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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벌새 Apr 14. 2023

불안과 사회학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은 불안이라고 한다. 불안은 언제나 우리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 한 번씩 아주 사소한 일이 계기가 되어 불안은 제 몸을 부풀린다. 때론 그 불안은 우릴 삼켜버릴 정도로 비대해진다. 누군가에겐 때때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자주 그런 일이 일어난다. 우리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할까 봐, 좋은 직장에 가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결혼과 아이 낳는 일은 사안이 더 복잡하다. 하자니 불안하고, 안 하지니 그건 그것 나름대로 더 불안하다. 노후를 생각해보라. 그것만큼 막막한 것은 또 없다. 부동산, 주식, 차, 명품 등 세세하게 파고들면 끝도 없다. SNS의 등장으로 비교가 일상화되고,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지금 불안은 심화되었다. 우리는 이제 불안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고 있다.


    불안을 뜯어보자. 그것은 생존의 위협이 예상될 때 느끼는 감정으로 인간의 생존 기제로써 작동한다. 그렇다면 범위를 좁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은 어떠한가? 그것은 전형적 삶에서 벗어나게 될까 두려워하는 감정이다. 대학 졸업 후 정규직으로 입사해 30대 초반에 결혼하여 1~2명의 아이를 낳아 아이를 대학에 보낸 후 노년을 보내는 것. 이는 한국 사회의 전형적 삶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삶의 양상들이 태동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긴 어렵다. 연애 유튜브 시장만 보더라도 <여자 혼자 평생 잘살 수 있을까?>, < 2030, 제발 비혼주의에 물들지 마세요>, <솔직히 아이 낳지 않길 참 잘했다고 느낄 때>, <아이가 없어서 느끼는 단점, 가장 후회하는 것> 등의 상충된 주제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 전형에 금이 가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부터 뒤처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정답을 찾고자 한다. 


    삶에 정답이 있다는 전제하에 전형을 사유 없이 따르는 것은 한 사회가 획일화되고 있음을 뜻하며, 한 개인이 군계일’계’가 됨을 뜻한다. 그렇게 한 사람 속 우주는 꺼지고 사회는 마녀사냥하기 좋은 토대로 변한다. 이때 사회학은 이러한 전형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보여주고 그 사회적 맥락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좋은 대학 – 정규직- 결혼을 위한 우리의 몸부림은 1997년 외환위기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시절 한국인들은 금 모으기 운동으로 출발했으나 연대가 연대로 보답받지 못하고, 대규모 실직 사태와 고용 한파로 잃어버린 세대가 등장했다. 이들은 생애 내내 불안정 노동시장에 머무를 확률이 높았고 이걸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한국인들은 한 번 탈락하면 공동체가 구제해주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1]'더 깊이 파고들면 미국의 영향력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어른이 됨을 의미하는 5가지 요소로 학교 졸업, 정규직, 부모로부터 독립, 결혼, 아이를 갖는 것으로 꼽았다. 그러나 이는 경제가 활성화되고 정부 정책이 탄탄했던 2차 세계 대전 직후 확립된 개념이며, 18·19세기에 이러한 삶은 일반적이지 않았다.[2] 이렇듯 사회학은 전형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개인이 절대적이라고 여겼던 전형을 비틀어 바라볼 수 있게 하며, 전형이 형성된 사회적 맥락을 설명함으로써 개인에게 사유의 토대를 마련해준다. 


    사회학을 통해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게 될 때면 나는 언제나 해방감을 느꼈다. 불안의 구성 과정을 안다는 것은 실체 없는 불안을 실체화하고 보이지 않는 불안을 가시화하는 과정이었다. 나인 홀트 니부어는 기도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나는 사람들이 사회학을 통해 그 지혜를 얻게 되리라 믿는다. 


          

[1]천관율, 2021, 방역 정치’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각자도생의 경고, 시사인 참고.  

[2]Teresa Ciagattari, Sociology of Families: Change, Continuity, and Diversity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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