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 예외는 아니어서 현재까지도 우리는 긴장 속에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로 인해 유수의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그동안 시행하지 않던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근무방식을 도입했고, 현재는 상황에 따라 하이브리드(Hybrid) 방식의 근무, 즉 출퇴근과 재택근무 방식을 병행하거나, 완전 플렉스타임제(Flex-time) 근무를 채택하고 있다. 완전 플렉스타임제는 말 그대로 근무자가 하루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하루에 1시간만 근무하더라도, 월 총 근무시간인 40시간 또는 최대 52시간 근무만 충족하면 되는 방식이다.
덕분에 우리 직장인들 삶은 전보다 확실히 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만족도가 높아진 듯하다. 게다가 요즘 MZ세대들은 이러한 근무방식을 선호하는 듯 보인다. 물론 기성 직장인들도 다소 생소하긴 하지만 뭐랄까 재밌기도 하고 마치 근무 강도가 전보다는 느슨하게 느껴진다거나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속한 조직을 돌아보면, 상시 업무를 주로 할 때 숙련자들에 한해서는 얼마든지 재택근무가 업무 효율이 높았고, 출퇴근 시간을 확실히 줄이고 지옥철 등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 노출을 피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는 평가가 있다. 나도 가끔씩 재택근무를 해보면 확실히 심적, 육체적 자유롭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 적응이 안 되어서인지, 업무 집중력 면에서는 사무실 근무보다 확실히 덜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실은 종일 쾌적한 냉난방과 공기청정시스템 속에 업무용 노트북 및 대형 모니터까지 그야말로 일하기에는 최적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궁금하거나 혼자서 해결이 안 되어 업무 협조가 필요한 일이 생길 때면 바로바로 직접 문의가 가능하고, 대면 대화도 가능해서 문제 해결이 빨랐다. 결정적으로 고위 임원 등 주요 직책자가 찾을 때 대면하여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업무 소통면에서 매우 확실했다.
바야흐로 올해도 8월 본격 여름휴가철이 끝나면, 제조업 등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다음 연도 사업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한다. 또한 3분기는 지난 1, 2분기의 업무 진행에 대한 결과를 수확하고 성과를 챙기는 시즌이다. 그만큼 기업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고, 이런 기업에 고용된 다수의 직장인들 또한 덩달아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얼마 전 나는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계획 수립과 예상 성과에 대한 CEO 보고를 갑자기 준비해야만 했다.
준비 기간은 일주일, 관련된 부서는 열 개가 넘고, 이러한 상황을 모두 감안하여 기민하고 민첩하게 정보도 수집하고, 관련된 사람들도 어르고 달래서 업무 협조를 얻어내야만 했다. 회사 일이라는 게 언제나 그렇듯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내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낼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의 현실화와 진행, 결실은 여러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결코 해낼 수가 없다.
이렇게 중차대한 일이 공교롭게도 여름휴가 시즌 전후로 잡힌 것이다. 팀원들을 다독이고 설득하며, 힘들더라도 각자 맡은 임무에 책임감 있게 몰입해 줄 것을 주문했다. 그러던 가운데 한 직원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그 직원은 평소에도 플렉스 타임 및 재택근무를 가장 많이, 자주 사용하는 팀원이었다. 맞벌이에 어린아이도 있고, 연로하신 부모님도 같이 돌봐야 하는 상황인 듯했다. 그 상황을 인정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이 친구는 개인 연차(사용하지 않으면 연말에 현금 보상) 사용 권장이 있음에도 불구, 연차 한번 사용하지 않고, 플렉스타임을 최대한 활용했으며, 게다가 일주일의 2~3일을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 업무는 급하게 돌아가는 프로젝트 일정과 겹쳐서 단 기간 내에 정리 보고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나는 그 직원에게 일부 업무의 총괄을 맡기고자 하였다.
“김 과장, 이거 급하게 됐지만, A, B 부서 담당자와 협의해서 다음 주 초까지 보고서 초안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제가 대략적인 그림은 그려줄 거예요.” “아... 근데 C 상무님 쪽 조직이 너무 협조가 안돼서 시간 안에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쪽 때문에 너무 우려가 되네요.” 황당하다는 이모티콘을 날렸다.
