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시에 찾아오는 밤
마피아 말고 산타랑 루돌프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달다구리들과 반짝이들의 향연이 돌아왔습니다!
번쩍번쩍 눈 돌아가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올해는 열렸다. 작년에는 코로나의 여파가 너무 세게 닥쳐와서 그런지 마켓도, 불꽃놀이도 없는 한 해의 마무리를 보냈다.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새해맞이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되지만, 깜깜한 밤을 비추는 마켓이 없는 12월은 정말로 생경한 것이었다.
오다가다 먹을 수 있는 장작구이 소시지가 없던, 갓 구워낸 밤이 없고, 받아서 돌아서는 순간 찬바람에 굳어버리는 크레페가 없던 겨울이라니.
12월이 다가올수록 괜히 몸이 들썩들썩 거리는 신남은 독일에 온 후에 생긴 일이었다. 한국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여느 날 중의 특별한 하루일 뿐, 혹은 선물을 주거받기 위해 챙기는 그런 날이었다면 독일의 크리스마스는 1년을 꼭꼭 잠재워온 무언가를 터뜨리는 그런 날들이다.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난방도 아끼며 온갖 겨울 옷을 껴입는 '그 독일인'들이 번쩍거리는 장식으로 집안을 가득 메운다. 게다가 해가 지는 순간부터 반짝거리는 전구들은 발코니를 밝힌다. 가로등도 띄엄띄엄 있어서 주택가로 들어서는 순간 마주 걸어오는 사람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도 몰랐던 밤이 가고, 밤이 깜깜할 새가 없이 크리스마스가 몰려오는 것이다.
게다가 12월의 1일부터 24일까지 매일매일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다. 일명 크리스마스 달력 - Adventskalender(아드벤트칼렌더)라고 하는데, 기업들은 이런 시기를 놓치지 않고 '여기 우리들의 선물이 있답니다!'하고 상품을 만들어 냈다.
이렇듯 크리스마스의 진심인 나라에서 살다 보니 하늘을 떠다니는 산타도 보고, 그가 타는 루돌프들도 심심치 않게 거리에 보인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만 같은 기분이라 온 나라가 들떠있는 이 기분이 참 좋다.
각설하고 마켓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항상 저기서 떡볶이와 순대, 튀김과 어묵을 팔면 대박이겠다는 생각은 매년 지치지도 않고 한다. 하지만 전통 음식들과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이뤄지는 행사기 때문에 보통 그 안에 서는 마켓들은 종류도, 위치도 거의 변함이 없다. 매년 같은 마켓이 서는데도 두근두근 한 것은 그저 크리스마스 특수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1년을 건너뛰고서 만난 같은 모습의 마켓은 참으로 반가운 오랜 친구가 변함없는 얼굴로 나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느리게 변하는 나라의 최대 장점이지 않을까.
대 코로나 시대의 마켓 운영은 들어가는 입구와 나가는 출구를 온통 막아놓고 백신 패스 검사 후에 들어갈 수 있다. 사실상 백신을 안 맞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은 마트와 병원 정도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차례로 줄 서 동안 백신 패스와 나를 증명할 신분증을 꺼내서 손에 꼭 쥐고 있으면, 코가 빨개진 무료한 직원들에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입장하는 크리스마스의 세계.
캐럴이 가득한 그 세계에서 사람들은 다들 깔깔 웃고 있었다. 눈까지 내리는 환상적인 날.
그리고 마켓의 음식들은 환상적으로 비싸다. 들뜬 마음은 지갑을 가볍게 만든다.
왜 자꾸 외식값이 슬금슬금 오르는가. 손으로 직접 만들어 구워주는 빵가게의 빵도 기억보다 1유로나 비싸졌고 신나게 사먹던 소세지도 아주 만만치 않다. 예전이면 같은 가격으로 직화구이 목살을 사 먹을 수 있었는데.
그래도 지갑은 가뿐하게 열리고 그나마 조금 저렴한 소세지를 집어 들었다. 여기저기서 쉽게 보이는 소세지이지만 이런 장작 직화구이는 12월, 혹은 부활절 축제 같은 마켓에서만 만날 수 있다.
타닥거리는 장작 타는 냄새를 배경 삼아 다시 한번 이 환상 같은 크리스마스 마켓을 휘 둘러보았다. 한 손에 무겁게 들려있는 글뤼바인을 한 모금 마시며 ‘아이고 맛없다, 이렇게 맛이 없냐’는 감탄사를 내뱉는 것도 잊지 않고.
24일이면 언제 반짝였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질 작은 오두막들. 그리고 내년이면 언제나 그러하듯 다시 나타날 풍경들.
이 속에 내가 내년에도 있을 수 있을까. 몹시 아련해진 기분만 남아 소세지를 냠냠 해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