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한 여성 후배가 있었다. 그녀는 해외 영업직에 있으면서 아이를 2명이나 낳고 출산휴가를 포함하여 6개월간의 육아 휴직을 하고 돌아왔다. 두 번이나 휴직을 했던 것이다. 요즘 사회나 회사가 많이 좋아져서 기혼 직장 여성이 출산 시 육아휴직을 포함하여 6개월 이상 쓰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대기업에서 영업직은, 그것도 해외출장이 잦은 해외영업직은 여자가 임신, 출산을 겪으면서 버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임신 기간 동안은 중요한 해외 고객 출장을 못 가기 때문이고, 사무실에서도 야근이 잦은 영업 업무를 해내기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런 그녀가 출산 후 복귀했다. 출산 전에도 일에 대한 욕심이 남달라서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하여 일 처리를 하였고, 평가나 주위 평판 또한 훌륭한 편이었다. 그러나 6개월의 공백은 그런 그녀의 자리만 빼지 않았을 뿐 빠르게 변하는 조직과 사업환경에 따라 휴직 전 자기 자리를 온전히 남겨놓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나 인재였다 하더라도, 부재중 자신을 대신하여 고생한 동료들도 있고, 그 사이 누군가가 그녀 자리를 잘 대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복귀했다고 해서 바로 그 대체자를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부서장과 타협한 그녀는 본인이 그래도 성과 낼 수 있는 유사 고객과 관련 업무를 맡았고, 일에 매진하였다. 3~4개월 동안 열심히 했지만, 크게 성과가 오르지 않았고, 후배 사원들 마저 그녀 말을 잘 듣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어려움을 그녀가 혼자 감당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녀는 그저 본인만 열심히 하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직장 여성들이 흔히 착각하는 대표적인 예가 있다.
나만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면 위에서 혹은 주변에서 나를 언젠가는 알아봐 줄 것이다. 그저 묵묵히 일만 하면 된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업무 수행 후 다행히 상사가 그 공로를 알아보고 인정과 보상을 해 주면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조직은 그렇게 순수하고 사려 깊지는 않다. 특히 간부직 여성들일수록 그런 착각을 많이 하여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신입이나 주니어 시절에는 아무래도 크게 상관이 없다. 그야말로 운 좋게 나와 잘 맞는 좋은 선배나 팀장을 만나 그들에게 인정받는다면 어느 정도 존재감을 인정받기가 수월하다.
그러나 과장급 이상 관리자 직급이 되면서부터는 ‘나’라는 상품을 조직 내에 혹은 특히 상사, 경영진에게 PR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당당히 요구도 하고, 나의 포부를 그들에게 밝힐 줄도 알아야 한다. 남성 직원들은 술이나 담배, 골프 등 각종 비공식 자리에서까지 은연중에 그런 것들을 표출하는데, 여성들은 그런 것들을 금기 시 내지는 꺼려한다.
굳이 왜 내가? 그렇게까지 내가 해야 돼? 나는 정말 잘하고 열심히 하잖아. 이렇게 생각하며 그녀들은 그렇게까지 해 가면서 자신을 알리지 않아도 실력이나 능력만 있다면 주변에서 혹은 위에서 알아봐 줄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 오히려 그렇게 PR 하는 것이 경솔하게 나대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 그야말로 대단한 착각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사실 오랫동안, 가까이는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조차 외벌이가 대부분이었다. 즉 여성은 결혼을 하면 남편 벌이에 의지하며 아이 낳고, 기르며, 가정을 평화롭고 화목하게 다스리는 게 미덕 중에 최고 덕목이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것을 여성에게 많이 강요하고 있는 듯하다. 내 어머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기에 부부 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육아를 도와줄 사람을 구하기가 여의치 않아 스스로 직업 일선에서 퇴직을 하셨었다. 물론 어머니는 그것을 지금까지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신다. 그러시면서도 딸들에게는 능력만 있다면 무조건 결혼해서도 끝까지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의 속내는 어쩌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딸들에게서 보상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고, 어떤 사회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정신이 부족하다. 그렇게 자라오지 않았고, 훈련이 안되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사실 갑자기 그런 것에 익숙해지라고 하는 게 무리일 수도 있다.
그에 비해 남자는 어릴 때부터 암묵적으로 한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기대받고 교육을 받는다. 그러니, 심지어 현재 맞벌이 부부조차도 여자는 어려움이 닥치면 남편이 벌이가 있기 때문에 쉽게 그만둘 생각을 하게 되고, 그만큼 현재 일에 절실하다거나 헌신할 마음이 적은 경우가 많다. 정말 일 잘한다는 직장 여성조차도 순수하게 실력, 능력으로 인정받고자 하며, 그것이 제일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물론 실력과 능력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태도(Attitude), 내가 이것을 깨닫는 데는 조직 생활 시작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것은 참으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예의 바르고, 깍듯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일부의 정치적 양념도 필요하고, 조직에 대한 헌신(Contribution), 충성도(Loyalty)도 포함된다. 이것이 때로는 개인의 실력과 능력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직장 여성은 이런 것들을 명심하고 회사 생활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