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며 철민은 중얼거렸다. 벌써 목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주름처럼 철민의 나이테도 주름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었다. 취업난 시대에 변변한 직장을 찾지 못한 철민은 자신의 기준 이하의 회사들은 싹 다 무시한 채 카페에서 구인구직글을 찾고 있는 것을 그의 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업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허구한 날 인터넷 취업 사이트만 뒤지는 자신의 꼴을 회피하기 위함이리라. 그는 매일 정해진 자리에 앉아 사람 구경도 하고, 정수리 위에 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감상하며 멍을 때리는 것을 사명감처럼 여겼으며 자랑스러워했다. 5시간 동안 앉아있으면서 주문하는 것은 고작 연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전부였지만. 오후 6시 30분이 되면 카페에서 나와 기계처럼 늘 걷던 거리를 지나 집으로 들어간다. 철민의 집은 4평 남짓한 작은 원룸이었다. 부모님의 잔소리에 질려 연락을 단절한 채 작은 원룸으로 도피하다시피 들어온 것도 어연 1년 반이 넘어갔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호기심으로 시작한 스포츠토토가 겨우 그의 생명을 이어주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베팅이 항상 이길 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인이 베팅한 팀이 지는 날에는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는 했다. 하지만 그는 비상금을 털어서라도 카페에 가서 늘 앉는 자리에 앉았다.
무작정 시외버스표 한 장을 산 채 남쪽으로 내려오고, 정처 없이 걸어가다 도착한 곳이 이 재개발 지역이었다. 그때 철민이 가진 거로는 모델명을 알아보기도 힘든 낡은 백팩과 주머니에 있는 현금 2만 원이 전부였다. 철민이 살고 있는 재개발 지역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규모의 천연 생태공원이 유치된다는 소식 하나만으로도 뉴스에 나올 정도로 주목을 받았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시행사와 건설사의 잦은 마찰로 인해 생태공원은 지어지지 않았고, 당연히 마찰이 있는 줄 몰랐던 투자자들은 생태공원이 지어질 자리 주변에 수도 없이 많이 지어지는 건물들에 전재산을 투자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하고 대부분 어디론가 뿔뿔이 사라졌다. 철민이 이러한 스토리를 잘 아는 이유는 그가 카페에 있으면서 많은 정보들을 엿듣기 때문이다.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어가 무엇을 검색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옆에서 아직 완전히 해결이 되지 않은 시행사와 건설사 관계자들의 소리 높은 언쟁이 들리거나, 돈 다 잃고 원룸에 들어와 그들과 같은 처지의 투자자들끼리 말하는 하소연들을 듣고 있자면 그거보다 더 재밌는 이슈 거리는 없을 것 같은 것이 철민의 생각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사람들이 철민보다 더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본인의 신세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으리라. 결국 그들도, 철민도 전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은 동일했다.
템파베이가 미네소타를 역스윕할 것이라는 것에 베팅을 걸었던 철민은 모처럼 많은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오늘만큼은 베팅에 성공할 때마다 찾는 편의점이 아닌 1시간 30분이 떨어져 있는 치킨집에 배달을 넣어보았다. 2시간 만에 받은 치킨은 싸늘하게 식어있었지만 철민은 지금 상황이 너무 행복했다. 치킨을 다 먹고 잠에 들은 철민은 꿈을 꾸었다. 날갯짓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 새가 어미새가 있는 곳으로 날아 이동하는 꿈이었다. 거리는 좀 있었지만 새는 날기 시작했고, 결국 어미새가 있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어미새는 어린 새를 꼭 안아주었다.
아침 해가 창문 시트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때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을 끈 철민은 어젯밤에 꾸었던 꿈을 이미 잊은 뒤였다. 온통 그의 머릿속에는 역스윕으로 이겼던 그 경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뿐이었다. 철민은 오늘은 어떤 팀에 어떤 베팅을 할까 고민하며 이를 닦기 시작했다. 그 자신은 몰랐을 뿐 취업에 대한 갈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