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사 생존기②)교육행정의 우선순위를 정하라!

교사에서 장학사로, 다시 현장을 향해 – 교육행정 6년의 기록과 성찰

1. 수업에서 행정으로, 교사의 마음을 품다.

교사 시절 나는 수업 개선과 장학, 교육과정 운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수업을 디자인하고, 동료 교사들과 수업을 나누며 서로 배우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보람이었다. 자연스레 교육청 수업 선도교사로 활동하게 되었고, 연구회 운영과 연수 기획 등에도 참여하면서 '현장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그런 나에게 ‘장학사’라는 직함은 교육행정의 무게를 실감하게 하는 전환점이었다. 처음 발령받은 지역교육청에서는 학교폭력 업무와 체육업무를 맡았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었다. 이후 연수원으로 옮겨 1급 정교사 자격연수, 원격연수, 유튜브 연수 등의 기획 및 운영을 맡았고, 다시 다른 교육지원청으로 옮겨 인사, 장학, 기초학력, 학교혁신 업무를 차례로 담당했다. 6년간 네 개의 기관을 거치며 아홉 가지 업무를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단 하나. 교사의 시선과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행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2. 하고 싶은 일 vs. 해야 하는 일

장학사 업무를 하면서 가장 먼저 익혀야 했던 것은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교육행정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가, 정책적 파급력이 얼마나 큰가, 당위성과 시급성은 얼마나 되는가, 학교와 교사의 부담을 줄이고 있는가, 행정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효율적인가를 복합적으로 따져야 한다.


이를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할 때 다음의 항목을 늘 점검했다.

중요도와 파급력 – 많은 학교에 영향을 주며 제도나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업인가?

현장 실효성 – 학교의 실제 업무 부담을 줄이고, 교사의 수업과 학생의 배움에 직결되는가?

행정의 지속 가능성 – 담당자가 바뀌어도 유지될 수 있고,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가?

정책 당위성과 시급성 – 지금 이 시점에 반드시 필요한 정책인가? 나중으로 미뤄도 되는가?

이러한 기준으로 정리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먼저 보인다. 교육청의 모든 업무가 학교에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학교에서 피하고 싶어도 꼭 필요한 일도 있다. 장학사의 역할은 그 균형점을 찾아 ‘필요한 사업’을 설득력 있게 설계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장학사 업무를 하다 보면 본능적으로 손이 가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나뉜다. 나 역시 수업, 장학, 교육과정 등 내가 교사 시절 경험했던 분야의 사업에는 더 애정을 가지고 기획하고 추진했다.

하지만 교육행정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필요해서’ 하는 일이라는 현실도 직시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지만 중요도나 시급성이 낮은 일은 잠시 미뤄야 했고, 반대로 다소 부담스럽고 학교의 반응이 조심스러운 점검성 사업도 필요하다면 추진해야 했다.


특히 학교 대상 점검이나 실태 조사, 담당자도 꺼려하는 현장 컨설팅 업무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청이 해야 하는 역할은 ‘학교가 피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학교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 했다.


3. 교육행정의 다양한 업무 팀, 그리고 협업의 기술

장학사 업무는 개별 업무도 있지만 대부분은 팀 단위로 움직인다.

교육과정팀, 초등인사팀, 학교혁신팀, 유아교육팀, 특수교육팀 등 다양한 실무팀이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수시로 회의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협업한다. 때로는 타부서와의 협의가 길어지고, 정책 우선순위가 변경되며, 일정이 갑작스레 조정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지켜온 원칙은 세 가지였다.

첫째, 예산과 기획의 타당성: 사업의 필요성과 예산의 규모, 파급효과를 늘 함께 고민했다.

둘째, 학교와의 유대감: 단순히 공문으로 지시하지 않고, 직접 전화를 하고 만나며 학교와의 신뢰를 쌓았다.

셋째, 현장 환류 시스템: 사전 연수 – 컨설팅 – 현장 의견 수렴 – 피드백 반영이라는 순환 구조를 갖춘 사업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절감했다.


