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행운은 예기치 못한 곳에 있었구나
이번 업체는 분명 뭔가 달랐다.
실장부터 팀장, 디자이너 1, 디자이너 2, 디자이너 3까지 벌써부터 많은 인원이 투입되어 나의 프로젝트에 공을 들이는 듯 보였다. 대단히 존중받고 있는 느낌이랄까. 나도 드디어 클라이언트 반열에 올랐구나 싶은 당당한 갑의 자세! 그럼 그럼 들일 돈이 얼마인데.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직업과 이 집에 대한 소개를 리빙 잡지에 그것도 무려 4면의 지면을 할애하여 실어준단다. 정말 굉장하다. 이렇게 실리는데 돈이 몇 백만 원은 훌쩍~ 든다는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시도도 못할 뜬구름 같은 풍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처음엔 오히려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니까.
이제서야 모든 게 제 자리를 찾아가는구나. 이런 행운이 깃들려고 여지껏 내게 그 사나운 시련들이 거침없이 막막 엄습했던 거야? (내가 눈치가 없었네.) 이렇듯 행운은 예기치 못한 곳에 있었다. 지층원룸에 돌연 출현한 내 엄지손톱보다 긴 바퀴벌레를 보면서도 배시시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아니 바퀴벌레가 이렇게 유유히 대낮에 출동해도 돼? 순간 아주 유연하고 기민한 몸놀림으로 책을 던져 바퀴벌레를 잡는다. 괜찮아, 괜찮아. 출동해도 돼! 어차피 잠시 머물다 금방 떠날 곳, 노 프라블럼이라구.
'잡지라니! 유명 리빙 잡지에 나와 우리 집이 소개될 수 있다니!!'
이마저도 불온한 설레임은 아닐까. 내겐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로 완벽했다.
이 업체는 정말로, 분명, 뭔가 달랐다. 지역상권을 분석해서 이 동네 주민들이나 앞으로 유입될 미래수요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고, 이 집의 매매가를 듣더니 6000만 원이 가장 적정한 공사 예산이라고, 마치 한국주택공사나 부동산컨설팅회사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스페셜리스트의 화법을 쓰고 있다.
'맞지, 맞아! 이거 굉장히 근거 있고 맥락 있고 논리적이고 심지어 과학적이기까지 해.'
혹시 이거 천상에서 흐르는 음악소리인가?... 내 연인의 나지막한 아다지오 음률의 밀어조차 이보다 더 감미로운 순 없었다. 이런 분야에 일자무식한 내 귀가 미혹되어 발그레 상기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