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안다
떠난다는 건
항상 먼저 등을 보이는 사람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남겨지는 쪽이 더 아프고,
떠나는 쪽은 비교적 가벼울 거라고.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떠나는 사람도 어딘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겨지고 있었다는 걸.
사람은 갑자기 떠나지 않는다.
떠나기 전에 이미 여러 번 조용히 멀어진다.
말이 줄고,
눈을 맞추는 시간이 짧아지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던 것들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 미세한 균열을
우리는 대개 모른 척한다.
아니, 알면서도 붙잡는다.
나는 떠나는 사람을 붙잡아 본 적이 있다.
논리로 설득하고,
기억을 들추어내고,
우리가 공유했던 시간들을 증거처럼 내밀었다.
그때 나는 몰랐다.
사람은 증거로 남는 게 아니라는 걸.
떠나는 마음은
이유보다 먼저 움직인다.
마음이 이미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데
과거를 꺼내어 붙잡는 건
그저 시간을 조금 더 지연시키는 일일 뿐이었다.
결국 떠나는 사람은 떠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나는 한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 수 있었다.
진짜 고요는
그다음에 찾아왔다.
아침이 변하지 않았고,
거리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흘렀고,
커피의 온도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단 하나,
내 안의 온도만 달라졌다.
떠남은
삶의 외형을 바꾸기보다
내면의 밀도를 바꾼다.
나는 조금 더 무거워졌고,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고,
조금 덜 쉽게 기대하게 되었다.
그 변화가 성숙인지,
방어인지
오래 구분하지 못했다.
사람이 떠나고 나면
남는 것은 두 가지였다.
후회와 질문.
내가 다르게 말했더라면,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덜 솔직했더라면.
이 가정들은 끝이 없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멈추기로 했다.
떠남은 실패의 결과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았다.
모든 관계가
유지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 수 있다.
어떤 만남은
완성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통과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몇 번의 이별을 지나며
이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이 남기고 가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내 안에 새겨진 변화다.
나는 누군가를 통해
나의 집착을 보았고,
누군가를 통해
나의 오만을 알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통해
나의 연약함을 인정했다.
그들은 떠났지만
그들이 드러내놓고 간 내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이제는
떠남을 무조건 비극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아프다.
익숙해진 자리가 비어 있을 때,
문득 연락하고 싶어질 때,
이미 끝난 대화를 다시 꺼내 읽을 때.
그러나 그 통증이
나를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든다는 것도 안다.
떠남 이후의 나는
떠남 이전의 나와 완전히 같지 않다.
나는 조금 덜 쉽게 믿고,
조금 더 천천히 마음을 열고,
그러면서도 이전보다 더 솔직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실은 나를 줄이는 대신
나를 드러내 놓았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끝까지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머물러야 할 인연은
애쓰지 않아도 남는다.
떠날 사람은
애써도 떠난다.
그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떠남은
패배도, 배신도, 운명도 아니다.
그저 흐름이다.
같은 강물 위에
모든 사람이 영원히 함께 설 수는 없다.
나는 한때
영원이라는 단어를 믿었다.
지금은 믿지 않는다.
대신 그때의 진심을 믿는다.
그 순간 우리가 진심이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남지 못한 관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깊은 흔적은
사라진 자리에서 만들어진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완전히 덤덤하지 못하다.
그러나 예전처럼 무너지지도 않는다.
이제는 안다.
떠남은 나를 부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동시키기 위해 온다는 걸.
조용히.
조금 더
나답지 않은 나로.
그리고 그 낯섦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