내가 업무 지시를 할 때도 역시 김 과장은 재택근무여서 온라인 업무용 커뮤니티 채팅을 통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전화통화를 통해 부연 설명을 하는 식이다.
여전히 김 과장은 마뜩잖은 느낌이다. 항상 보면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보겠다'는 식이 아니고, 남 탓이 잦았다. 그리고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빨리 진행되는 회사일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친구는 해당 업무를 맡은 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항상 일관되게 모든 일에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만 모르는 것 같아서 몇 차례 애정 어린 충고도 해 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직원의 상사로서 최대한 이끌어보고자 하였고, 그 마음은 아랑곳없이, 그는 늘 모든 회사일과 상황에 부정적이고, 걱정이 많았다. 옛말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고 했는데 진짜 맞는 듯했다.
순간 나는 그 업무를 내가 직접 처리하리라 다짐이 섰다.
“아, 그래요? 내가 이 과장한테 부탁할 수 있었는데, 그 친구가 아이 돌 때문에 부득이하게 며칠 휴가를 써야 해서요. 혹시 어려우면 제가 직접 할 테니, 얘기하세요.” 말했다.
그랬더니, 그제야 그는 말한다.
“아, 아, 아닙니다.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하겠습니다.”
내가 노골적으로 얘기한 다음에야 비로소 김 과장은 내 뜻을 알아챘던지, 하는 수 없이 업무를 수용하는 듯했다. '엎드려 절 받기 식'이다.
그 후로 해당 업무를 진행하면서도 김 과장은 몇 번을 재택근무를 했다. 매일 출근하는 나로서는 진행상황
점검 및 중간중간 확인해야 할 것들에 대해 항상 온라인 채팅이나, 전화로 물어봐야만 했다.
나의 불편함도 불편함이지만, 다른 동료들의 불만도 큰 듯했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른 팀원들은 상황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눈치채고는 일주일 내내 사무실 근무를 자처했다. 중간 점검도 나와 직접 소통했고, 바로 피드백이 되어서 일이 빨랐다. 다만 김 과장만은 무슨 일이 그리 바쁜지 전화통화는 겨우 되었지만, 시원시원하게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김 과장의 그런 행적은 이번이 처음만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재택과 플렉스 타임제를 도입하고 난 후, 업무 협업을 통해 나오는 성과는 미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재택근무 시에도 온라인 화상회의나, 전화통화를 수시로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직접 대면하면서 얻게 되는 정보의 질이나 소통의 효과와는 비교할 수가 없음을 자주 느꼈다.
언젠가 이런 근무방식과 관련 다른 리더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리더가 말했다.
“우리 조직을 보면, 재택근무를 즐겨하는 사람만 실시하는 경향성이 있어요. 근데 그런 사람들은 사무실 근무할 때보다 1.5배는 더 집중해서 열심히 해야 성과면에서 비슷해진다고 봐요. 확실히 바로바로 대면 소통하며 업무를 추진하는 직원들이 업무 성과가 현저히 좋을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눈치 빠른 그 팀 직원들은 재택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재택근무와 플렉스 타임제를 실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시행 측면에서는 각 조직의 재량에 맡겨놓은 상태다. 그렇다고 하여 조직장이 ‘하지 마세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런 제도를 활용하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절대 회사의 상황이나 업무 특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재택근무를 하고 싶어도 소속된 조직의 상황이나 업무가 긴박하다면 바로 사무실 출근하여 상사와 지속 소통하며 빠르고 정확하게 업무를 추진하는 게 맞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마다, 케이스마다 다른 듯하다. 한마디로 자기한테 유리하게 작위적인 판단을 많이 하는 느낌이다.
평소에는 자기 생각대로 마음껏 재택근무나 플렉스타임을 사용해놓고 나중에 상대적으로 미진한 성과로 인해 저평가를 받게 된다면, 그때 가서 비로소 억울해하고 불만을 토로할 것인가?
“Out of Sight, Out of Mind”
평범한 진리가 문득 떠오른다.
오죽하면 테슬라 CEO 앨론 머스크도 재택근무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표출하며 “출근 안 할 거면 나가라”라고 극단적으로 말했겠는가?
굳이 유명인들의 의견을 빌지 않더라도 직접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냉정한 판단과 평가를 하고 받아야만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