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그조띠끄 김서윤 May 22. 2023

다락이 사라진 집의 거실엔 높은 박공 천장이 드러났다

구옥 단독주택 리모델링 철거 현장 스케치



'뭔가 뻔하지 않은 

공간이 될 수도 있겠구나'


이 집이 드디어 엄혹했던 오랜 침묵을 깨고 

무한한 시각적 가능성을 건네며 다정해지려 하고 있다. 


우리가 드디어 친해지려나 봐!










4월 하순 벚꽃도 철쭉도 모두 다 하릴없이 져버리고 지층원룸엔 존재하지 않는 봄볕마저 어느새 익숙해진 무렵 인테리어 업체와 첫 미팅을 한지 거의 3개월 만에 철거를 했다. 세부 디자인과 예산이 결정되고 나서가 아닌, 철거 먼저 아니 '철거만' 했다. 이때는 이게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이 리모델링 과정을 더 지난하게 만들지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드디어 '시작'을 한다는데 오랜만에 녹진한 안도감을 느낄 뿐이었다.


물론... 나도 동의를 했다. 오래된 집의 낡은 마감재 뒤에 숨겨진 그 실체가 궁금했으니까. 도어 컬러 하나까지 지정된 세부 디자인 구성안과 수많은 레퍼런스 사진을 건넸음에도 도면도 예산도 차일피일 늘어지고 있었고, 애초 찾아다녔던 것처럼 오래된 단독주택 리모델링은 이 분야에 노하우를 지닌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저 심연 깊이 처박아 놓은 의구심이 이 업체를 향하며 자꾸만 스멀스멀 뭔가 애매하게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는 보통 그걸 '전조 前兆'라 부르곤 하지.

그런 음울한 전조를 느끼면서도 예정대로 진행할 수밖에. 





"퉁탕퉁탕, 아자자작, 쨍그랑, 쿵쾅쿵쾅, 와장창창, 데구루루 "


또 다른 의성어가 뭐가 있었더라. 

시끌벅적 요란요란... 아 이건 아닌가.



집이, 숨겨온 그 본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공간의 철거가능한 온갖 것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겠다는 결연한 의지 아래, 찢길 듯 요란한 소음이 파편들에 뒤섞여 살벌하게 터져 나간다. 그 인정 없는 난도질 광경은 마치 오랜 세월 이 집에 표류한 과거의 망령마저 추방시키려는 듯 격렬하다 못해 광폭할 지경이다. 행여나 이러다 오만곳이 부서지면 안 되는데 싶은 소심한 우려의 마음도 잠깐, 구석구석 신기하게 변해가는 나의 새로운 집을 탐험한다.




다락이 사라진 거실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높은 박공 천장이 드러났다. 뭔가 뻔하지 않은 공간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절제할 수 없는 기대감에 요 몇 달 좀처럼 느껴지지 않던 야릇한 흥분도 일기 시작한다. 저 자리에는 다락 대신 복층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1층 천장고를 조금만 낮추면 허리를 구부정하지 않아도 충분히 설 수 있는 높이가 나올 것 같다. (물론 내 작은 키를 기준으로 말이지.) 순식간 급진적으로 전개된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쏙 든다. 이 집이 드디어 엄혹했던 오랜 침묵을 깨고 나에게 무한한 시각적 가능성을 건네며 다정해지려 하고 있다. 우리가 드디어 친해지려나 봐. 






이전 07화 뭐라고!? 우리 집이 리빙잡지에 소개될 수 있다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