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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Oct 04. 2023

향기 없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문 밖을 나설때 약간 숙연해지는 마음

독일에 살게 된 후, 얼마 뒤부터 '이것'에 완전히 매료 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대학교에 가면 교수님들 부터 시작해서 학생들까지 '이것'을 사용하는 않는 사람은 손에 꼽는 것 같았다. '이것'은 한여름에는 한줄기 오아시스, 혹은 암살..을 위한 가장 좋은 도구이자, 겨울에는 잔상을 계속해서 남기는. 그런 것이었다.

없는 살림에도 이 악물고 돈을 모아 장만하고 했던, 바로 '이것'. 내몸에 비싼 물, 바로 향수 되시겠다.


한국에서는 그저 약간 '멋 부리는' 용도 정도로 사용했다면, 사회 생활을 처음 경험하고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독일에서는 중요한 자리일 수록 향수로 샤워를 한 것 같은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가 있다. 물론 내가 경험한 사회는 나만의 작은 사회이겠지만, 여하튼. 중요한 미팅이거나, 종요한 자리거나, 심지어 연주회를 보러 가거나 할 때 어김없이 좋은 옷과 좋은 신발, 그리고 코를 은은하게 자극하는 향기. 특히나 학교에서 만난 노 교수님은 항상 아침에 수업 강의를 위해서 7시부터 학교에 오면서 머리도 어찌나 멋지게 만지고, 향수도 챡챡 뿌리고 오시는지. 그분의 수업을 들은 뒤로 어떤 '에디튜트'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 외국인은 특유의 '땀냄새'에 대해 예민 한듯, 예민하지 않은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데오드란트를 항시 구비하고 다니는 것은 일상이고, 그 위에 향수를 온통 뒤덮곤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 순간이 넘어서면 땀냄새와 향수가 섞어 아주 오묘한 인간 화학물질 그 어딘가가 되고 말기도 하지만.


향수는 분명한 사치품이지만, 그만큼 나를 잘 가꾸는 방법 중의 하나로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옷을 입어도 '흙냄새' 같은 인간 본연의 향이 나는 것보다 왠지 '비싼 화학 물' 향기를 내뿜는게 좀 더 좋아보인달까.

그런고로 백화점에서 통크게 세일할 때 얼른 가서 20-30유로 선에서 떨이로 팔아 해치우는, 그럼에도 제법 알법 한 이름들을 달고 있는 비싼 물을 사곤 했다.


혹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면 어김없이 면세점에 가서 세일 상품으로 직진해서 향수부터 부리나케 찾아보고 시향을 해보고 구매하는 것이다. 그렇게 손에 넣은 향수는 집 밖을 나서는 나의 등을 떠밀어주는 작은 조력자 같은 것이었다. 나는 잘 준비 되었다는, 향기까지도 준비된 사람이라는 , 나만 아는 자신감의 원천이랄까.


그런데 웬걸, 잘 쓰고 있던 향수 (면세점에서 15유로에 구매해서 쓰던) 가 그만 똑 떨어져 버렸다. 그 사이 비행기를 탈 일도 없어서 면세점에 가지도 못했고, 백화점도 향수 세일은 고작 10퍼센트만 하고 있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만 하루도 안되거 휘발되는 향기나는 물에 30유로 이상을 투자하는 것은 지금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사치였다.


그래서, 마지막 한방울의 스프레이까지 쥐어짜서 쓰고 난 뒤에는 작은 자신감의 원천을 잃어버렸다. 왠지 나가기 전에 코에 옷을 가져다대어 킁킁, 얼굴을 잔뜩 옹송그려 살에 대고 킁킁, 이리킁킁, 저리킁킁거리며 나도 모르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닌지 어러번 생각하곤 했다.


남이 만들어 내어 파는, 짧게는 몇시간도 함께하지 않는 그 향수가 뭐라고. 

괜히 남들과 이야기 할 때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얼른 두어걸음 물러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참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나 라는 사람을 이루는 수 많은 조각들 가운데 이게 뭐라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내가 얻는 효과가 대단했구나 싶기도 했다. 괜히 향수 한번 촥촤촤촥 뿔렸다고 허리도 더 곧게 세우고 목도 더 빳빳하게 세우고, 더 자신있는 미소를 짓곤 했다. 나는 이렇게나를 포장하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향기로 나를 보여주는 사람이었구나.


나이가 들면서 감춰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피부 노화가 그렇고, 체력이 그렇고, 듬성듬성 자라나는 흰머리가 그렇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세일 코너에서 집어오는 향수는, 외국인의 사회에서 영원한 비주류 인종으로서 스스로를 피워내는 또 다른 수단이었던 모양이었다. 그 향수의 값어치와는 관계없이, 내가 향기까지도 준비할 수 잇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나보다.


얼마 전 '엘리멘탈'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민세대의 한국인 감독의 작품으로 유명세를 타던데, 주변에서 다들 꼭 보라고 성화였다. 그리고 첫 장면 부터 작은 영화적 장치에서 보여지는 '비주류 인종의 삶'이 다가왔다. 지구 어딘가에서 '우리'라는 공동체가 아닌 '나'라는 개인으로 살아보았기에 알 수 있는 마음들과, 나 또한 내 나라에서는 '주류'인종이라서 이해되는 양면성. 귀여운 원소들이 이리뛰고 저리뛰면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내 모습을 참 많이도 발견했다.


그리고 나를 이루는 수 많은 조각 중에 하나인 '인위적 향기'를 잃어버린 나도 스스로를 비주류인간으로 치부할 필요도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러고서는 괜히 어깨를 당당히 펴고 다녔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향기조차 준비된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비행기를 탈 일이 있었다. 면세점에 들어서 신나게 달려간 향수 세일 코너에서 그동안 고민만 하면서 한번도 사용해보지 않던 브랜드를 꽤나 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커다란 크기에 단돈 15유로! 약 이만원의 돈으로 나를 이루는 작은 조각을 또 채워넣었다.


누군가에겐 사치고, 누구가에겐 필수고. 수 많은기준들 사이에서 나를 이루는 조각을 찾아나가고, 그로 인해 집 문 밖을 나설 땐 준비된 인간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참 감사하다. 

나를 복돋아주는 향기는 15유로로도 충분하다는 안정감또안! 이만한 가성비 자존감이 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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