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그조띠끄 김서윤 Jun 03. 2023

가져가지 말아요... 그거 제 가방이에요.

남의 물건을 향한 음험한 시선, 버린 물건인 줄 알았다는 새빨간 거짓말



"대표님,

여기 있던 제 가방 못 보셨어요? "


내 가방을 자전거 앞 바구니에 싣고

유유히 사라져 간다. 


이 골목마저 나를 배반하는가.










그 사이 시간은 또 얼마나 이 불안정한 시절을 무정하게 스쳐간 걸까? 햇볕의 농도는 점점 더 짙어져 나를 에워싼 모든 유무형의 존재들이 달리의 초현실주의 시계처럼 찐득하게 흘러내린다. 대책 없는 희망으로 들뜨게 했던 소생(소生)의 에너지였던 봄은, 오랜 시간 애써 봉인해 두었던 부질없는 정욕에 몸을 달게 했던 아직은 젊은 날의 내 봄은 낭만과 야만이 맥락 없이 교차하며 숱한 모순된 감정들을 남기고 있었다. 



더 이상은 어디도 물러설 방도가 없다. 

용기를 내어 집을 찾는다. 철거를 하고 방치한 지 한 달이 다 넘어가는구나. 이 작은 집 하나 살만하게 만드는 게 녹록지가 않네.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어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뻥! 뚫어 놓은 공간으로 누군가가 오고 간 흔적들이 자꾸만 생겨나 현수막도 하나 만들고 선명한 노란색 체인으로 '여기는 나의 집'이라는 표식을 분명히 한다.




누군가 마시고 버린 종이컵, 누군가 마시고 깨뜨린 소주병, 이 집과 관련 없을 누군가들이 침입하고 또 흔적을 남겼다. 




아 그래 거기! 거기 연락해 보자. 까맣게 잊고 있던 한 곳이 불현듯 떠올랐다.



"여보세요. 000 건축사사무소에서 소개받았어요. 언제 미팅이 가능하실까요?"



딱 봐도 업계에 잔뼈가 굵어 보이는 카리스마 장착한 두 분의 이사님이 꼼꼼히 철거된 집을 살핀다. 졸졸 삭막하게 골조만 남은 공간을 따라다니며 원래 어떤 상태였는지를 세심하게 아니 투머치하게 묘사를 해대며 아닌 척 하지만 간절한 구애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가져가지 말아요... 그거 제 가방이에요.



"대표님, 혹시 여기 있던 제 가방 못 보셨어요?"

"아까 지하로 내려갈 때만 해도 여기 있는 거 저희도 봤는데, 없나요?"

"................."



경찰에 신고를 하고 조사서도 작성했다. 

내 백팩, 내 노트북, 내 다이어리, 내 자료들, 내 자잘한 소지품들... 다행이다. 그래도 핸드폰은 여기 내 손에 있다. 집 앞 CCTV를 확인해 보겠다며 경찰도, 마침 집 앞에 세워두었던 차량 안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고 연락 주겠다며 업체 대표님도 떠나갔다. 나, 나만, 나만은 떠날 수가 없었다. 가방이 놓였던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오후의 태양 아래 길게 늘어진 내 검은 그림자 위로 온갖 희망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는 걸 바라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흥분하며 열을 올리지도 않았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분노도 없었다. 이 모든 절망의 감정들마저 구차할 뿐이었다. 오직 환멸만이 가장 적당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