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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독일에서] 팁이 뭐길래

네? 돈을 더 내라구요?

by 노란대문

월급 빼고 모든 게 오르는 것 같은 그런 나날들. 그 사이에서 마음먹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순간이 있다. 대충 이 정도 나오겠거니- 하고 예상하고 간 마음 뒤로 눈망울 반짝반짝 빛내는 종업원을 본다. 아.. 어 반올림해서 계산할게요. 떨떠름한 반응. 아 그럼 좀 더 줄게요. 그제서야 만족한 듯 큰 소리로 당케! 를 외치며 '좋은 하루, 마저 보내시라!'는 인사도 해준다. 미소가 한가득. 나는 울상이 한가득. 독일에서 팁 꼭 줘야 할까?




정말 적응이 안 되는 문화중에 하나이다. 팁을 왜 줘야 할까. 특히 큰 힘에는 큰 책임이라는 말이 있듯이 큰 금액을 쓰면 오히려 팁의 범위는 더 커진다. 총금액의 10퍼센트 정도는 줘야 한다는 의견이 대개이며 때에 따라서는 23.5유로가 나오면- 24유로 정도 주는 반올림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거 의무는 아니지 않나?


유학생이던 시절 이 팁이 무서워서 외식을 자제했을 정도로 메뉴판 금액 외의 돈을 더 내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었다. 게다가 독일의 서비스가 뭐. 한국에서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사랑고백을 시도때도 없이 받던 입장에서는 성에 안 차는 서비스질이다. 무척 친절한 것도 아니요, 행동이 재빠른 것도 아니면서 세상 무뚝뚝한 얼굴로 팁을 기대하는 그대들.


그래서 자린고비일 적에는 나도 돈이 없는데 사회적으로 약속된 서비스 비용을 외면하기도 해 보고 세상 찔금 10센트 정도로 스스로와 합의본 적도 많았다. 그때 가던 레스토랑은 저렴하고 양 많은 것으로 승부 보던 곳이었으니 종업원들도 딱히 팁을 기대하는 서비스를 보여주지도 않았고.


그러나 독일에서 살아가는 날들이 길어지고 나보다 독일생활을 오래 한 사람, 혹은 독일인과 식사를 할 때면 꽤나 두둑이(내 입장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정도를) 팁을 붙여서 주는 것을 보며 나도 돈 버는 사회인이 되면 저렇게 해야겠다는 의식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팁을 줄 것처럼 여유롭게 종업원을 대하고 충분히 애쓴 것 같으면 기분 좋게 팁을 주는 편이다. 한 1.5에서 많게는 3유로 정도 더 붙여서 주는데 짠돌이 아시아인의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세상 함박웃음을 지으며 배웅해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 레스토랑이 한국이랑 좀 다른 점이 있기는 하다. 식당에서 나를 담당하는 서버가 꼭 따로 있다는 것이다. 입장하는 순간부터 서버의 안내를 받아서 자리로 안내되니 '내 식탁의 담당자'라는 확고한 위치가 생긴다. - 종종 독일에 첫 방문한 뒤에 레스토랑에 들어서서 아무 자리로 호다닥 가는 경우가 있는데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입구에서 서버를 기다린 뒤 내 예약 여부를 확인하고 자리로 안내해 주면 이동해야 한다. 종종 사람이 하나도 없거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는 '아무 데나 앉으세요'라고 안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우선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은 기다려야 한다. 이걸 어기고 시작하면 서버와 손님의 관계가 처음부터 삐그덕 삐그덕 거린다.


이것을 잘 지켜서 시작하면 서버는 때마다 와서 나의 식탁을 확인하고 빈 접시를 치워주고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며 나름대로 세심하게 챙겨준다. 가끔 추천 음식을 권하기도 하고 뭔가 불편해 보이면 재빨리 다가와서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도 보여준다. 그에 상응하는 팁을 기대하는 서비스 정신이라. 뭐랄까 꽤나 노골적이면서도 그런 모습에서 지불할만한 가치를 판단하는 손님의 역할에 충실하게 된달까.


하지만 자리도 내가 잡고 주문도 카운터에서 직접 하고 음료 및 빵도 내가 픽업하는 커피숍에서의 팁 요구는 꽤나 황당하다. 카드로 계산하면 당당하게 팁을 요구하는 화면이 뿅 하고 올라오는데 그럴 때마다 '어휴'하는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제일 쪼그맣게 쓰여 있는 'kein Trinkgeld(팁 없이)'를 굳이 찾아서 꼭 눌러준다. 이건 좀 너무하잖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여하튼 '독일의 팁' 문화는 식사를 하는 곳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경우에도 팁까지 예상하여 지불할 생각을 하고 식당에 들어서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다른 유럽을 가면 서버들이 당황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나중에 풀겠지만 런던에 잠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큰 기대 없이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파스타를 먹게 된 것 아닌가. 게다가 서버는 대학생 같았는데 얼마나 열심히 우리 식탁을 살펴주는지 정말 감동이었다. 어쩌면 서비스의 기준치가 독일이어서 런던의 모든 순간들을 과한 친절로 받아들인 것 같기도 하다.


고마운 마음에 팁을 좀 붙여서 계산을 했더니 서버는 크게 당황해했다.

"왜? 왜 돈을 더 줘?"

"오, 이건 팁이야. 네가 너무 친절해서"

"오!"


그녀는 약간 고민을 하더니 활짝 웃으면서 다시 이야기했다.


"돈을 더 내지마, 마음만으로 충분해.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 나라 사람인지 물어봐도 돼?"

"어. 당연하지! 한국사람이야."

"우와! 그럴 것 같았어! 한국어가 들리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 나 한국 완전 좋아해. BTS도 알고 블랙 핑크도 알아! 드라마도 엄청 봤어! 지금 여행 중인 거지?"

"어 맞아, 사실 런던에 처음 와봤어!"

"오 그렇구나! 한국에서 온 거야?"

"아니 지금은 독일에 살아. 독일에서 왔어"

"너무 환영해.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라. 그리고말야, 런던은 팁이 일반적이지 않으니까 다른 데서도 안 줘도 돼.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좋은 기억만 가져가길 바랄게!"


세상에나. 이렇게 예의 바른 영어를 들어본 게 언제였을까. 이렇게 웃으며 서빙하는 종업원을 만나본 게 언제였을까. 이런 친절함을 간직하고도 팁을 거절하면서 다른 데서도 주지 말라-니. 영미권국가의 친절함은 독일어권에서 누리지 못한 그런 따스함이 있었다. 세상 불퉁하게 서빙해 놓고도 팁을 바라는 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한 다스인 독일에서 저런 태도는 얼마나 환영받을까. 깨알 팁이지만 런던은 더 얹어주는 팁 문화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니 여행객들은 돈을 아낄 수 있겠다. 아주 투명하고 좋은 제도이구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니 독일에서는 또 애써서 팁을 줘야 한다. 그래야 아시아인에게도 친절한 종업원들이 늘어날 테니까. 팁을 안 준다는 인식이 있어서 더 불친절했더라는 카더라 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이야 어딜 가도 독일어를 쓰고 독일 문화도 좀 익숙해져서 천대받거나 불친절한 대접을 받는 경우는 상대가 아주' 작정한' 경우가 아니면 잘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 되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눈을 질끈 감아야 하는 순간을 열심히도 넘어왔다.


큰돈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독일의 팁 문화. 눈 딱 감고 원래 그런 것이다 하고 넘기는 지혜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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