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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Oct 11. 2023

색색으로 물든 도시 호프 (Hof - Saale) #1

독일 바이에른의 작은 시골동네에서 만난 가을

‚아이구 엉덩이야’ 를 외칠 무렵 조그마한 도시기차(arg)가 뽈뽈뽈 나타났다.

콩만한 시골도시에 일하러 가는 길이다.  무자비하게 눌려 납작햐진 엉덩이를 툭툭 쳐서 쿠션감을 되살리며 다른 기차로 환승하러 걸음을 옮겼다.




대도시에서 조금 작은 도시로, 거기서 더 작은 소도시로 가는 동안 갈아타는 기차는 점점 작아지더니 겨우 한칸자리 기차가 되었다. 기차 안에 올라 탄 사람들도 몸집만한 큰 가방은 든 사람은 없다시피 하고 작은 책가방들만 덜렁 매고 있고.


아시안이 이 기차에 올라타는 일이 거의 없는지 작은 기차에 몸을 쏙 들여놓자 사람들의 눈썹이 들썩들썩한다. 색다른 외모를 보고 놀라기는 했는데 티는 안 내려는 나름들의 신사적인 노력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만석인지라 조용히 책을 읽는 대학생 옆으로 가서 ‘옆자리 비었니?’하고 물어보자 ‘어 응응!’하면서 부산스럽게 가방을 치워준다. 동양인이 독일어까지 하니 또 흘끔흘끔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사람이 한가득이다. 이럴 때는 그 얼굴들 사이 어딘가를 보면서 씨익- 웃어주면 된다. 그럼 금세 흥미를 잃고 나를 시선에서 자유롭게 해준다.


그렇게 각자의 시선을 담은 기차가 귀엽게 ‘뿌뿌’ 소리를 내더니 출발했다. Hof로 가는 동안 사람이 듬성듬성 빠지고 기차 안에는 겨우 세 사람이 남았다. 검표원이 돌아다니며 표 검사를 하다가 ‘어디까지 가니?‘하고 물어봤다. ’나는 hof로 가‘하고 대답하자 또 눈썹이 들썩 한다. 그러더니 금세 정신을 잡고 ’그럼 이 기차와 끝까지 가면 돼! 좋은 여행되길‘하고 인사해준다. 고맙다고 웃으며 표 검사까지 마치자 곧 도착이라는 안내문구가 뜬다.


꽤나 귀엽던 한칸 짜리 지역기차


내릴 준비를 하며 웃샤웃샤 짐을 챙겼다. 저번처럼 기차에 갇혀서 꺼내달라고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사절이기 때문에. (꺼내주세요, 기차 안에 사람있어요)

그 일 이후로는 내리는 역이 되면 짐과 정신줄을 꼳 붇든다. 이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그러는 걸까.


하루를 머물고 갈 도시. 지도상으로 봤을 때도 꽤나 콩만하길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한가득일거라 기대했다. 그리고 내려서 마주한 중앙역은.. 음. 좀 못생겼다.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지만, 첫인상이 영. 소도시의 경쟁력은 귀엽고 예쁜 것인데 말이다.


경쟁력이 없어보이는 중앙역.


하지만 도착한 시간이 이미 해가 질 무렵이었으니 내일 아침 해가 반짝거리면 또 다른 매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침 햇빛아래에서 만날 다른 날을 기약하며 우선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근데 이게 왠일인가. 도시 곳곳에 있는 귀여운 옛날식 건물들이 색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가을바람을 맞으며 노랗게 물들어가는 무성한 나무들과 그 사이사이 보이는 알록달록한 건물들. 빙글빙글 돌아가는 일상의 쳇바퀴에 머물며 미처 인사하지 못했던 가을이 여기에 담뿍 내려앉아있었다.


드디어 만난 초가을의 정취. 색색으로 물든 건물과 기가막히게 잘 어울린다

오늘 하루를 머물 호텔을 찾아가는 길, 가을 바람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발길을 옮기다보니 아래로 쭉 뻑은 길이 나타났다. 건물들이 귀엽게 어깨동무 하고 있는 듯, 차례로 키가 작아지는 광경을 보니 사랑스럽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 게다가 알록달록 저마다의 옷을 빼입으니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봤던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떠오르기까지.


나란히 나란히. 건물들이 발돋움 하게 만든 지지대가 무척 귀엽다

그리고 북부 독일에서는 잘 볼 수 없믄 야트마한 둔덕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도시 전경이 아래로 쫙 펼쳐지거나 길을 따라서 위쪽으로 쭉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다. 고지대에서 도시 전경을 내려다 본게 얼마만인지 눈이 다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작은 언덕들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도시가 한 눈에 들어왔다 사라졌다 한다.


오늘 머물 숙소는 이름부터가 아주 예술적이다. 무려 ’스트라우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나라답게 거장의 이름을 따 왔다. 그의 불타는 예술성을 상징화 하고 싶었는지 호텔도 빨갛게 옷을 입혀놨다. 하지만 주변 다른 건물들도 죄다 지지 않는 듯 알록달록하니 도시 경관과 꽤나 잘 어울린다.


유난히 빨갛던 ‘호텔 스트라우스’


체크인을 하러 들어가자 프론트에 앉아 있던 이그 나를 반긴다. 머리칼 사이사이 흰 색으로 물들어가는 엄청난 미중년이다. 미소를 지르며 다가가자 급하게 침을 꿀떡 삼키더니 ‘하이-’ 하고 말을 건넨다. ‘엄, 여기. 오늘, 예약?’


아하. 더듬더듬 나오는 영어에 그의 긴장감이 절로 이해가 되었다. ‘응 나 오늘 하루 예약했어. ’ 부드럽게 독일어로 받아 넘기며 이름까지 알려주자 아주 기뻐한다. 참 솔직한 사람들. 외형이 다른 이가 ‘내 나라 말’ 한다는 것이 가지는 장점이 여기에 있다. 금세 긴장과 경계를 내려놓게 한다는 것.


묵직한 열쇠를 받아 들어간 방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꽤나 널찍하고, 욕실은 레노비에렌을 했는지 깨끗하기까지.


최대한 가볍게 짐을 챙겨왔기때문에 별로 꺼내놓을 것도 없다. 그래도 핸드폰 충전은 해야 하니 충전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아무리 뒤적여도 아침에 챙겨놓은 충전기가 없다. 보조 베터리도 없고.


현재 시간은 18시. 모든 마트가 문 닫는 시간은 20시. 허겁지겁 구글 지도를 켜보니 마트까지 거리가 25분은 걸린다. 나에게 남은건 20퍼 센트 남은 핸드폰 하나. 와우.


그런데 가방을 뒤적이다 깨달은 건데, 현금이 들어있는 지갑도 안 들고 왔다. 그러니까 지불할 수 있는 결제수단도 유일하게 핸드폰 하나. 와우.  갑자기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데 이거 기분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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