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째는 사실 말더듬이 심했다. 그것도 초성 발음이 안 터져서 본인도, 그걸 보는 가족들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른다. 유치원 다니던 6살 무렵이었던가. 그때부터 말더듬이 확 표시가 났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훨씬 이전, 그러니까 막내아들이 태어나던 그때부터 둘째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둘째가 막내를 처음 맞이하던 날. 둘째와 막내는 연년생이었다. 자기도 아직 너무 어린 아기인데, 더 아기인 막내가 갓 태어나서 집에 도착한 그날, 안방 침대 머리맡에 올라타서 물끄러미 동생을 내려다보던 둘째.. 고개를 푹 떨구고 마치 한숨을 에휴~하며 쉬는 것처럼 찍힌 사진이 있다. 그 찰나가 너무 귀여워서 남편이 순간 포착해 놓았던 사진이다.
그때는 몰랐다. 둘째가 그렇게 말 더듬으로 고생할 줄을.
유치원 6살 이후부터 발현된 초성 말더듬부터 시작하여 학교 입학 후에는 아는 내용도 말을 못 해서 수업시간에 발표를 무척 두려워하는 아이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울상이 되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울음이 터졌다며.. 그 증상이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들쑥날쑥 일 때가 많았다. 여러 청소년 심리센터와 언어장애치료센터를 방문해보았으나, 원인은 다양하고 치료법은 상황에 맞는 꾸준한 노력과 치료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답만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떤 글을 읽게 되었다.
같은 고민을 가진 어느 전문가 부모가 쓴 글이었는데, 아이가 말더듬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인지시키지 말고, 자연스럽게 대하며 끝까지 기다려 주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이 스스로가 사랑을 가득 느낄 수 있도록 다른 아이보다 더 특별한 사랑을 갈구해서 그럴 수도 있으니, 별도의 특별한 애정표현도 아끼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우리 둘째는 속사포처럼 너무 말 잘하는 언니와 태어나면서부터 유난히 집안의 귀여움을 차지했던 막내 사이에서 서러움과 외로움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나는 내가 둘째이면서도 그것을 바로 눈치채지 못했을까. 얼마나 한심했던지.
게다가 3년 전 아이가 초등 3학년이 되면서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왔다.
새로운 학교, 동네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힘든데, 코로나 상황이 겹쳐서 학교를 거의 가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는 더욱 힘들어했다. 말할 상대가 가족들 외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는데, 한 번은 간신히 친해진 한 친구가 그랬다는 것이다.
“넌 왜 자꾸 말을 더듬니? 말 좀 빨리 해줄래?"
"왜 말이 안 나와? 아유~ 답답하다.” 하며 조롱을 했다는 것이다.
아이와 동네 산책을 하며 그런 소리를 들은 나는 순간 욱 하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어린아이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랬구나? 근데 둘째야. 세상에 친구 할 아이들은 정말 많거든, 그리고 네가 모든 아이들을 좋아할 수 없듯이, 다른 모든 아이들도 전부 너를 좋아할 수는 없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 생각은 그렇게 너한테 상처 주는 말 하는 친구랑은 그냥 안 놀면 좋겠다. 그 친구 말고도 너를 귀하게 여겨주고, 네 말을 잘 들어주는 착한 아이들이 얼마든지 더 많을 거야. 그런 아이들과 친구 하자.” 그랬다.
아이는 울먹이다 정신을 차렸는지, 그 후로 2년여 시간을 거치며 그야말로 학급에서 소위 ‘인싸’가 되었다.
점점 사기가 올랐고, 4학년 때는 반에서 체육부장을 맡고 아이들을 통솔해서 K-PoP 댄스를 리드한다고도 하였다. 그러더니, 이번 여름방학 끝날 무렵 갑자기 학급 회장에 출마하겠다고 며칠간 고민해서 출마 연설문을 작성했다. 얼마나 기특하던지. 나는 출마해서 당선되면 금일봉, 안 되어도 참가상을 주기로 하며 한껏 격려하였다.
드디어 아이가 보란 듯이 의미 있는 첫 성취를 해온 날, 나는 정말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말더듬이 평생 갈까 봐 얼마나 속으로 조마조마했었고, 부모 사랑이 부족해서 아이가 저런 스트레스를 받나 싶어서 죄책감까지 들었던 것이다.
한방에 걱정이 날아간 기분이다. 아이는 요즘 말더듬이 거의 사라졌다. 덕분에 자신감도 뿜 뿜이고, 늘씬한 팔다리로 한껏 멋을 내고 학교 다니는 걸 즐긴다. 심지어 속사포 같은 언니와도 말싸움으로 맞짱까지 뜬다.
정말 고무적이다. 엄마로서 흐뭇하다. 오늘은 금일봉 약속으로 전해 준 용돈을 일부만 쓰고 남았다며,
본인 통장에 저금해 달라고 다시 돌려준다.
부모가 아이의 삶을 결코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저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옆에서 지켜봐 주고, 넘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