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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독일에서] 줄을 설 수 없는 대중교통

순서가 없어요. 앞서거니 뒤서거니

by 노란대문

한국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 중 몇 개를 꼽는다면 지하철 역 안까지 길게 이어진 고속버스 줄이었다. 그리고 스크린 도어 앞으로 줄줄이 서 있는 공공시민의식. 내리고 타시라-라는 지점에서 약간 삐그덕 거리는 순간이 있지만. 한국 정말 줄 서기의 민족. 멋진 나라다. 그러나 독일은 어떨까. 스크린도어도 없고 발 빠진 쥐도 없다. 종종 "뷔어비텐엔슐디공"-늦어서 미안합니다-라는 말과 세기의 종말처럼 우르르르 우르르르 기차를 따라 달리는 사람들만 있다.




스크린 도어의 전과 후의 모든 시간을 다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 도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안다. 그리고 씽씽 달리는 지하철과 나 사이에 생긴 안전막 덕분에 안심할 수 있었던 것도 큰 감사였다. 그런데 이 나라에 와 보니 스크린 도어는커녕, 문 열리는 곳이 어디인지 표시해 놓은 지점도 없다. 줄 서는 사람도 없고 다들 안전선이라고 그려져 있는 노란 선 밖에 이리저리 늘어져 있다.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들 마냥 아무렇게나 서 있는 것이다. 내가 먼저 오고 쟤가 늦게 오는 것이 다 의미가 없다. 일찍 와도 나중 되고 나중에 와도 먼저 올라타기 가능한 곳. 이 복불복의 나라.


유럽을 하나로, 우리는 하나의 경제공동체! 를 내세운 슬로건 아래 유럽은 육로로 쭉쭉 이어졌다. 우리나라에는 달리고 싶은 철마가 있는데 여긴 달리다 못해 지쳐 떨어진 철마가 한가득이다. 철도는 낡아가는데 이동량은 늘어가고, 기차는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달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쪼금 고쳐놓고 다시 운행, 조금 고쳐놓고 또다시 운행. 그렇게 맨날 공사하고 맨날 고장 나고 맨날 늦어지는 도이치반이 완성되는 것이다. 각설하고, 모양과 크기, 속도와 방향이 제각각인 기차들이 들고 나다 보니 정해진 공간에 정확하게 문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스크린도어도 없고 줄 서는 공간도 없다. 기차가 오는 것을 보면 마음속으로 제발 내 앞에, 내 근처에 기차의 출입구가 있기를 기도하면서 속도가 늦춰지는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혹은 빠른 판단하게 문이 있을 것만 같은 방향으로 이동을 하던지.


나에게는 10분의 7 확률로 문이 내 근처에서 열리는 능력을 받았다. 마치 어딜 가도 주차공간 하나쯤은 발견하는 행복을 누리는 사람과 같달까. 어떻게 얻게 되는 능력이냐고 묻는다면 그날의 바람, 온도, 느낌, 그리고 햇빛.. 등등 아무런 상관관계없이 찍어 맞추는 것이라 팁이랄 게 없다. 그러나 기차의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거나 느리거나 해서 문이 나를 스쳐 지나가면 흑흑 울면서 종말을 맞이하는 이들처럼 인파에 휩쓸려 문을 바라보는 아포칼립스의 현장에 있게 된다. 요즘은 독일도 '내리고 타기'가 꽤나 삐끗거리는 모양새지만 내리는 문을 막아서고 올라타려 들면 오래오래 유병장수할 것 같은 욕설을 얻어먹을 수 있다.


스크린도어는 존재하지 않는 곳


그런가 하면 버스는 어떨까. 버스는 정류장도 있고, 표지판도 있고. 한국처럼 줄을 서겠지 싶겠지만 이것도 예상을 빗나갔다. 참 규격에 갇힌 것만 같은 나라인데 무질서가 질서인 순간이 왕왕 있다. 버스도 마찬가지로 문을 따라 우르르르, 이쪽으로 저쪽으로 우르르르. 아 다만, 소도시와 대도시의 버스 타기 문화는 좀 다르다. 운전사의 귀찮음과 열정에 따른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면 베를린은 속도가 생명, 뒷문이나 앞문이나 열리는 문 어디든지 올라타도 상관없다. 다만 유모차 혹은 휠체어가 있을 때는 뒷문은 그들을 위해 열리고 그들이 제일 우선해서 올라타야 하기 때문에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인구밀도가 보다 떨어지는 소도시로 온다면 상황이 다르다. 무조건 앞문으로 올라타야 하고 타기 전 운전사에게 보여줄 정기권, 혹은 일회성 표를 보여줘야 한다. 정해진 규칙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동안 베를린 생활에 인이 박혔던 나는 소도시에서 뒷문으로 쏠랑 올라탔다가 그렇게 혼난 적이 없었다.


버스 문 열렸네 타야징, 하면서 뒷문으로 쏠랑 올라타자마자 무시무시하게 앞문으로 오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기사에게 다가갔다

"앞으로 와! 왜 나한테 표를 안 보여주는 거야?"

"미안, 베를린에서는 이렇게 표를 보자는 사람이 없어서 몰랐어."

"어휴"


맞아, 나도 언젠가 들었었다. 원래 기사에게 표를 표여주면서 타는 게 원칙이라고. 근데 됐으니까 빨리 타기나 하라는 기사들과 약간 다른 방식으로 표를 검사하는 베를린의 일상이 또 새로운 습관을 주고야 말았던 것이다. (오늘은 만났다, 독일의 암행어사)


그러나 소도시도 출퇴근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앞문이고 뒷문이고 그저 열리는 문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가는 것 을 봐서는 그날이 유난한 날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평소에는 기사를 보며 표를 보여주고 타는 습관이 다시 생겼다. 사실 처음에 독일에 왔을 때는 그렇게 FM으로 살았었단 말이지.


여하튼 지하철이고 기차고 버스고 트람이고 모든 교통편에는 줄이 없다. 가끔 시외로 빠지는 버스 같은 경우 에는 정말 가뭄에 통 나듯이 줄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새치기도 있고 줄이라고 말하면 비웃는 사람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심지어 셀프계산대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에는 그것도 난리였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한 줄 서기 하면서 기다리다가 계산대가 비워지는 순서로 하나하나 채워지는 것이 상식이었다면 독일은 각기의 계산대 앞에 이렇게 저렇게 줄이 생기는 경우도 허다했다. 지금은 약간 한 줄 서기의 움직임이 보이곤 있지만 그런 질서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수두룩 하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람을 무시하고 가는 경우에는 그저 가볍게 '내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게 줄이에요.' 하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예전에는 황당해하기 바빴다면 이제는 그냥 말을 하고 보자는 생각이 더 생겼달까.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의 마음이다. 배운 사람 같은 경우에는 '몰랐어요 미안해요.' 하고 뒤로 가지만 '뭐가 줄이라는 거야?' 하면서 콧방귀를 훙훙 뀌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그의 공공예절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끼리 눈을 마주치며 설레설레 고개 내젓기- 가 펼쳐진다.


이렇게 명확하게 줄이 있는 화장실, 계산대 등등을 제외하고 운송수단에 올라탈 때, 항상 마음속으로 화살기도가 솟아나간다. 멀지 않은 곳에 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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