려하게 낙화하는 것을 보면서 혼자 조용히 시를 읊기도 했습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분분한 낙화.

...

(낙화 / 이형기)


그 아름다운 낙화 뒤로 짙은 향기를 뿜어내는 라일락까지. 길지 않은 출근길이 다양한 향기와 풍경으로 시시각각 마음을 채워주었습니다. 가끔 ‘ 아 이 풍경을 글로 그려낸 시를 내가 좀 더 많이 알았더라면, 내 영혼에 속삭일 밀어들이 더 많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했을 정도였어요. 이런 행복감을 가지고 건물에 들어서면 만나는 이에게 'Moin(모인! -좋은아침)' 이라는 인사를 건네지 않고서는 못 견뎠습니다.


그렇게 몇주나 지났을까, 사람들이 나와 인사하기 전 씨익 웃는 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주 환영받는 기분이다'라는 출근의 소희를 전하는 저에게 친구가 말했습니다.


"네 마음은 알겠는데, 그거 이상으로 너무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살다살다 노력을 그만하라는 엉뚱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고, 애쓰고, 최선을 다하는 말은 익숙한데, '노력을 하지말라니.'


심지어 아직 열정도 넘치고, 힘도 넘치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그 조언에 얼마간 맥이 탁 풀렸습니다. 저는 아직 시험기간-(최대 1년의 프로베자이트)이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나의 진심어린 열정을 보여주고 그들이 나를 '함께 일하기 너무 좋은 동료', 아니 그 이상으로 여겨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거든요.


"사람은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네 동료들도 너의 열정이 익숙해지는 순간이 분명 올 거야. 친절한 사람이 한번 불친절한 것 보다 차라리 열번 불친절한 사람의 단 한번의 친절이 더 큰 임팩트가 있기도 한 법이니까. 시간은 많아. 모든 걸 한번에 다 보여주려고 하지마. 때로는 천천히 보여주는게 좋기도 하다고 생각해."


일에 대한 열정을 차지하고서 동료들을 대할 때의 나의 태도가, 지금은 너무 하이퍼 상태인 것 같으니 약간 침착함을 유지하는게 어떻겠냐는 조언도 덧붙여서요.


그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번 씩 웃고 말았습니다. 진심은 시들지 않는 법이거든요. 약간의 선만 지킨다면 말이죠.


저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친구 라고 부르는 범주도 아주 좁습니다. 그럼 다들 '아하! 좁고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죠?' 라고 대꾸할 땐데, 저의 깊은 관계는 때로는 무심하고 때로는 좀 차갑습니다.


기대하지 않을 만큼 사랑하고 기대 받지 않을 만큼만 손을 잡습니다.


내 호의가, 우정이, 친절이 어떤 종류로든 상대의 댓가를 바라는 지점에 들어서기 전 노력하기를 멈춘다는 뜻 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선은 점점 더 뚜렷해졌습니다. 내가 이 관계를 위해 '애썻다'는 감상이 들어가면 댓가를 바라게 되고 그것이 말로 꺼내놓기에 좀 애매한 지점이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필히 '섭섭함'이라는 감정이 생겨나기 때문이죠.


저는 사람에게 이런 '섭섭함'을 느끼는 것이 참으로 무용하다고 생각되더라구요. 내 노력에 대한 댓가를 가늠하는 기준이라는 것은 그날의 온도, 습도, 기분 뭐 이런거에 따라 달라질텐데, 그것이 나와 관계를 맺은 이들에게 짐으로 작용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나 또한 그런 짐지우는 관계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홀로 떠나온 이방 땅에서 나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지키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감정적으로 튼튼해야 육체도 덩달아 튼튼하여 지고 목표지점을 향해 열심히 달릴 힘이 생길테니까요.


하지만 이 방법은 얼마간의 고립을 가져다 줍니다. 감정을 소비하지 않는 관계는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니까요. 서로서로 민폐끼치고 그렇게 살을 맡대어야 피어나는 사람 냄새 나는 '정'이 있는 법인데 그것을 모두 배제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인간은 모두 스스로의 외로움을 지고 가는, 홀로 사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저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청소년들의 선생님이 되야 하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교회학교에서 독일 2세들, 혹은 이민 1세대가 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었어요. 거절할 새도 없이 어영부영 떠맡게 된 자리였습니다. 뭐 대단하게 할일도 사실 없었어요. 애들은 저보다 독일어를 잘하고, 영어를 잘하고 심지어 한국어도 잘하고, 학교 생활도 아주 적응을 잘하는 멋진 아이들이었거든요. 다만 걱정은 나의 눈먼 말이 혹시나 '상처줄까봐' 그리고 나 또한 귀담아 들을 필요 없는 이야기에 '상처받을까봐'였습니다.  사실 저는 좀 무심하고 무뚝뚝해서 예민하기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에는 그리 친절한 선생님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도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곰곰히 고민하다가 그냥 '진심'으로 대해보기로 했습니다.  좀 투박하고 실수하더라도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보려고 했습니다. 직접 만나기 전 출석부를 찾아 이름을 하나하나 외웠습니다. 그리고 만나서는 생일을 물어봤고 형제 자매를 물어봤고 꿈을 물어봤어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 기록했습니다. 무슨 시험문제 외우듯 달달 외웠어요. 그리고는 일주일의 일정을 물어봤어요. 그리고 중요한 시험이 있다는 날에는 아침에 메세지를 날려줬어요. 생일엔 잊지않고 축하를 해줬습니다. 한동안 구글 캘린더가 내 일정이 아닌 일면식도 없었던 청소년들의 일정으로 빼곡히 들어찼습니다.


