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도 먹어도 돌아서면 배가 고파요. 도대체 왜죠?
나는 이제부터 내 삶에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벌어질 줄 알고 한껏 기대하고 있었을 거다. 이쯤이면 그런 행운은 당연히 주어져야 한다고 당당히 요구하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현실은 늘 그래왔듯 1mm의 하찮은 오차를 냈고 그렇기에 영원히 내 이상과 맞닿을 수 없다는 예언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았다.
50년 된 이 집의 드라마틱한 환골탈태 과정과 그 결과물을 즐겁게 상상하며 나름은 죽을 만큼(어느 순간부터는 죽지 못해) 용기 내 온 내게 왜 이토록 현실은 자꾸만 매정한 걸까? 녹록지 않았던 쇼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 신나게 이 집 리모델링에 몰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지금쯤이면 공사 막바지에 이르러 샹들리에를 어디에 달까? 문 손잡이는 브론즈 색상이 좋겠지? 혼자 수다스럽게 고민하며 공간 구석구석 세부를 꾸며가고 있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 완벽했던 조건의 인테리어 업체는 이 모든 나의 상상을 헛된 환영으로 누렇게 산화시켜 버리고 말았다. 유명 리빙 잡지 4면이라는 황홀한 프리미엄과 그들의 껍데기뿐인 네임파워에 일찌감치 눈이 멀어 버린 나 스스로가 이 모든 선택을 했기에, 미웠다. 내가 그리고 이 집이 업체보다도 더 미워지기 시작했다.
진절머리가 나!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구!
그 후로 한동안은 이 집을 외면했다. 때때로 징징대며 대부분은 의기소침해진 채 한껏 찌그러져있던 나를 향해 주변 사람들은 무심코 한 마디씩 기어코 나약한 상처에 생채기를 덧댄다. 분명 악의 없을 평범한 말들이었지만 그 무디고 둔탁한 언어의 끝마저 내겐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어찌 보면 뻔한 클리셰를 지닌 인간관계의 전형적인 단면들일뿐인데.
이 즈음 시도 때도 없이 항상 배가 고팠다. 어느 순간 급습하여 떠나지 않는 나의 허기, 특히나 삼겹살이 어찌나 먹고 싶던지... 아직은 낯선 동네 지인 하나 없던 나는 혼자 고기를 주위시선 아랑곳 않고 편하게 구워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 저녁마다 기웃거렸다. 아 부동산 사장님! 하지만 그분의 걱정을 밥 먹으면서까지 듣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친구도 가족도 벌어진 심리적 거리만큼 물리적으로도 다들 멀리 살았다. 너무 북적이는 곳은 안돼! 쭈뻣쭈뻣 입구를 어슬렁거리다 겨우 용기 내 식당에 들어서기 일쑤였다. 하여간 성가시게 여기저기 크고 작은 일들에 매번 그놈의 가엾은 용기가 소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