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사
생전 처음이었다. 하루의 반을 비행기와 공항에서 보내는 일은, 그리고 오로지 혼자서 그 시간을 걸어가는 것은. 공항에서 가족들과의 안녕, 안녕하는 인사는 아무리 긴 시간을 들여도 짧게만 느껴졌다. 시차를 줄여보겠다고 선택한 새벽비행은 면세점 구경도 시들하게 만들었다. 깜깜한 공항, 같은 비행기에 타는 승객들만 고요하게 게이트 앞에 뭉쳐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 안에 속속들이 외국인들이 섞여있었다. 너무 다른 피부색, 너무 다른 생김새. 이제부터 발 붙이고 살 나라에서는 내가 '그런 외국인'이 될 터였다.
내가 내려선 독일은 5월의 초입이었다. 따뜻한 바람 사이로 한 번씩 찬 바람이 불었다. 서울과는 달리 도심에 공원이 군데군데 있었고, 수많은 나무들은 꽃을 피웠으며, 그 생명의 꽃가루가 눈처럼 휘날렸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휘날리는 꽃가루도 생경했다. 큼직큼직한 이 나라의 사람들처럼 나무들도 굵고 키가 컸다. 가끔 내가 여기에 와 있는 게 꿈인지 현실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부유하는 마음으로 둥둥 떠 있었다. 집 밖으로 두어 걸음만 걸으면 파란 눈의 외국인과 마주쳤다. 그들의 익숙해지지 않는 생활 방식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가 여전히 나를 문 밖에 세워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걸었다.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고 바지런하게 땅을 밟았다. 두 발을 이용해서 헛차 헛차 하고 걷는 것은 어디에서나 비슷해서 그 공통점에 작은 위안을 받았다. 어서 빨리 이 나라와 인사하고 싶었다. 눈 맞춤이 시급했다. 나도 이곳에 두 발 딛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인정하고 싶었다.
하루는 해가 질 무렵 길을 걸었다.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 가며 구름을 차례차례 끌어당겼다. 고개를 들어 하늘에 시선을 두며 걸었던 게 얼마만인지. 또렷하지만 사람이 정의한 색으로는 저 하늘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의 종소리. 꽤나 잘 어울리는 화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종소리가 탱그렁 쩔그렁하고 울렸다. 그리고 마지막 종이 끝날 무렵, 해가 떠나간 자리에 가로등이 노란 불빛으로 점등되었다.
그 순간 나는 독일과 인사했다. 내가 간절히 찾던 눈 맞춤이었다.
백색 등보다 따뜻한 불빛을 사랑하는 나라, 지나가는 사람과 눈인사를 주고받는 나라, 길에 가만히 서 있으면 길을 잃은 것인지 '독일어로' 물어보는 나라, 아침이 일찍 시작되는, 점심에는 제각기 도시락을 들고 나와서 햇빛을 보며 밥을 먹는.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이 나라에 드디어 두 발을 디뎠다.
누군가는 향기로, 누군가는 시선으로 첫인사를 한다. 독일의 인사는 생각보다 따스했고 천천히 스며들었다. 지금도 여름의 초입에서 매번 같은 듯 다른 그 인사를 받는다. 모든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그 짧은 눈 맞춤으로 일상의 얼룩지는 응어리들을 내려놓는다.
나도 이 순간의 독일을 닮은 사람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