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내 모든 계획의 시작에는 당신이 있었네요
언제부터였을까.
입버릇처럼 오래된 단독주택을 사서 리모델링을 할 거야...라는 말을 꿈꾸듯 남발하기 시작했던 게, 그런 꿈을 좇으며 이제 막 몰입한 취미처럼 서울과 경기도의 집들을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던 게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여기 이렇게 드디어 판을 펼쳐 놓고 보니 잊혀졌던 그 시작이 궁금해졌다. 이런! 어쩔 도리가 없다. 사건의 서막을 더듬더듬 추적해 가다 보니 그 인연을 끄집어내지 않을 방법이 없다.
몇 해전 살던 동네에 1993년식 오래된 빌라를 매입하고 내 명의의 첫 집을 직접 리모델링을 하며 다소 자신감이 기분 좋게 넘치던 시절, 다음번은 단독주택이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었었다. 이럴 때쯤 언제나 삶을 찾아오는 상투적인 거짓말처럼 (내게는) 운명 같던 한 건축가를 만났다. 불행의 단초는 여기저기 숱하게 널려 발에 차였지만 내 발은 이미 허공에서 둥실거렸고 내 마음을 멈칫 없이 내어 준 뒤였을 거다.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속 남자 주인공 플로렌티노 아리사처럼 순애보를 표방한 자기기만적 사랑이었지만 기꺼이 그 끝을 내 스스로 냈을 만큼 나는 지고지순하지는 않았다. 그게 이 비극을 종식시킨 내가 지닌 유일하게 유용한 태도였다.
페르미나를 기다리며 반세기를 보내게 한 사랑이 실은 자신이 이상화한 이미지에 빠진 것에 불과했기에 그들의 여행이 결국 비극으로 끝맺었던 것처럼(물론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나는 지극히 나르시시즘 성향으로 실존하는 옹색한 한 남자를 유럽에서 막 날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예술적인데 지적이기까지 한 한국에선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40대 싱글로 치환하고 추앙했다. (홀낏홀낏 아닌 척 내 눈길 가는 괜찮은 남자들은 일찍이 운 좋은 영리한 여자들의 소유가 된 지 오래였기에... 그 희소가치를 발견한 스스로의 행운을 과잉하며 말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들고 태국의 꼬창 Ko Chang으로 떠난 적이 있다. 보름 내내 거의 매일 이 식당에서, 비슷한 시간에, 항상 혼자, 그저 책을 읽으며 온갖 커리류의 태국음식과 창Chang을 마셨다. 내가 더 이상 오지 않았을 때 그들은 나를 궁금해했을까? 이 시절 내가 사랑은 했었던가? 정확한 기억은 나질 않지만 이 책 속 사랑이 내 옛사랑을 닮았다는 생각을 줄곧 하며 시간을 흘렸다.
내 사랑들은 내가 만든 환상 속에서 제멋대로 영광스럽기도 비참하기도 한 대상이었기에, 대과거의 사랑도 과거완료의 사랑도 현재완료의 사랑도 비슷비슷해서 자주 뒤엉켜있곤 한다.
나는 연애를 시작했고 그는 연애는 아니라고 했다. 3년 내내 끊임없이 만나며 일상도 일도 그리고 미래의 계획마저도 함께였지만 연애는 아니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비혼주의자였다고, 사귀는 프레임마저 싫다고 마치 아픈 사연 있는 사람처럼 지속적인 자기 고백투로 나를 의도적으로 세뇌시킨 게 분명했지만 그게 사랑마저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인 줄은 몰랐었다. 상대에 대한 별다른 애정 없이도 그 많은 걸 오랜 시간 공유할 수 있다는 걸... 나는 몰랐다. 아니다. 다 쓸데없는 헛된 넋두리일 뿐이다. 그냥 나를 사랑까지는 할 수 없었던 거다. 그냥 나와 결혼할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던 거다. 그게 엄연한 진실이었지만 급기야 나는 살기 위해 스스로의 이성을 교란시키기 시작했다.
"오빠와 나를 하나의 관계로 수렴하고 싶지는 않아. 관계를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 규정된 관계 속에 귀속된다고 생각해."
맙소사! 지금은 경악할 이 끔찍한 말로 언젠가는 나를 사랑하게 될게 분명하다 믿으며 그의 언행 하나하나에 행불행이 예속된 시간들을 보냈다. 두려웠다. 아침이면 밤 사이 혹시나 그의 마음이 변했을까 봐 내가 싫어졌을까 봐 무서웠다. 꽤나 통속적이고 진부한 감정이지만 절절한 진심이었다. 그래, 사귀는 것도 아니라면 어떤 장치가 필요해! 내가 놓아버리기만 하면 흔적 없이 사라질 허망한 관계를 안전하게 박제해두고 싶었다.