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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May 12. 2023

아줌마는 아니에요... 비록 과년한 나이이긴 하지만

가로수길을 떠나 아차산 자락에 입성하던 날 펑펑 울었다



"여보세요..."

"아줌마! 차 빼 얼른"


새벽 3시, 호되게 격렬한 환영이었다.










10월 중순 아차산 집을 계약하고 나니 이사까지 약 4개월이 남겨졌다. 이제 어떻게 리모델링을 할 것인지 공간 컨셉과 디자인 기획서 초안을 작성하고 기본 공정을 시공해 줄 업체를 찾기만 하면 된다. 이별의 마음이 조금 정리가 되면, 이 빌라가 팔리면, 집을 구하고 나면.., 언제나 묵직하게 주어지는 다음 미션 덕에 여행 한번 다녀오겠다던 마음도 이사 후로 미룬 채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긴 했지만 또 별다른 성과 없이 시간이 흘렀고 짐을 쌌다.


심드렁... 생각보다 신이 나진 않았다. 한 번은 이번 프로젝트로 내 삶을 전복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아 들떴고 아홉 번은 그냥 모든 게 버겁고 귀찮았다. 사적으로는 이렇게 혼자 나이 들어가는 비자발적 싱글의 삶에 여전한 의구심을, 공적으로는 회복되지 않는 매출로 일의 외연을 확장해야만 했다. 내 이 모든 자발적 결정들은 생의 위기를 지나는 엄청난 번아웃의 시기에 던진 무리수이자 유일한 묘수였던 셈이다. 


겨우, 내가 꿈꿀 수 있는 모든 로망이 들어앉은 엄청난 페이지의 기획서를 작성하고는 몇몇 업체와 현장미팅을 했다.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지닌 채 적당한 가격으로 이 노후된 단독주택을 안전하게 리모델링할 수 있는 업체도, 하겠다는 업체도 그리 많지 았았던 데다, 잔금 지불 한 달 전 이미 세입자도 이사를 나가 집은 비워져 있었지만 온전한 내 명의의 집은 아니었기에 함부로 내부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단 한 차례 외에 이전 건물주는 그걸 결코 허락하지 않았는데 참 매정하다 생각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텅 빈 집 내부를 샅샅이 흩어보고 이리저리 트집(?)이라도 잡아 잔금을 깎지나 않을까 우려했던 매도자 나름의 현명한 판단이었을 것 같다.





내 예산은 최대 8천만 원 정도였다. 그래! 1억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라며 호기롭게 미끼를 던지던 내 당당한 음성은 업체 미팅이 지속될수록 쪼그라들었다. 단열이나 지붕은 둘째 치고라도 전기며 샷시며 바닥이며 벽마감까지 모조리 철거하고 새로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어떤 업체는 예산은 나중에 생각하자며 득달같이 달려들기도 했고 어떤 업체는 공정마다 인부를 써서 직접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거절을 했다. 이렇게 재는 사이 그나마 잠정적으로 마음에 두었던 비싸지만 꽤 믿음직해 보인 한 업체는 다른 프로젝트로 6개월 뒤에나 착수가 가능하다는 비보를 전한다. 모두 다 놓쳐버렸다. 그렇게 업체를 찾지 못한 채 시간에 떠밀려 추억과 함께 대책 없이 이사를 준비한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이것도 저것도 안되면 일단 그냥 들어가 살면 되지 뭐... 내 집인데 뭐가 문제야'


그래 물론 안될 건 없었다. 분명 안될 건 없었지만.




"여보세요..."

"아줌마! 차 빼 얼른. 여기 내가 대던 자리야"       



새벽 3시, 온몸이 온 정신이 온 마음이 혼미해질 정도의 아찔한 환영이었다.

저 아줌마는 아니에요... 비록 적지 않은 과년한 나이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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