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우리의 기준’으로 작품을 말하다.
노벨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한국에 노벨상 수상자가 적다는 현실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노벨상의 권위를 지나치게 신성시하며,
"한국인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집단적 강박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된다는 데 있다.
매년 반복되는 기사들.
“노벨상 수상을 위한 연구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한국 문학도 세계에서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다.”
심지어 교육계 강연에서도
“학생을 잘 가르쳐 노벨상을 받게 하자”는 사명감 어린 말이
권유되곤 한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왜 우리는 외국의 상에 그토록 연연해야 하는가?
노벨상이 정말 절대적인 기준인가?
그 상이 없으면 우리 문화, 우리 작품, 우리 지식은
존재의 의미를 잃는가?
나는 이 글을 통해,
노벨상이라는 ‘권위’에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걸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 때라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대한민국은 들썩인다.
수상 여부는 단순한 뉴스거리를 넘어,
국가의 위상, 학계의 성과, 교육의 방향성까지 연결된다.
그런데 잠깐.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외국의 상’에 반응하는가?
그 상이 북유럽의 한 국가에서 만든 제도라는 사실은 잊고 있는 것 아닐까?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만 내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인지적 열등감의 반영은 아닐까?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는 단 두 명뿐이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원인을 분석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거다.
“노벨상을 못 받았다는 것이 정말 실패인가?”
빌 게이츠는 말했다.
“진정한 성공은 타인의 평가가 아닌, 내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제 그 말을 마음 깊이 되새겨야 한다.
노벨상이 전 세계의 상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서구 중심의 시선과 정치적 맥락이 섞인 결과물이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을 기억하는가?
당시 세계 언론조차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아직 아무런 실질적 업적을 쌓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는 이유로 상을 받았다.
과연 그것이 평화의 본질일까?
문학상도 마찬가지다.
프란츠 카프카, 레프 톨스토이, 제임스 조이스, 보르헤스…
이들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세계 문학사의 정점에 있는 인물들이다.
노벨상은 훌륭한 작품을 알아보는 기준 중 하나일 뿐,
절대적인 기준은 결코 아니다.
나는 과거 '올해의 과학교사상'을 받은 적이 있다.
명예로운 일이었지만, 이어진 강연에서 들은 말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우리 아이들이 노벨상 받을 수 있게 가르쳐주세요.”
축하의 말이었지만, 그 안엔 타인의 시선을 향한 강박이 숨어 있었다.
우리 교육의 목적이 ‘외국의 상’을 받게 하는 일이어야 할까?
K-팝이 빌보드 1위를 하고,
한국 영화가 칸 영화제를 휩쓸며
‘세계가 인정했다’는 말이 울려 퍼진다.
그 자체는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인간은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내면의 시선보다 외부의 인정에 더 취약하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맨부커상 수상 이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작품은 수상 전에도 이미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 걸작이었다.
수상 이후 갑자기 “역사적 작품”으로 불리는 현상은
작품 그 자체보다 ‘상이 부여한 권위’를 중시하는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녀의 글이 빛나는 이유는
노벨상도, 맨부커상도 아닌
그 글이 던지는 메시지와 울림 때문이다.
작품의 가치는 상이 아니라 읽는 이의 마음과 삶 속에서 완성된다.
그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은 이제 콘텐츠 강국이다.
K-팝, 영화, 웹툰, 문학, 과학, 교육…
이제 우리는 남의 기준이 아닌 우리만의 평가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국내 작가와 예술가들이
“해외에서 상을 받아야 진짜”라는 식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내 문학상, 과학상, 예술상이
진정한 권위와 정당한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사회적 기준을 재구성해야 한다.
윤동주는 어떤 상도 받지 못했지만,
그의 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문학이다.
그보다 더한 상이 있을까?
진짜 선진국은 상 수상 수로 결정되지 않는다.
다양한 목소리와 시선이 공존하고,
권위 없이도 자유롭게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는 사회,
그게 진정한 문화강국이다.
작품은 누군가의 삶을 흔들 수 있을 때,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들 때,
비로소 살아 숨쉰다.
그런 작품들은 상을 받지 않아도 의미 있고,
누군가에겐 평생을 함께하는 삶의 책이 된다.
획일적 기준과 단일 권위는 자유를 질식시킨다.
우리는 지금 ‘다양성의 르네상스’를 살아야 한다.
다시, 자유롭게. 인간답게. 기준 없이.
노벨상이라는 상이 있다는 사실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자존감이나 자부심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작품과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외부에서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경험 속에서 발견되고 축적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외국의 인정”을 성공의 잣대로 삼아왔다.
그 습관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만든 작품, 우리가 세운 기준,
우리가 읽고 감동받은 글에 대해
우리가 먼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노벨상은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다.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없다고 해서
우리의 지식과 문화, 교육과 문학이
작아지는 건 아니다.
진짜 권위는 타인의 시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시선과 사회의 자립적인 평가 구조에서 온다.
2025. 7. 18. (금)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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