4.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들

수많은 사업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보결전담순회강사제도’와 ‘지역교권보호위원회 신설’이었다. 전자는 학교의 실질적인 보결 수업 공백을 해소하고, 후자는 교사들의 심리적 지지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보결전담강사제도는 당장 수업이 공백이 생긴 학교에게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였다. 교감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그 한 명의 강사가 있어야 하루가 돌아간다”고 말했다. 교육청에서 인력풀을 확보하고 수요조사를 통해 배치하고, 배치 이후에도 정기적인 만족도 조사와 학교 피드백을 받는 구조로 안정화를 꾀했다. 이 과정에서 행정의 흐름과 학교 요구가 조화롭게 만나는 지점을 고민했던 시간이 오래도록 남는다.


지역교권보호위원회 신설 업무는 한편으로 정서적 울림이 컸다. 단순히 규정을 정비하고 조직을 구성하는 일이 아니라, 실제 피해 교원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구체적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심리상담, 법률 자문, 특별교육, 예방교육 등 교원이 혼자 감당하기 힘든 부분에 대한 ‘제도적 방패’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교육청의 역할이 가장 뚜렷하게 느껴졌던 순간이기도 하다.


5. 현장과 연결되는 교육행정의 플랫폼

정책이 일방적으로 전달되지 않기 위해 나는 다양한 연결 도구를 사용했다.

구글 공유문서를 통해 의견을 실시간으로 수렴하고,

자료실을 따로 구축하여 관련 자료를 상시 제공하며,

학교 일정이나 민감한 자료는 공동 관리 문서로 실시간 소통했다.

특히 코로나 시기, 학교 학사일정이 매일 변경되는 혼란 속에서도 교무부장님들과 실시간 플랫폼을 통해 학사일정을 공유한 경험은 지금도 내게 가장 보람 있는 기억 중 하나다.


6. 아쉬움과 반성, 그리고 제언

모든 사업이 의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업은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어떤 사업은 타 부서와 협의가 부족하여 실제 집행이 어려웠다. 심지어 어떤 사업은 추진 과정에서 오히려 학교의 혼란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것은 사업을 설명할 시간이 부족했던 경우였다. 어떤 경우엔 단순히 안내 공문 하나로 모든 것을 이해시키려 했고, 학교에서 묻는 질문에 “공문 보시면 나와 있습니다”라는 말로 넘어갔던 기억도 있다. 그것이 학교가 느끼는 교육청의 거리감이었다.


장학사는 정책 결정자가 아니다. 하지만 실무자라 해도, 현장을 대변하고 설계할 수 있는 ‘기획자’의 역할은 있다. 내가 만약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현장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것이다. 설문조사, 간담회, 사전 설명회, 시범 운영 등을 통해 정책이 학교에 무리 없이 스며들도록 기획하는 것, 그것이 진짜 장학의 출발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7. 장학사의 정체성은 결국 ‘교육자’다.

장학사라는 직함은 ‘행정공무원’의 호칭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은 ‘교육자’다. 우리는 학교를 감독하는 존재가 아니라, 학교를 지원하는 존재다. 선생님들을 위한 토대를 만들고, 학생들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며,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이해를 돕는 사람이 바로 장학사다.


나도 처음에는 공문과 일정 관리, 회의와 보고서에 파묻혀 ‘내가 왜 이 일을 하나’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현장 방문과 학교 협의 속에서, 나는 ‘현장을 이해하는 행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장학사는 교육행정가가 아니다. 교육행정을 수행하는 교육자다. 이 말은 내가 내 자리에서 무엇을 기준 삼고 움직여야 하는지 끝없이 되묻게 한다.


8. 소명과 사명으로 채우는 하루

장학사 생활 6년을 정리하며, 나는 매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 있었음을 느낀다. 학교 관리자와 교사, 학부모와 학생, 교육청과 외부 기관 사이에서 연결자, 중재자, 실무자로 살아왔다. 그 사이에서 실수도 있었고 시행착오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


정책도, 예산도, 시스템도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때로는 행정의 효율보다 공감이 앞서야 하고, 수치의 결과보다 현장의 온도가 중요할 때가 있다. 나는 그 온도를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늘도 전국의 교육청에서 현장을 묵묵히 지원하고 있는 장학사님들께 이 글을 바친다. 우리는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이 멀고 때로 고단하더라도, 우리의 정체성이 ‘교육자’임을 잊지 않고, 학교를 위한 행정을 실천하며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2025. 7. 9.(화)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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