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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20

by 김묵돌

성인이 되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취업이나 결혼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해갈 때 아직도 동네를 지키는 파수꾼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잭과 콩나무처럼 너무 까마득해 차마 위로 고개를 들 수도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철이 없어서일까, 생각이 없는 걸까. 나는 며칠간 고민에 신중을 가해 시간을 투자하여 온라인 쇼핑샵에서 구매한 상의와 하의를 입고 오늘도 술을 마시러 집을 나선다. 무슨 말도 필요 없다. 항상 변함없는 사람 4명과 변함없는 시간에 우리는 만난다. 다만 나는 다른 날과 다르게 새 옷을 장만한 것을 애들 앞에서 처음으로 게시하여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오늘의 대표메뉴는 곱창이었다. 다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시중에 시드는 많았기 때문에 곱창뿐만 아니라 막창과 닭발도 함께 시켰다. 사실 닭발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요즘 Y가 닭발에 꽂혀서 어쩔 수 없이 취기가 많이 돌 때쯤 추가로 시켰다. 오래된 가게치고 음식의 맛이나 청결은 새로 신설된 가게에 뒤처지지 않아 개인적으로 애정이 많은 가게다.

곱창집에 들어간 지 3시간이 지나 사장님께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맛에 대한 신뢰를 대변하는 언질을 준 후 우리는 비틀거리며 밖을 나올 참이었다. 처음에는 술에 취해서 헛것을 보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귓가에서 사정없이 내리찍는 파열음이 들릴 때 비로소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아마 25년에서 가장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들 우산은 갖고 집에서 나왔지만, 갑자기 H가 돌발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 취해서 그러는데 비 맞으면서 집 갈래”

H의 행동이 멋있다고 느껴서일까. Y도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그들의 행동에 대해 말리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새 옷을 입고 온 것에 대한 후회감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그렇다고 옷을 다 벗고 비를 맞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들은 우산 없이 밖을 나가자마자 5초가 채 되지 않아 전신이 다 젖었다. 나와 D는 그들의 행위예술을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며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찍은 영상을 보던 나는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새 옷이 아닌 막 사용해도 되는 옷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도 H와 Y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새 옷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세탁하면 다시 원상태가 되는데, 변명을 한건 아니었을까? 그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뜻깊은 추억을 만들지 못해 아쉬워하는 건 아닐까?

후회와 이를 무마하기 위한 변명을 한다고 하는 것은 시간낭비라 생각한다. 우리 뇌는 당황하기 시작하면 그것에 대한 그럴싸한 변명을 만드는데 특화되어 있다. 인생을 살더라도 지나간 일에 대해서 후회를 하는 행동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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