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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연 Apr 16. 2022

어느 초짜의 업무 스타일

정독 vs 통독

얼마 전 우리 팀에는 지방 사업장에서 새로 사원 한 명이 전입했다. 그는 입사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우리에겐 중고 신입이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그가 예전 팀에서 하던 업무와 전혀 새로운 업무를 우리 팀에서 수행할 예정이었고, 사실상 나는 그의 넘치는 젊은 패기와 열정만 보고 이동을 승인한 터라, 신입 사원에 준하는 업무 OJT가 필요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일을 맡았던 전임자는 집 안에 일이 생겨 급하게 퇴사를 했기 때문에 이어지는 업무 공백과 인수인계가 매끄럽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내심 팀장으로서 때마침 사내 스카우트를 하고, 그 사원을 데려오게 되어 최악은 막았다고 내심 위안하고 있었다.       


그는 팀 내 베테랑 선배를 사수로 두고 업무 OJT를 받기 시작했고, 두 달 정도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어느 나른한 오후, 나는 커피를 마시러 라운지로 향하던 중 그가 매우 심각한 얼굴로 듀얼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걸 보았다. 그 모습이 눈에 걸려 한번 쉬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그에게 차나 한 잔 같이 하자고 불렀다. 사실 그 친구가 전입하고 나서 코로나도 심각해지고 회식도 제대로 못했는데, 중요한 보고까지 몇 번 있었어서 거의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어떻게 적응을 잘하고 있는지, 선배 사원은 잘 가르쳐주고 있는지 등 이것저것 물었다.


그는 아직 본인 의지나 팀의 기대만큼 일 인분을 못해 내고 있는 것 같아 죄송하다고 했다. 물론 그건 그의 잘못도 아니고, 내 눈에는 너무 열심히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름 스트레스를 무척 받고 있는 듯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가 어떤 것에 특히 힘들어하고 문제가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입사해서 현재 업무와 전혀 다른 비교적 편한 부서에서 일하다 보니, 사업부에서 좀 힘들게 업무를 배우고 싶어서 이동을 했던 케이스였다. 그런데 본인은 공부 머리는 나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머리는 '꽝'인 것 같다며 경력 많은 선배들과 비교하며 자격지심을 쌓고 있었다. 생소한 업무와 생전 처음 해보는 다량의 Data를 다루면서 시스템을 잘 이해해야 하는 업무인데, 모든 게 낯설고 서툴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과거의 본인 공부 방식대로 일처리를 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사수가 업무 매뉴얼과 정해진 업무량을 브리핑해 주었더니, 그걸 첫 부분부터 자세히 정독하고 숙련되기를 연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도 일처리나 공부 진도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닌 성향인 듯한데, 처음부터 진도가 쭉쭉 안 나가고, 중간에 선배는 또 다른 업무 개선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팔로우 업 하라고까지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자기는 아직 걸음마 수준인데, 막 달리라고 했다며, 거기에 멘털이 크게 흔들렸던 것 같았다.


 한편으로 나는 그의 선배가 또 그 나름의 고충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내가 따로 이야기해본 바로는 신입이 업무 따라오는 속도가 생각만큼 빨리 안 올라와 약간은 실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팀장으로서 그 간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그 친구에게 효율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방법과 태도를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가 독서를 하거나 공부, 업무를 할 때는 개인들 나름의 방법이 저마다 있기 마련이다.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이 있다. 첫째는 어떤 업무를 받았거나 문제를 제시받았을 때 처음부터 자세히 깊게 파고 들어서 찬찬히 처리해보려는 것이다. 이것의 장점은 스텝 바이 스텝으로 차근히 일을 처리해가며 꼼꼼함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면에 쉽게 지치고 자기 효능감이 크게 떨어지기 일쑤다. 그리고 생각만큼 일처리나 진도가 쭉쭉 나가지 않아 윗사람과 주변의 독촉을 받기 쉽다.


둘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단 쭈욱 한번 훑고 가보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고 치면 작가의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먼저 읽고, 목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미리 훑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먼저 그 책의 개관을 먼저 파악할 수가 있게 되고, 작가의 의도와 책을 쓴 목적,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을 대략 파악하게 된다. 때로는 이미 결론을 알고 책을 읽게 됨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첫 장부터 차례로 읽는 독서를 할 때보다 훨씬 빠르고 목적에 맞는 독서를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하나하나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는 디테일은 떨어질지 모르나, 보통의 두뇌를 지닌 대다수의 우리는 어차피 처음부터 꼼꼼히 읽고, 일 처리하려고 해도 꼭 몇 개씩은 놓치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꼭 반복 학습, 실무 연습이 필요한 것이고, 경험과 연륜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그만큼 사람은 첫 술에 배부르려 욕심내는 것이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 쉽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중고 신입사원에게 후자의 방법을 권했다. 어떤 조직이든 사람을 새로 들일 때는 즉시 전력화가 가능하여 바로 업무에서 성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모든 조직과 리더는 그리 여유롭고 만만하지 않아서 늘 시간에 쫓기기 일쑤이고, 마음이 급해진다. 원래 느긋한 성정이어도 리더가 되면 성격이 급해지기 쉽다. 그만큼 실무자의 일처리 속도가 중요하며, 정확도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러자면 조직에 한 명의 초심자가 있다고 해서 그를 마냥 기다려준다거나 배려해 줄 수만은 없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일상생활, 학업을 진행할 때에도 우선 프레임을 먼저 파악하고 나무보다는 숲을 보며, 방향성을 갖고 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학창 시절이나, 과외 등 교습을 할 때도 하나하나 구슬을 꿰가며 끝까지 더듬더듬 밟아 가는 것도 좋겠지만, 그건 몇 안 되는 능력이 출중하고 천재성이 있는 사람들이 하면 좋을 방법인 듯하다.


보통의 능력과 기억력을 가진 나와 같은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가보고, 뭐가 중요한지를 먼저 파악한 다음, 다시 돌아와서 하나하나 부연설명을 달며 파악해 나가는 방법이 시간과 노력을 세이브하며 효과적으로 학습하고 일처리 하는 방법일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상사의 다른 지시도 수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비록 그 지시가 현재의 내 진도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투덜대거나 스트레스받으며, 어쩔 줄 몰라할 필요는 전혀 없다. 어차피 머지않아 내가 수행할 업무를 미리 지시받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수업 과목으로 치면 아직 진도를 안 나갔다고 주저하고 두려워만 말고 일단 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맛을 먼저 경험하고 친숙해진 다음, 바로 그 차례가 되어 그 업무를 배우고 익힐 때는 더 잘 빨리 내 것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빗대어 말해 주었다.


그 친구는 그동안 자기가 해왔던 방법이 아니었던지, 처음에는 매우 생뚱맞다는 표정만 짓더니, 이내 알겠다고 그렇게 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 말대로 비록 몰라도 일단 해 보는 모습을 보였고, 결재도 활발하게 올렸다. 물론 그가 그때 그 일을 이해를 하고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그가 해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특정 업무에 대한 이해는 일을 계속해 나가며 반복을 통해 다져질 일이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난 후 그 친구는 얼마 전 심각하게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던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표정이 훨씬 자신감이 있었고, 몸이 안 좋아서 조퇴를 할 때였는데 노트북을 갖고 퇴근하겠다고 했다. 자기가 하던 일은 오늘 안으로 마무리 짓겠다며, 만류하는 나와 선배 사원을 뒤로하고 씩씩하게 말한다.     


“팀장님, 제 일머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더라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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