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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Jul 23. 2023

베를린, 사자가 나타났다

분위기 갑자기 사파리

집가는 길, 무료하게 창 밖을 내다보다가 무심코 뉴스를 열어봤다.

거기에는 세상,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이야기가 적혀있었는데, 무려 <베를린에 암사자 등장> 되시겠다.

이게 뭔 말같지도 않은 이야기인가, 혹이 내가 모르는 그런 독일 속담인가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뉴스를 정도하기 시작했다.


하하, 참. 진짜 사자가 나타났잖아?



내 인생, 동물원 안간지 어언 이십몇년은 거뜬할 나이. 사자는 저기 멀리 어디 사파리같은 곳을 휘저으면서 뛰어 다니겠거니 싶었다. 혹은 마음아프게 서커스단에서 눈 요깃감 역할을 하거나.

그런데 온데 간데 없이 등장한 이 암사자는, 갑자기 뿅 등장했다. 베를린 시는 깜짝 놀라서 주변에 온갖 동물원과 서커스단에 연락들 돌려 '잃어버린 사자가 있는지, 바른대로 대답해라'고 물었도 동물원도 서커스단도 '우리는 잃어버린 사자가 없습니다'하고 대답했단다. 자, 이렇게 잃은 적 없이 나타난 사자는 숲을 헤치고 다니는 중이었다.


금세 잡히겠거니, 싶었는데 이게 왠일인가. 몇시간이 지나도록 잡았다는 소식은 없고 헬리콥터가 등장을 하겠다느니, 드론이 등장을 한다느니, 사람을 200명을 풀었다 하는 소식만 전해져왔다.

암사자 하나 잡겠다고 이게 왠 난리인가 했더니, 심지어는 외출을 자제하란다. 나는 사자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던, 그리고 마지막으로 흔적이 있었다던 바로 그 남쪽 어딘가에 살고 있었고, 우리 집 근처에는 또 달리기 하기 좋은 공원이 여러개나 있는게 아닌가. 공원에 눈 부릅뜨고 숨어있을수도 있다나 뭐라나. 이게 말이 돼?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게 사람 마음인지, 집에 결단코 작정하고 들여놓지 않는 과자랑 아이스크림이 그렇게도 먹고싶었다. 호다닥 달려나가면 5분이면 도착하는 마트를 눈 앞에 두고서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사자 떄문에 나의 작은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니.


다시 한번 업데이트 되는 뉴스가 없는지 찾아보자 이번에는 <사자를 만났을 때 행동요령> 이라는게 올라왔다. 그러니까 팔을 높게 들어 내가 몸집이 커 보이게 한 뒤, 갑작스레 움직이지 말고, 큰 목소리를 내되 조용히 자리를 뜨라고.

정리해 보자면 허우적 거리면서 차분하게, 큰 소리로 경찰을 부르면서, 조용히 자리를 뜨란다. 이게 왠 시끄럽게 조용히 하라는 말인가..


와작와작 감자칩 하나 먹으면서 초코 아이스크림을 입안에 딱 넣으면 완전 극락일텐데. 내가 사자한마리 때문에 그걸 못하네. 잠시 좌절해있다가 운동화를 단단히 챙겨 신고 호딱 발걸음을 놀렸다.  

이 해질녁 즈음이면 사실 퇴근하는 사람들이 까맣게 몰려들어 마트가 난리가 나야 하는데 한산하다. 다들 정말 사자가 나타난도 해서 재빠르게 집에 간건가? 하며 과자랑 아이스크림을 집어 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집에 세제도 다 떨어진거 같았는데-'

하며 세제칸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계산대쪽에 갑자기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급하게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연락하는 모습도 보이고.

뭐야뭐야 하면서 덩달아 계산대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러니까 사자가 보이면 몸집을 크게 보이게-'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저 대문은 전자적으로 닫을 수 있나? 마트 안에 숨을데가 있나?' 하는 곳 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도달한 계산대 앞,

그 뒤로 펼쳐진 통장!

그리고 거기에는!


말도없이 쏟아지는 소나기가 있었다. 빗줄기가 꽤나 굵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그렇지 원래 갑자기 비오면 나도모르게 웅성거려지기 마련이긴 하다.


성공적으로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냥해서 집에 오니, 사자가 멧돼지를 쫒아가는 듯한 모습이 다시 제보 되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야생사자에 멧돼지라. 사실 야생 여우랑 토끼는 종종 보인다. 그래서 그려러니 하면서 지나다니는데 사자랑 멧돼지는 쫌. 나랑 공생 할 수 있을까? 몸집을 크게 보이기 위해서 맨날 벌서는 것 처럼 손 들고 살아야할텐데.


밤새 잡히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재빠르게 움직이는 대기업들의 소식이 제일 먼저 보인다.


<주위!> 사자 찾음!

이라는 이름으로 재빠르게 홍보하는 홍보팀.

이케아 그리고 베를린 최대규모의 서점인 듀스만. 둘 다 사자 관련 인형과 책을 파는 마케팅에 진심이다. 대단한 사람들.

이야 이래서 사람들이 대기업, 대기업 하나보다. 이렇게 때를 놓치지 않아야, 성공하는 모양이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것이 아니고, 물을 끌어와서 노를 젓네.


사자는 어떻게 되었냐고?

발견되었다. 사자가 아닌 멧대지의 형상으로.

전문가들이 그건 멧돼지라고 결론내렸고, 제일 처음 그 영상을 제보한 한 소년(19세)은 '믿을 수가 없군요! 그건 사자였어요!'하고 주장한다는 이야기로 뉴스는 끝이 났다.


이 소식을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하며

"아니 멧돼지를 사자로 착각했대, 너무 웃기지"

"아니, 멧돼지는 안전하니?"

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게.. 맷돼지는 괜찮은건가..? :)


여기는 베를린. 가끔 야생동물이 뛰어다니는, 그런 사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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