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홈즈'는 몹시도 쓸모가 없었다.
그래, 그 외사랑인 듯한(외사랑인게 분명했을) 인연이 끝이 났다. 오랜 시간 간절히 염원한 동시에 파르르 떨며 두려워하던 상상 속 이별 장면이 현실로 재현되고 한 달 동안 생각보다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싱겁게도...이런 겁쟁이 쫄보같으니. 그립지도 않았다. 다만 어쩌다 마음이 도려낸 듯 사정없이 아릴 뿐이었다. 그 3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도려내진 자리에는 늦가을 바람이 스산한 찬기를 품고 무심하게 관통하곤 했다.
그 뒤 얼마간은 아주 열정적으로 집을 정리했다. 이제 부질없어진 내 마음의 잔재들을 비워내듯이 이 공간도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며 조금은 더 넓어지고 단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 팔리지 않던 이 집이 누군가의 눈에 매혹되어 아주 좋은 가격으로 거래될 것만 같았다. 몇 날 며칠 '당근! 당근!' 하는 알람이 유쾌하게 울려 퍼지며 푼돈들도 제법 모여 백단위를 넘어선다. 그 모여가는 돈만큼 내 상흔도 조금씩 서서히 아물어가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젠 이 집과도 끝이 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처음으로 가져본 내 명의의 첫 집이자 오롯이 혼자 살기 시작했던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1993년식 오래된 빌라. 여기로 이사오기 전까지 불과 3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여동생 그리고 팡팡이와 함께 긴 세월을 살았었다. 여동생이 결혼을 하고 팡팡이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나 혼자만 추억이 밀도 높게 축적된 이 가로수길을 떠나지 못한 채 덜컥 이 낡아빠진 옛날 집을 구입했다. 사무실에서 때론 찜질방에서 3개월간 떠돌이 노마드 생활을 하며 리모델링을 했다. 20년 간의 길었던 가로수길 삶에 마침표를 찍게 되던 곳.
여전히 넘쳐나는 늦여름 금빛 햇살에 내 기다림마저 말라가던 8월 말, 정말 거짓말처럼 신사동 빌라가 팔렸다. 꽤 많은 사람들이 보러왔음에도... '왠지 이번엔 정말 팔릴 것 같아!' 라며 방문때마다 정성들여 청소를 하고 디퓨저와 인센스를 피워대며 우리집의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던 내 달뜬 기대감을 여지없이 배반하던 상황에 풀이 꺾여 심드렁해진 채 한껏 비관적이 되던 때였다.
돌아보면,
지난 겨울 야단스레 찍어댔던 '구해줘 홈즈'도 영 쓸모가 없었다. 어설픈 상권분석까지 해가며 집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 긴 PPT로 작성해 건네고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영상 촬영을 그리고 며칠 뒤 스틸 촬영을 하며 내 물리적 정신적 시간을 고스란히 바쳤지만 '세계일주 하우스'라는 우스꽝스럽게 희화화된 집 이름만이 남겨질 뿐이었다. 애초 '앤틱 하우스'라는 이름은 협의도 없이 하와이풍 베딩에 아프리카가, 욕실의 스페인 모자크 타일이 아랍으로, 테라코타 화기가 이태리 로마로 어처구니없는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졌다. '이런 방송국 인간들 같으니..' 재미있는 경험에 혹시 설마 팔릴까 싶었던 일석이조의 기대감일던 내 나름의 마음은 어쩐지 치욕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드디어 팔렸다. 거의 2년 만이다.
내가 살며 느낀 삶의 신비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리라. '반드시 끝은 있다는 것, 그것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러니 어떤 지난한 고통하에서도 희망만은 끝내 버리지 말 것'
이제서야! 드디어! 본격적으로! 내가 살 집을 알아보아야 했다. 주말 취미로서가 아니라 진짜로 이사 갈 집을 찾아야 하는 거다. 다행히 잔금과 이사까지는 6개월의 다소 넉넉한 시간이 남겨졌다. 2월 초, 그래도 한 겨울은 지내고 떠나게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