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가 몇 년밖에 남지 않은 노모가 있다. 그에게는 그를 극진히 모시는 두 딸이 있다. 그녀들은 이미 환갑을 훌쩍 넘겼고, 이제는 각자의 이유로 싱글이며, 정말 지극정성으로 노모를 보살피며 살고 있다. 노모는 귀만 잘 안 들릴 뿐 모든 정신이 또렷하고, 거동이 불편해서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매 끼 식사와 화장실 등을 챙겨야 하는 등 일상적인 삶이 많이 부자연스러운 상태이다.
이런 분이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매주 교회를 나가고 싶어 하신다. 자식 된 도리로 두 딸들은 번갈아 가며 매주 일요일 교회를 모시고 다닌다. 꽤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그녀들은 효도한다는 기쁜 마음으로 항상 웃으며 보살피지만 그러기에는 노모는 늘 몸이 축 늘어져 아주 무거운 상태다. 두 명의 젊은 할머니가 그 보다 훨씬 늙은 노 할머니를 모시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두 딸, 즉 두 젊은 여성 노인들에게는 은퇴 후, 그녀들만의 여생을 즐겁게 보낼 권리가 있다. 그만큼 그들은 젊은 날을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왔기에 노후에 누구 못지않은 안락함을 추구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자신들보다 연로한 노모를 돌보고, 일정 부분 스스로의 삶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식 된 도리로 당연한 일이라 하면서도 가끔씩 주변 지인들에게 하소연을 풀어놓는 그녀들은 가끔씩 억울해 보인다. 옆에서 지켜보는 지인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
사람은 죽음에 가까울수록 어쩌면 삶에 대한 집착이 마구 샘솟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황혼 즈음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기 위해 없던 종교도 갖고 싶고, 안식처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런 마음과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 노모의 입장이라면 과연 내 자식들에게 내 여생을 위해 희생 아닌 희생을 강요할 수 있을까? 결코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노령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질 시점, 자발적으로 요양원에 입소하지 않겠다고 의지를 표명하는 것에서부터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이 될 것은 분명한데도 말이다. 과연 그동안 자식들을 뼈 빠지게 키웠다고, 같이 늙어가는 자식들에게 이번에는 나한테 똑같이 하라고 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 그런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내가 그 노모라면, 또는 그 딸이라면 어떨까? 나 또한 머지않은 미래에 실제로 그 딸들 또는 노모의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조건 딸들의 입장을 옹호하기에도 노모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어려울 것만 같다.
영화 <69세>의 여주인공 효정(예수정). 엣나인필름 제공
문득 얼마 전 읽은 신문 기사가 생각난다.
일흔 살을 갓 넘긴 할머니가 본인의 지병으로 인해 혹시라도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마지막 할머니가 남긴 유서에서는 남겨진 가족들, 자녀 및 배우자, 손주들까지 한 명 한 명 챙기고 자그마한 유산까지 각각 남겨주는 엽렵함까지 잊지 않으셨다 한다. 당신께서 조금 더 멋진 모습, 온전한 모습일 때 당신 스스로 그들에게서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어느 선택이 맞다고는 못하겠다. 모두 각자의 삶에 임하는 자세와 선택일 뿐. 하지만 나는 과연 그때가 되면 어떤 삶을 선택할지, 혹은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다만 어떤 선택이 라도 그게 후회 없는 것이어야 한다.
앞으로 의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 기대 수명이 170살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얼마 전 Google 발표에 따르면 2030년이 되면 인간의 모든 질병에 대한 해법을 다 찾아낼 수 있으며, 인간의 최대 수명을 170년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인간 수명 500세까지도 가능하다고 보고 지속적인 연구 중이다.
Google에서 현재 진행 중인 소위 “인간 생명 연장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죽고 싶어도 쉽게 죽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기쁘다고 해야 할지, 서글픈 현실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사는 것이 우리에게 축복이 될지 아니면 재앙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OECD 평균 1위이고, 노인 빈곤 또한 최상위에 랭크돼 있어 불행에 가깝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생을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시대는 지났다. 스스로 어떤 끝을 보아야 할지 미리 생각해보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건강하고 팔팔하게 살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는 건 어떨까?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나의 평소 소신을 지킨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