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훈은 같은 또래가 사칙연산을 배울 때 부업을 하는 어머니를 함께 도왔으며, 가정형편 때문에 당시 유행하던 폴더폰도 가질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공사판에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오기 일쑤였으며, 가족끼리 단란하게 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불우한 가정형편 때문에 예체능 정부 보조금이라도 타자는 아버지의 생각으로 다니기 시작한 아동 씨름선수촌은 햇수로 4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어엿한 선수촌 내 고참이 되었지만, 몸집을 키우기 위한 식비를 충당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지훈의 몸은 날이 갈수록 왜소해졌고, 그 결과 씨름선수촌을 6개월 다닌 초등학생 저학년과 경기를 해도 상대방의 리드에 쫓기다가 결국 안다리에 걸려 뭉개졌다. 초반은 씨름이 매력적인 스포츠라 생각하고 꾸준히 다녔지만, 경력에 비해 암울한 결과를 돌아볼 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휘몰았다.
사실 지훈이 씨름단에 입성한 이유를 코치와 감독은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씨름판에 몸담았던 그들은 지훈의 씨름 스킬이나 외적인 면을 봤을 때 인재로 성장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을 초반부터 파악했다. 씨름에 재능을 보이는 인재들을 향한 그들의 편애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으며, 반대로 연이은 부진한 결과던 지훈은 무리의 소속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담배에 손을 댄 것은 그때부터였다. 어릴 적 어머니가 담배를 입에 가져다 대는 것을 계기로 담배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으며, 동네 형들이 ‘나도 이제 어른이다’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본인들보다 나이가 어린 꼬마들에게 기침까지 해가며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게 된 계기로 담배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게 되었다. 당시 유행하던 체인이 걸린 바지와, 항상 껌을 씹어가며 길바닥에 침을 뱉는 그들의 행위는 이성적인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던 어린 지훈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담배를 피우면 나도 저 형들처럼 멋있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지훈의 머릿속에서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평소 술을 즐겨하던 그의 어머니는 술에 취해 완성된 부업 제품을 보내야 하는 기간을 점차 어기게 되었으며, 결국 다니던 부업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하고 집에서 술만 마시는 신세로 전략해 버렸다. 술에 잔뜩 취한 그의 어머니의 담배 한 개비를 몰래 가져다가 피우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자랑스럽게 담배 피우는 법을 시연하고 알려줬던 그 형들의 가르침을 본받아,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처음 깊게 숨을 들이셨을 때, 항상 간접적으로 맡아오던 연기를 직접 마시니 자동으로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멘솔 성분의 담배라 그런지 목 넘김이 거칠게 느껴졌으며, 사람들이 이거를 왜 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대감이 다 사라진 채 형들이 알려준 캡슐을 앞니로 깨고,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서 지훈은 담배의 맛에 충격을 받게 되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민트 향과 그 내음이 시원하게 목구멍을 타고 부드럽게 내려가는 것을 느꼈을 때, 그 시간 동안 지훈은 씨름단에 대한 원망과 스트레스는 완벽하게 잊고, 오랜만에 가족과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오히려 처음에 기대를 하지 않고 마신 거친 그 맛이 본인이 다니는 씨름단에서의 입지라 생각되어 캡슐을 깨고 흘러나오는 통쾌한 민트를 느낄 때의 변화는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다. 담배의 존재가 현실을 직시하고 각성하는 각성제가 아닌,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처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