사실, 그네들의 중간고사보다는 당장 내 일이 훨씬 더 중요도가 높은 일이었습니다. 혹시나 좀 망했다고 해도 애들이야 시험 한번 삐긋한것이었지만 저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돈줄이 끊기는 성인이잖아요. 프리랜서 였으니 오죽했겠어요.


근데 그래도 노력이라는 걸 하니까, 그 나이때 온 우주인줄 알고 사는 그 학교의 세계에 대해서 저에게 미주알 고주알 털어놓는 마음이 이뻐 보이더라구요. 애인이 있네 없네 하는 이야기도, 내일 모레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소개해야 해서 김밥을 가져갈거라는 이야기도. 졸업 후에는 '아 그 학창시절'이야기로 퉁쳐질 찰나의 현재가 그렇게나 빛나보일 수 없었습니다. 처음엔 애쓰는 노력 뿐이었는데, 나중에는 정말 진심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댓가를 바라지 않는 진심이요. 그렇게 제 마음의 선이 한뼘 더 커졌습니다.


그랬더니 애들도 고작 일주일에 한번, 한시간도 채 보지 않는 저를 진심으로 대하더라구요. 선생님이라고 해봤자 가끔 독일어도 절고, 영어도 절고, 그러는 사람인데도. 자기들 끼리 말 할 때는 필터도 없이 속사포로 외국어를 쓰다가도 제 앞에 와서는 꼬박꼬박 발음도 잘 안되는 한국어를 총 동원해서 이야기 하는, 그런  진심을 보여줬습니다. 청소년들 답게 제가 직장때문에 이사가야 한다는 말에는 가지 말라며 눈물 흩뿌리며 통곡도 좀 해주고요. 어릴 때 교생선생님들 떠난다고 하면 울며불며 배웅하던, 저와는 달리 감수성 풍부하던 동창들이 어렴풋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냥 바람결에 스쳐지나 갈 수도 있었던  인연이 이렇게 한 때의 진심을 주고받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지속가능한 것은 진심뿐이라는 깨달음도 있었구요.


동료들을 만났을 때도 그래서 똑같이 했어요. 물론 더는 선생님이 아니니 세세한 것들까지는 궁금해 하지도,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냥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특징과 함께 기록했어요. 까먹으면 홈페이지에서 이름을 찾아서 또 외웠어요. '좋은아침이야 00야' 라는 나의 한마디 인사가 이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기대도 않고 이름을 불린 사람이 놀란 토끼눈을 뜨기도 했고, 재빨리 악수를 건네며 내 이름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다음날 다시 다가와서 '좋은 아침이야 00야' 하면서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어요. 분명히 제가 한 것 처럼 회사 홈페이지에서 제 이름을 찾았을 것이 뻔해요. 그리고 그렇게 저와 성공적으로 인사를 나누고 난 뒤 다른 동료들이 소리를 죽여 '쟤 이름이 뭐랬지?' 하고 묻고는 저에게 다와서 자신만만하게 또 인사를 건네기도 했어요.


그렇게 이름을 부르는 인사는 금세 진심이 되어 같은 부서에 있는 이들의 이름을 다 외웠어요. 그리고는 경비 업무를 하는 이들의 이름도 하나 하나 묻기 시작했습니다. 교대로 일하는 분들이라 이름을 물어야 하는 분이 아직 네 사람 더 남았지만요.


그리고 가끔 마음이 더 허락하는 날이면 기분좋은 칭찬도 한두마디 더 곁들어 보았어요. 오늘 입고 온 옷이 참 잘 어울린다던지, 너와 이야기 하면 마음이 너무 편안해, 라던지 그런 스쳐지나가는 이야기요. 스몰톡 이라는 그 이야기에도 조금씩 진심이 실려서 생각지도 않게 작은 초콜렛을 선물받는 날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조언도 받아들여 너무 많은 열정을 한번에 쏟아놓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처럼 건네는 미소가 진심이려면 뭐든지 지치지 않을 만큼의 선이 필요하다는 것도 너무 알고 있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기대하지 않고도 흘려보낼 마음이 절대적으로 더 커져야 한다는 사실도요. 이렇게 조금 더 사랑이 많은 어른이 되어 지속가능한 저의 진심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사직서를 품에 품는 그런 날이 와도, 진심어린 아침인사만큼은 지속 가능하길 바라면서요.


출근길의 라일락. 요즘 향기가 아주 짙어요.
이전 01화 안온한 삶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