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대문 Dec 10. 2021

15. 동료의 확진과 밀접접촉자

이제 거기에 3차 부스터 샷을 추가한..

오늘은 함박눈이 내렸다. 어찌나 펄펄 쏟아지는지 세상을 뒹구르며 돌아다니면 쉽사리 눈사람이 될 듯하다. 이번에 새로 출범한 독일 총리의 이름이 올라프인데, 정말 이름값 한다. 벌써 몇 번째 눈인지. 드디어 겨울왕국이 되는 것일까!


하릴없이 성실하게 내리는 눈발이 쌓이듯  마음에는 근심이 소복이 쌓였는데, 이는 바로 며칠  프로젝트를 함께 마무리  동료의 확진 소식이었다.

직업 특성상 함께 일할 때는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데 우스갯소리로 목숨 내놓고 일한다는 말을 서로 주고받았다. 별의별 예방접종은  맞았지만 (폐렴 예방접종도 맞았다 심지어) 그래도 세계적 유행을 선도하는 코로나는 아주 독한 놈이라 걱정이 되었다.

모두가 2 접종까지 완료한 Vollständig(완전한) 백신 접종자들만 모여서, 심지어 당일에 자가진단 키트까지 동원했지만 후에 밝혀진  코로나 확진까지는 어쩌질 못했다.


우리가 프로젝트 말미에 “예아-“하면서 찍은 사진과 함께 걱정 가득한 이메일이 도착했다. 사진에는  씨뻘건 원 안에 들어간 ‘ 동료’가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파랗게 원을 그려 ' 원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PCR 검사를 받기를 권고합니다.'라는 글이 써 있었다. 오마이, 뜻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찬찬히 사진을 살펴보다가 눈앞이 아득해졌다.


  어깨는  파란 선에 걸쳐 있는가. 나는 윷놀이 판에 반만 뒤집어진 패였다. 이제 어디로 튀게  것인가. 양성인가 음성인가.  사이 어딘가.
 가뜩이나 여러 명과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는데 ( 케찹이 사라집니다 마요네즈도요) 벌써  프로젝트가 끝난  어언 며칠이던가.




우리의 프로젝트는 4일 토요일이었고, 연락은 8일 수요일에 도달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독일의 코로나가 심상치 않게 번져가는 것을 보다가 백신을 한 번 더 용감하게 맞기로 결정한 것은 훨씬 전이었고, 나는 6일에 3차 부스터 샷을 맞은 뒤였다.


그래서 도대체 뭐가 다행이었냐 묻는다면, 끙끙 앓을 것을 대비해서 열심히 음식도 쟁여 놓았고, 주사를 맞은 뒤엔 '공식적 휴일이다!'라고 외치며 그전에 빌려놓은 책을 쌓아놓고 침대에서 귤이나 까먹는 바람에 아무도 마주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야무지게 챙겨온 대출 최대 권수

그래도 오다가다 부엌에서 잠시라도 마주쳤던 친구가 하나, 어쩔 수 없이 공간을 공유하는 친구가 하나, 등등이기 때문에 이 불행한 소식을 전하긴 해야 했다. 나의 신분이 '밀접접촉자'가 되었다는 것을. 전화를 받는 모두가 탄식했고, 되려 '놀랬겠다, 네가 아니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해줬다.


그 소망의 뒷면에는 '네가 걸리면 나는..?'이라는 걱정이 숨어있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어쨌든 가장 먼저 건너온 위로는 달가웠다. 이러지 말걸, 저러지 말걸 이라는 걱정이 찰나에 스쳐 지나갔고, 내가 만약 확진자라면 의도치 않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병을 옮길 수도 있다는 걱정은 참 참담한 것이었다.


그래서 되려 홀로 살고 있는 외국생활이 참 기꺼웠다. 가족이라도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고통이었을지. 가장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사랑하는 이에게 내가 죽음을 선물하는 꼴이 될 것이 아닌가. 이 끔찍함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되다니.


그동안은 사람들을 넓게 두루두루 사귀지 못하는 성격이 인생 살기에 걸림돌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성격도 참 기꺼웠다. 혼자 있는 시간에 귤이나 까먹으며 책을 읽을 생각을 하다니, 자체 격리를 하다니. 그것도 만 2일을. 의도치 않은 뿌듯함도 살금 몰려왔다.



하지만 이 뿌듯함의 가장 큰 원인은 내가 <음성> 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안심에서 우러난 것이 맞다. 나는 확진자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고 필요하지 않은 시간엔 꼭꼭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어떠한 증상도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 소식을 전하는 그 동료는, 또 프로젝트 리더는 얼마나 참담했을까.

코로나의 가장 최악인 부분은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이것을 옮긴다는 것. 이 글을 읽을 때만 해도 이렇게 깊이 공감하게 될지는 몰랐는데. 모두의 건강을 이렇게나 간절히 바란 적이 있던가. 한국에 가서 가족을 품에 안을 수 있는 날이 언제가 될까. 혹은 그 가족이 독일에 와서 나를 품에 안을 날은. 아무런 걱정 없이.

백신의 불평등이 낳은 수많은 변종은 언제 잠식될 것인가. 과연 이것이 백신의 불평등이 만들어낸 문제는 맞을까. 이 답 없는 고민을 계속하며 PCR테스트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 종인 소복소복 쌓이는 눈이 녹을 때쯤엔 모두가 평안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12. 꺼내 주세요!! 기차 안에 사람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