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옥 단독주택 리모델링 철거 현장 스케치
4월 하순 벚꽃도 철쭉도 모두 다 하릴없이 져버리고 지층원룸엔 존재하지 않는 봄볕마저 어느새 익숙해진 무렵 인테리어 업체와 첫 미팅을 한지 거의 3개월 만에 철거를 했다. 세부 디자인과 예산이 결정되고 나서가 아닌, 철거 먼저 아니 '철거만' 했다. 이때는 이게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이 리모델링 과정을 더 지난하게 만들지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드디어 '시작'을 한다는데 오랜만에 녹진한 안도감을 느낄 뿐이었다.
물론... 나도 동의를 했다. 오래된 집의 낡은 마감재 뒤에 숨겨진 그 실체가 궁금했으니까. 도어 컬러 하나까지 지정된 세부 디자인 구성안과 수많은 레퍼런스 사진을 건넸음에도 도면도 예산도 차일피일 늘어지고 있었고, 애초 찾아다녔던 것처럼 오래된 단독주택 리모델링은 이 분야에 노하우를 지닌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저 심연 깊이 처박아 놓은 의구심이 이 업체를 향하며 자꾸만 스멀스멀 뭔가 애매하게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는 보통 그걸 '전조 前兆'라 부르곤 하지.
그런 음울한 전조를 느끼면서도 예정대로 진행할 수밖에.
"퉁탕퉁탕, 아자자작, 쨍그랑, 쿵쾅쿵쾅, 와장창창, 데구루루 "
또 다른 의성어가 뭐가 있었더라.
시끌벅적 요란요란... 아 이건 아닌가.
집이, 숨겨온 그 본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공간의 철거가능한 온갖 것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겠다는 결연한 의지 아래, 찢길 듯 요란한 소음이 파편들에 뒤섞여 살벌하게 터져 나간다. 그 인정 없는 난도질 광경은 마치 오랜 세월 이 집에 표류한 과거의 망령마저 추방시키려는 듯 격렬하다 못해 광폭할 지경이다. 행여나 이러다 오만곳이 부서지면 안 되는데 싶은 소심한 우려의 마음도 잠깐, 구석구석 신기하게 변해가는 나의 새로운 집을 탐험한다.
다락이 사라진 거실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높은 박공 천장이 드러났다. 뭔가 뻔하지 않은 공간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절제할 수 없는 기대감에 요 몇 달 좀처럼 느껴지지 않던 야릇한 흥분도 일기 시작한다. 저 자리에는 다락 대신 복층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1층 천장고를 조금만 낮추면 허리를 구부정하지 않아도 충분히 설 수 있는 높이가 나올 것 같다. (물론 내 작은 키를 기준으로 말이지.) 순식간 급진적으로 전개된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쏙 든다. 이 집이 드디어 엄혹했던 오랜 침묵을 깨고 나에게 무한한 시각적 가능성을 건네며 다정해지려 하고 있다. 우리가 드디어 친해지려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